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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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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일곱 살의 신부


BY 김경란 2005-04-10

 "안 와도 돼!"

  여고 때의 성격이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은 그녀는 가래침을 내뱉듯이 전화선 속으로 찬물을 끼얹었다. 20년도 더 된 옛날 일을 생각해보니, 가끔씩 그녀의 자취방에서 라면을 끓여먹거나, 궂은 날 만화책이라도 잔뜩 껴안고 들어서서 한참을 죽치곤 할 때면 그녀는 항상 툭툭 자기 기분대로 말을 뱉어내곤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 야, 니들 이젠 그만 가! "
  
   서른 일곱이 되면서 그녀는 동갑의 카이스트와 결혼을 했다. 물론 안 와도 돼! 라고 퉁명스럽게 한 마디 말로 주절거리며 사는 얘기를 늘어놓고 싶었던 나의 넋두리를 일축시켜 버린 것이다.
   
  "다른 애들 다 연락했는데, 니 결혼식에 갈 수 있다는 애들이 몇 명 없네. 연숙이는 이혼했고, 영규는 카페 일이 너무 힘들었는지 몸살이래. 그리고 정원이는 남편이 자동차 딜러 사무실 오픈 한다고 하던데, 가도록 한다고 하지만 어쩔 지 모르겠고, 인자도 이혼해서 다시 나이 많은 남자랑 재혼했다는데 들었니?  친구들 보기 부끄러워 안 온단다. 그치만 난 갈게. 난 가. 나라도 갈게. 남편 델구 갈까? 잘 알잖..."

라고 말을 끝맺기도 전에 그녀는 툭 던졌다.

  "안 와도 돼! "
  
  신랑측 하객들이 한 명도 없는 결혼식은 난생 처음이었다. 나중에 들었지만 신랑측에서 결혼을 반대했다고 한다. 잘 키운 아들 나이 먹도록 장가를 안 가더니 뒤늦게 결혼한다고 하는 여자가 마흔을 바라보는데 쌍수 들고 환영할 남자 집은 그리 흔치 않을 거라는 예감은 했지만 신랑 친구 몇 명 외에는 하객이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찬바람이 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8개월 된 아들놈을 이웃집에 맡겨놓고 왔다며 웨딩드레스를 입고 쓸쓸히 웃는 그녀. 본의 아니게 여고 친구들의 대표가 되어 찾아간 그녀의 결혼식장은 일요일의 매서운 황사 바람처럼 아팠다. 대전 신신 농장 예식원 언덕길을 내려오다가 그 밑에 작은 레스토랑에서 진토닉을 마시면서 하객이 되어 찾아간 대구의 정원이와 나는 자꾸만 씁쓸해서 칵테일을 두 잔이나 비웠지만, 서로의 쓰린 가슴을 말로써 위로할 뿐, 둘 다 마음이 따뜻하게 붉어지질 않았다.

  "안 와도 된다니까, 뭐 하러 왔어?"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피부가 늘어진 신부가 미간을 찌푸리며 투덜댔지만, 그녀는 그런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우리를, 아니 자기 자신을 슬프게 하는 건지 알고 있으리라. 나는 울컥 치밀어 오르는 설움을 참느라 턱이 다 아팠다.  

  친구는 대구역으로, 나는 버스터미널로 각자 찢어지면서도 우리는 5년 만에 만났다고 크게 웃어보지도 못한 걸 후회하진 않았다. 웨딩드레스를 벗고 아이를 껴안고 있을, 신혼 여행도 못 가는 그녀는 지금쯤 남편 품에 안겨 펑펑 소리내어 울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 신혼 여행도 안 가니까, 집에 빨리 가서 애 데리고 야외로 나가서 밥이나 먹을 거야. 둘 다 잘 가! 나 먼저 갈게. 날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지 마! 난 지금 행복하다구!"

  서둘러 폐백 같지도 않은 폐백을 마치고 나온 그녀가 남긴 한 마디가 자꾸 가슴을 콕콕 찔러 온다. 쓸쓸한 밤이다. 이젠 정말 외롭지 말고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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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사의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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