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거 엄마 참말 예뻤데이...."
빛바랜 흑백 사진을 들여다 보며 막내 이모는 꿈꾸듯이 말했다.
사진 속의 엄마는 이십대 후반의 단정해보이는 미인이다. 두살배기 막내오빠를 안고 있으니 난 아직 태어나기 전이다.
둘째 이모는 유일하게 남은 엄마 사진이라며, 두 장을 내게 보여주고 한 장은 나 가지라고 건네준다. 나한텐 엄마 사진이 한 장도 없었다.
"이 가스나는 엄마 사진 보면서 울지도 않노?"
둘째 이모는 엄청 다혈질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도 몇 번이나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했다.
울어야 하나? 억지로? 난 그냥 속없는 애처럼 웃기만 했다.
이모들은 30년 만에 만난 조카딸이 이토록 맨숭맨숭하게 당신들을 대해서 서운했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아침에 애들 정신없이 챙기고 있는데, 뜬금없이 전화벨이 울렸을 때부터 내 마음은 좀 담담해져 있었다.
둘째 이모가 미국에서 잠시 다니러 왔는데 이번에는 꼭 나를 만나야겠다는 거다. 얼마 전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쉬고 있는 나로선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얼떨결에 약속을 하고 수화기를 내려 놓으니 공교롭게도 텔레비젼에선 아침마당 -그 사람이 보고싶다-가 나오고 있었다.
이 프로 보다가 갑자기 전화하셨나?
엄마가 내 나이 8살 때 돌아가신 후 이모들과도 자연스럽게 관계가 끊어졌다.
그 후 내가 서울로 올라와 자리를 잡았을 때 이모들한테서 한 번 연락이 왔다. 그때는 둘째 이모가 미국으로 가기 직전이었다.
"내가 이제 가면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그 전에 네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다..."
그때는 좀 마음에 동요가 일었다. 결혼하고 나니 친정 피붙이가 그리웠던 것이다. 하지만 만나지는 않았다.
"내가 니 친엄마였으면 임신하고 있다는데 한달음에 달려갔을텐데, 또 너도 바로 나 만나러 왔을텐데. 한 다리가 무섭다, 그쟈?"
둘째 이모는 그때처럼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았다.
그때 임신 중이던 둘째 아이가 이제 다섯살이 되었으니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다.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중간에 또 갈아타고.... 이모가 사는 안산의 상록수역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니, 내 알아보겠나?"
전철역 앞에서 만난 이모들을 난 알아보았다. 참 신기하다 싶었다.
30년 세월이 흘렀건만 난 두 이모의 어렴풋한 얼굴 형상과 특히, 목소리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모들도 첨엔 날 몰라보겠다고 놀랐지만,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내게도 어릴 적 모습이 아직 남아있다고 그랬다.
둘째 이모는 65세로 굉장히 말이 많고 씩씩하고 완벽한 성격이었고, 막내 이모는 59세로 차분하고 고운 목소리처럼 자태도 하늘하늘한 코스모스같았다
이왕이면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내 기대와 달리 이모들도 꽤 많이 삶에 지쳐보였다.
다만 그들이 가진 신앙이 알 수 없는 힘을 부여하고 있었다. 이모들은 나를 위해 예배하고 기도했다.
3시간 정도 머물다 애들 핑계로 자리를 털고 일어서니 ,
"아이구, 기집애도... 이모들하고 하룻밤 잘 여유도 없나?"
하며 섭섭해 했지만 난 그 수다쟁이 둘째 이모랑 밤까지 보내고 싶은 마음은 정말 없었다.
막내 이모가 차비 하라며 5만원을 찔러주셨다. 난 필사적으로 사양했다.
"받을 수 없어요. 오히려 제가 용돈을 드려야 될텐데요."
"괜찮다. 이모는 원래 그런기다...."
그 말에 조금 마음이 짠해졌다. 그런 이모의 정을 지금껏 느끼지 못한 세월이 억울했다.
남편은 마누라가 30년 만에 친정 이모를 만난 사실에 흥분하며, 뭔가 극적인 얘깃거리를 원하는 듯 했지만 난 해줄 말이 없었다.
그 날 돌아오는 차속에서 난 생각했다.
엄마가 예뻤으면 뭐하며, 이모가 둘, 셋이나 있으면 뭐하며, 지금와서 죽은 엄마 추억하면 뭐하며, 평소 자잘한 정도 나누지 못한 이모를 이제사 만나면 뭐하며....
그런 생각을 아무 가책없이 하는 나를 들여다보며, 정말 내 감정이 많이 메말랐다, 심각한 지경이구나..... 싶었다.
지난 세월을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모들은 또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하기엔 세월의 공백이 너무 컸고 시간도 없었다.
다만 저 어린 날의 짧은 기억 몇을 밑천삼아 지난 날을 추억한 게 다다.
난 아직도 이모가 왜 이제와서 새삼 나를 찾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