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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408

아침마다 깨집니다


BY 최지인 2005-04-02

 

 

 
작가 : 최지인
 

요즘은 날씨만 왔다리 갔다리 하는 게 아니라

이 부산 아지메도 날씨 못잖게 마음이 들쭉날쭉입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중학생 딸애와는 눈빛만 마주치면 둘이서 으르릉

서로 입 꿰매고 살면 되지 싶어 자크달고 살았더니

남편이 집안에만 들어오면 분위기가 불편하다고 불

평.

 

결국은 이러저러하다고 하소연했더니

특유의 성격을 어찌 그리도 잘 살리는지 버럭~ 소리부터..

이러니 도리어 불난 곳에 부채질 하는 격..

그래놓고는 나더러 엄마노릇 제대로 못한다고 혼내고.

 

아이가 내 마음대로 안 되니

살림도 귀찮고 밥 맛도 없고

자연히 냉장고엔 제때 주부 손을 타지 못해

제 풀에 시들고 물러터진 부식들이 늘어 가고

급기야는 어제 남편한테 딱 걸렸네요.

 

안그래도

화풀이 할 대상을 찾던 울 남편

"집안 꼴 자알 돼간다..돈이 썩었냐?"면서

한꺼번에 폭발^^

저 엄청 깨졌네요.

 

제가 생각해도 한심하고 혼날만 하지만

그래도 너무 심한 거 같아서 어찌나 서럽던지요

앞으로 냉장고 속 다 비울 때까진

절.대.로. 아무 것도 사지 말라고 엄명.

 

조그맣게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알. 았. 어. 요. 하고 끝났는데

정말이지 왜 사나 싶어서..훌쩍 훌쩍..^^

 

오늘 아침엔 나가면서

현관문 앞에서 배웅하는 저에게

"머리는 또 그게 뭐꼬" 타박합니다.

며칠 전 볼륨퍼머라는 걸 했더니 영 마음에 안드는

모양인지

내내 눈길이 곱지 않더니 결국은 한 방 먹이고 가네요.

 

그래서 오늘 아침부터 냉장고 대청소 했네요.

먹지도 않을 거면서 아까와서 넣어두었던 것들

과감하게 그냥 정리했네요.

놔뒀다 또 혼나는 것 보다는 낫것지유?

저 잘했지요..?

 

사실 정리하면서 보니까

뭐 그리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말이지요.

고구마가 두어개 얼었던 부분이 문드러졌고

먹다 남은 호박이 3분의1 정도 물렀고

파 꼭다리 몇 개 말라 비틀어졌고

국물은 다 먹고 무우만 남은 동치미 한 통이랑 

오래 냉동실에 넣어 둔 떡이랑

제사 지내고 나서 모아 둔 대추랑 곶감

그리고  미수가루랑 아이들 사탕..정도.

 

치이~~

이 정도는 누구나들

한 번쯤 경험하는 일 아닌가요.

 

이제 눈물 콧물 닦고 

친구한테 전화해서 영화 한편 보여달래야겠어요.

속상할 때 위안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싶네요.

 

우리 님들 남편들도 다 이런가요.

제가 간곡하게 부탁하는데요.

남편분들~절대로 아내의 영역까지 침범해가면서

잔소리 늘어놓기 대장은 하지 마셈~~'

치사한 일입니다.

 

정말이지 너무너무 자존심 상하고 속상하거든요.

저, 나가서 기분전환하고 올랍니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