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싸우고 답답해서 집을 나섰다.
갈 곳이란 뻔하다.
내가 가꾸고 있는 화단이 있는 곳으로 갔다.
서울거리에 사람이 넘치듯 거리에 사람이 넘친다.
라이브 뮤직 축제가 전국적으로 유명한 곳이고 지금이 그 축제 기간이란다.
도시 전체가 술렁이는 느낌이다.
하지만 음악을 즐길 줄 모르는 내겐 강 건너 불이다.
남편과 싸우고 나면 모든 것이 더욱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 아이들처럼 사랑스럽던 꽃도 나무도 아무런 느낌을 주지 못한다.
오가는 사람들도, 꽃도 나무도, 바람도 태양도, 그저 낯설기만 하다.
텍사스의 거친 바람과 햇빛에 말라버린 흙 속에 심겨진 꽃과 나무들이 갈증을 호소하지만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세상이 너무 썰렁하고 황량하고 그 속에 던져진 자신의 모습도 처량하고 쓸쓸하다.
그냥 화단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아무런 의욕도 일지 않는다.
자꾸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쪼그리고 앉았다.
걷는 것도 힘들어서다.
넋을 놓고 바라보는 꽃밭에 다른 것들과 달리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물기 하나 없어 보이는 땅에 그것만은 야들야들 연하고 싱싱한 녹색이다.
모두 시들시들해 보이는데 혼자서 활기있어 보인다.
돌나물이다.
이곳으로 이사하던 날 남편은 뒷뜰에서 돌나물을 뜯어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새로 이사한 곳이 아파트였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화분에라도 키우겠다고 하였다.
일 년 전 남편이 한국마켓에서 발견했다고 들고 왔던 것이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나물 중의 하나지만 미국에 살면 구하기 어려운 나물 중의 하나다.
줄기가 쇠어서 먹을 수 없는 돌나물이지만 키우려고 사왔다고 하였다.
반가워하며 뒷뜰에 던져두었더니 제법 많이 번져서 먹을만 하게 되었는데 다시 이사를 하게 되어 속이 상했었다.
뜰에 꽃이랑 나무랑 나물을 가꾸는 것이 취미인 나는 뜰이 없는 아파트로 가는 것이 싫었다.
남편은 화분에라도 키우겠다고 하였지만 그다지 고마운 생각이 들지 않았다.
화분에서 자라면 얼마나 자라겠다고...
그러던 것이 이곳에 화단을 가꾸면서 한 구석에 던져 두었더니 어느새 자리를 잡고 강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니 스멀스멀 내 안에 그 강한 생명력이 전달되어 온다.
나도 모르게 웃었다.
잠시 더 바라보다 돌나물에게 말을 건넸다.
"너, 참, 대단하다. 이 거친 환경에서 유난히 싱싱하게 자라는 비결이 뭐지?"
"......"
여리디 여리게 보이는 돌나물이 강한 햇빛에도 조금도 위축되어 보이지 않는다.
고향집 텃밭 두덕에서 보던 것보다 오히려 싱싱해 보인다.
"나보고 너처럼 싱싱하게 살라고?..."
"......"
환경을 탓하지 않고 씩씩하게 자라는 돌나물을 보면서 내 모습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 탓이 아니고 내 탓이지, 하는 생각도 든다.
다시 돌나물에게 말을 건넨다.
"알았어. 남의 탓 하지 않고 씩씩하게 살께..."
쪼그리고 앉았던 자리에서 엉덩이 툭툭 털고 일어섰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집에 가야지... 그래 남편이 돌나물을 사다 주고, 이사올 때도 챙겨오고 그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