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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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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는 첫사랑을... 그리고


BY 바다 2005-03-15

수년동안 해 오던 바깥일을 접고 봄부터 전업주부로 들어 앉았다.

집에 놀면 좋을줄 알았더니 쉬는 내내 우울한 날을 보내고 있다.

의욕도 없고 재미도 없다.

이불을 모두 뜯어 밟아 빨래를 해봐도

혼자 등산을 해 봐도

인터넷의 바다에 허우적거려봐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프게 이쁘던 늦둥이 딸도 초등3학년이 되더니  엄마의 잔소리에

말대답만 빽빽하며 알밉게 굴고

불면증이 있는 신랑은 밤새 거실에 텔레비젼 켜놓고 신경 거슬리게 밉상 부리고

벌어둔 돈은 없고 돈 쓸데는 많아 걱정이고...

그렇게 빨리 가던 시간들이 멈춰 있는듯 하다.

 

멍한 마음으로 베란다에 앉아 아래에 있는 학교 운동장을 내려다 본다.

봄빛은 눈부시고 아이들은 활기차다.

마음이 우울한 사람에게 봄은 더욱 가혹하다.

날씨는 이렇게나 좋은데..

새잎들은 저렇게나 싱싱한데..  나는왜? 하는 마음때문이다.

 

아!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본다.

오늘 오후 아들의 학교에 가기로 했었지.

이제 고3이 된 아들학교에 진학지도 설명회가 있어 가기로 했었다.

서둘러 학교로 갔다.

 

강당에는 고3엄마들이 좋은대학에 보내기 위한 굳은 결의에 찬 얼굴로 많이도 와 있었다.

그렇지! 나도 고3 엄마지.

교장선생님과 여러선생님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비장한 각오로 올 한해를 입시성공으로

이끌어 가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인 공부를 할 것인지  또  일류대학이 바라는 바에 적합한 논술지도를,

면접 전략을...

어쩌면 저렇게 입이 아플만큼 열심히 설명해 주실까 싶을 만큼 많은 설명이 있었다.

아~ 때는 바야흐로 치열한 전쟁의 시간이 내 아들앞으로 다가왔구나를 실감하면서.

 

그러나 나는 역시 봄을 타는 우울증 환자였나 보다.

그날 고3아들에게 필요한 그토록 많은 정보들을 하나도 머리속에 담아오지 못했다.

다만~

그렇게 열정적으로 학교정책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그리고 교육부 정책에 대해서

과격한 용어까지 써 가며 설명하시던 교장선생님이  갑자기 낮은 목소리로 진지하게 하시던

그 말씀만을 지금도 기억한다.

 

"어머니 여러분 삶이 힘드신가요?

 속썩이는 남편이 미우신가요?

 그러면 첫사랑을 가슴에 품고 그리워 하십시요.

 그러면 현실을 잊을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힘든 우리 아이들에게 웃는 얼굴을 보여 주십시요.

 공부하라는 말은 우리가 할테니 어머니는 쉬어라 라고 해주십시요.

 웃는 엄마의 얼굴보다 더 큰 힘은 없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