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독 촌지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건 내 아이가 교직에 있고, 친정 오라버님이 학교 首長으로 계시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 참 많았다.
내가 첫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 시킬려고 했을때 오라버님이 내게 들려주신 당부가 있었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을때만 학교를 찾아라, 그리고 굳이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으면 학년이 다 끝났을때 전 담임선생님께 간단한 인사 정도는 관계없다'
그 간단한 인사라는게 절대로 금품은 건네지 말것이며 꽃바구니나 소액의 도서상품권 정도면 무난하다, 그 이상은 스승을 모욕하는 처사라고 하셨다.
그래서 난 이 말을 좌우명으로 새기다 시피했다.
내 아이는 성실했고 따라서 학교에서도 담임 선생님도 나를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그때 당시에도 치맛 바람 일으킨 학부모들 지금도 기억하고 있지만 그 아이들 중 단 한명도 명문대학에 입학했다거나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했다는 얘기 못 들어봤다.
물론 학교 다닐때는 빗나간 담임교사의 비호와 치맛바람 덕분에 반칙으로 우수하게 학점 땄다는 것도 안다.
학부모와 교사는 심하게 표현하면 공생의 관계라고 은근히 비하 시키는 말들을 한다
더 심하게 얘기 하자면 칼자루를 쥔 쪽은 교사라고 학부모는 생각하기 쉽다.
아이가 교사에게 인질(?)로 잡혀 있으니까 교사가 원하는대로 해 주지 않으면 내 아이가 불이익 당할것 같은 불안감에 봉투를 들이밀고 한번이라도 더 내 아이에게 더 관심 가져주길 바라는 이기심이 교사를 파렴치한으로 몰고 갔다.
교사는 나라에서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받고있다.
무엇이 부족해서 학부모에게 손을 내밀고 죄없는 학생을 문제아로 만들겠는가.
공급자가 있기에 자연히 수요가 따르기 마련이다.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로 따진다면 답이 안 나오지만 이 학부모와 교사를 두고 누가 먼저냐를 굳이 따진다면 난 학부모가 원인제공 했다고 생각한다.
見物生心이라고 했다.
돈앞에 무릎 꿇지 않을 만큼 당당하고 꿋꿋한 참 교사를 만드는건 학부모의 몫이다.
물론 교사의 자질이 문제 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나무가 고요히 있으려고 해도 바람이 흔들면 흔들리게 되어 있는 게 또한 촌지에 약한 이유다.
요즘 교육 공무원 검은 돈 받아서 생계 꾸릴 만큼 박봉도 아니다.
스승을 한낱 돈 받고 애들 가르치는 월급쟁이로만 생각 하다 보니 돈봉투 내미는걸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잘못 되었다고 생각않는다.
돈이면 다 무소불위라고 착각하고 있는 학부모의 사고가 더 큰 문제다.
물론 교사도 직업이고 일한 댓가로 나라에서 월급을 받는 공무원 신분인건 확실하지만 아이를 교육 시킬수 있는 자질을 가진 자격증을 가진 교육 기술자이다.
어떻게 보면 교사를 얕잡아 본 나머지 나온 행동들이 아니었을까를 생각하니 분노가 치민다.
교육의 붕괘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학생이 교사를 고발하고 학부모가 아이들 앞에서 교사 멱살을 쥐고 폭행하고,.........
결국 그 피해는 부메랑이 되어서 내 아이에게 돌아 간다는거 주지하고 있는 부모가 많지 않다.
교사에게 문제가 있으면 그에 해당하는 처벌을 내리는 감독관청이 있다.
학부모가 나서서 단죄 하는건 천부당 만부당한 주제넘은 월권이다.
학부모가 윗선에 진정은 할수 있되 그 교사의 잘못에 대해서는 처벌할 자격은 없다.
문제아를 촌지를 건냄으로서 우등생으로 둔갑 한다든지 우등생을 문제아로 만든다든지 하는 건 이제 과거의 얘기다.
요즘 젊은 교사들 참으로 지혜롭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참 교사가 많다고 생각한다.
검증된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KS마크가 붙은 인텔리들이다.
극히 일부분의 교사들이 교육현장을 흐리게 하는건 너무나 안타깝다.
그러나 소수가 다수를 잠식하지는 못한다고 본다.
학부모가 깨어있고 가정에서의 교육만 확실하게 시켜준다면 학교 붕괘는 오지 않는다.
아이를 교육 시키기 전에 부모부터 교육을 시켜야 확실한 교육 효과가 있을 것 같다.
君師父一體라고 해서 스승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된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제발 스승의 그림자는 밟더라도 스승의 인격이나 자존심만은 짓 밟지 말았으면 하는 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