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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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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촌지,,,그리고 내딸 만세!!!!


BY 오색여우 2005-03-14

내 큰 딸은 참으로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아이다.

부정적인 생각부터 먼저 앞선 다음에 '아니지 아니지' 를 

반복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내기위해 노력해야만 하는 나를 닮지않아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을  딸아이를 볼때마다 하게 된다.

이 아이가 초등 학교 2학년때의 사건이라면 사건이다.

나중에 사건을 겪으면서 이런 판단을 내리게 된거지만,

아무리 좋게 해석할래야 할수가 없는 흔히 볼수 없는

분이 담임이 되었다.

그 선생님을 둘러싸고 여러가지 참으로 복잡하고 좋지않은 소문이 무성했지만,

사람이란 언제나 자기 입장에서 말하는 묘한 습성이 있는까닭에,

 나는 가능하면 내가 직접확인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선

믿지않고 휘둘리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가능하면 그런

소문에 관해서 귀를 닫으려 했다.

그러나 새 학기를 시작 한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선생님께서

우리 딸아이의 알림장에 메모를 보내기 시작하셨다.

 그 메모를 보면 내 딸은 문제아였다.

일주일도 되지않은 사이에 어떻게 아이를 파악했는지도 의심스러운데,

처음부터 아이를 파악하기위해 상담이 필요한게 아니라,

문제아이기때문에 학교로 한번 나오란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은근히 나를 학교로 오라고 무언의 압력이

갈 수록 더해지는 것이었다.

처음의 메모엔 그냥 산만하다는 정도였는데,

잘 교육시키겠다. 죄송하게 생각한다는 나의 메모가

딸의 알림장에 실리고 선생님의 답장이 또다시 알림장을 통해

나에게 전달되고가 반복되면서 나의 딸은 자꾸 더 심각한

문제아로 발전하고 있었다.

1학년때도 꽤 까다로운 담임선생님밑에서도 칭찬 받으며

학교생활을 잘하고 예의바르다고 인사를 듣던 아이라

나로선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상당히 많았던 거 같다.

아무리 내딸이라 눈이 어둡다 하더라도 이 정도는 아니지 싶은데....

안 들어봐도 오디오요, 안봐도 비디오라며,

주변의 사람들과 그 선생님을 겪어본 엄마들은 모두가 다

나를 답답하다는 듯이 봉투를 마련해서 학교를 방문하라고 충고를 했지만,

나는 아이를 학교보내는 날부터,

 정말로 아이를 위한 상담외에는 내 아이만을 위하고 싶은 심보로

선생님을 찾아가거나 더군다나 촌지를 보내는 일은

결코 하지않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하고 다짐했던 터라

간단한 음료수를 준비하여 선생님을 방문했다.

그런데 내가 잘못판단한건지,선생님이 잘못된건지,

 아무래도 아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도 못한거 같고,

 내 아이뿐만이 아니라 도통 아이들에 관해선

관심도 없을 뿐더러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 소리만 반복하고 계신거다.

 처음 알림장에는 아이가 산만하다고 하시더니

상담을 하니 딸아이의 짝이 산만하여 가만있는 딸의 자리를

다른 데로 옮겼다든가 기타등등이었다.

그러면서 그 뒤로 딸의 알림장을 통한 선생님과 나의 서신이 한번씩

오갈때마다 내 딸의 자리가 계속 앞으로갔다 뒤로 갔다

옮겨지기를 여러번 하였고......

담임 선생님의 눈에는 내 딸은 드디어 그 반에선 둘도 없는 문제아가 되어있었다.

드디어 울 남편까지도 그만하고 촌지를 갖다 바치라는

소리가 나오고 난 정말이지 고민과 갈등을 거듭하게 되었다.

울 남편은 어디서 들었는지  판검사도 내 자식 책임진

초등학교 선생님은 못이긴다더라며 나를 닥달하기 시작했다.

아이만 더 힘들어 진다고....

뒤에 알고보니 남편과 같은 직장동료의 아들이 작년에

그 선생님반이었는데 첨에는 아주 문제아라고 해서

얼른 여기저기 수소문해 본뒤에 얼마간의 촌지를

갖다바쳤더니(?) 그 뒤론 칭찬일색이었다나 어쨌대나.....

그러나 내 아이를 위해 내가 그런일을 행한다면

그런 엄마를 갖지못한 다른 아이들은?

오랜 고민과 갈등 끝에 결국 난 그래도 내 의지대로,

 학교 선생님께는 학기가 끝나는 날에나

정성이 담긴 작은 선물을 하기로 한 나와의 약속을 스스로

지키기로 맘먹었다.

주변 모든 사람들은 나를 세상물정 모르는 바보 취급을 했지만

난 절대로 그럴수 없다고 맘먹고,

 딸아이에게는 상처입지않게

나쁜 이야기라기보다는 가능하면 솔직하게 말했다.

네 친구들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것처럼

선생님도 실수하고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데,

지금 선생님이 간혹 너를 오해하고

화를 내더라도  니가 이해를 해야한다.

선생님이 마흔명을 이해하는 것 보단

너 하나가 선생님을 이해하기가 쉬운거라고.....

그런 일들이 억울하긴 하겟지만 

학교에 니가 적응해야지 선생님이나 친구가

너 하나를 위해 모두가 변해 줄 수는 없는 거라고....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니가 학교 생활을 성실하게 잘하고 ,

무엇이든 힘든 일이 있어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비록 어리긴 하지만 엄만 널 믿는다고......

정말 힘들면, 그리고 억울해서 너무 억울해서 울고 싶을 땐

 엄마에게 이야기하면 언제나 모든 이야기를

널 위해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는 엄마가 있다면서.....

그리고 널 많이 많이 사랑해 줄 가족이 언제나

널 지켜보고 기다리고 있다고......

매일 매일 아침에 등교할 때 그리고

하교후에 등을 두드리며 아이를 안아주고,

행여나 상처 입을까 살얼음판 걷듯이  나는 매일을 불안해 했다.

학기초부터 시작하여 3 달 동안에 아이의 자리는 앞으로 뒤로

선생님의 마음에 따라 정확히 열세번을 바뀌었다.

한주에 한번씩....

난 처음엔 반 전체가 자리바꿈을 하는 건줄 알았다.

근데 나중에 알고보니 내 딸아이 혼자만 선생님의 기분따라

매 주 자리가 바뀐거였다.

이 자리바꾸기싸움에 끝을 낸건 나였다.

내 아이의 옆짝꿍이 산만하여 내 딸이 피해를 입어도

난 불만이 없으니 선생님께서 잘 생각하셔서 가장 적당한 자리에

앞자리든 젤 뒷자리든 어느자리라도 상관없으니,

내 아이를 앉힌뒤 더 이상 자리를 옮기지 않았으면 한다는

나의 마지막 정중한 결정타였다.

그러나 더 이상 자리는 바뀌지 않았지만

난 이때까지도 진상을 다 모르고 있었던 거였다.

어쨌든지간에,안정적이던 아이도 이 정도면 오히려

산만해지고도 남으리란 내 걱정에도 불구하고

딸아이는 밝은 얼굴로 학교 생활을 잘 해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적극적이던 아이는 나름대로 생각을 했는지

조용히 지내며  생활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일학기 후반이 될 무렵에는 그 선생님도

드디어 지쳤는지 선생님쪽에서 먼저 짜증을 내며

더 이상 쪽지를 보내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서 난 조용히 쪽지보내기를 멈추었다.

그리고

내 남편과 주변 사람들은 모두가

나를 보며 입을 딱 벌리곤 벌린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의지의 한국인이라나 어쩐다나......

근데 정말 놀라운 사람은

의지의 한국인으로서 

 박수를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내 딸이었음을 난 나중에야 알았다.

어느 날 딸아이와 나눈 대화 중 나온 우연한 말 한마디때문에

.

.

"산하야,

 요즘 학교 생활 힘들지 않아?"

"아뇨, 어머니,

전요 학교 생활이 너무 재미있고 좋아요.

무엇보다도 다른 친구들은 짝이 한명씩 밖에 없는데

전 짝궁이 세명이나 되어서 너무 좋은 걸요."

"아니 너 무슨 말이니?

짝이 세명이라니?"

"아~~~,예 그거요.

선생님께서요 뒤에 정말 제자리를 두고요

가끔씩 제 자릴 옮기셨는데요.

그게  분단과 분단사이에 있는 통로에

제 자리를 만들어주셨거든요.

그래서 전 뒷자리에 가면 진짜 제 짝꿍이 있구요

임시자리에 가면 양쪽으로 또 짝이 생기거든요.

그래서 제 짝이 세명이나 되서 얼마나 좋았는데요."

"허거걱, 이럴수가....."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야말로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난 선생님이 자릴 옮긴다해도 그렇게 임시자리에

벌세우듯이 앉힌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리라곤 정말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순진한건지 눈치가 없는건지,

구박받는 것조차도 그렇게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내딸이 너무나 고맙고 이뻤다.

"내 딸,만세!!!!!

내 딸 만만세!!!!"

.

.

그 뒷 이야기

-선생님께선 일학기가 끝날 무렵,

 아무리 못살게 굴어도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할 것 같았는지,

 드디어 고집스런 엄마를 포기하고,

 아이에게도 더 이상 아무런 눈치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구박(?)을 해도

 생글거리며 눈치(?)없이

 거저 "선생님 선생님"하며

 생글거리는 딸아이를 더이상 미워할 수도 없었는지 어쨌는지,

 아니면 반 대표로 나가 받아오는

 크고 작은 상장들이 본인의 근평때문에 필요했는지도 알수는 없었지만

 모든 걸 포기한 선생님 덕분에 편안하게 남은 이학기를 보내고

 지금은 승승장구하더니  6학년이 되었다.

그 뒤로는 운이 좋게도 대부분 훌륭하고 좋으신

선생님을 만나서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