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할머니 따라....뭘하는 건지 방 하나 가득 가위질을 하지만 할머니처럼 예쁜 옷은 나오지 않습니다.
할머니도 시방 심심해서 그림 올리기 하고 있습니다.
그때가 참 좋았는데 무슨 떼돈이나 버는 것 같아서 힘 주고 살았었습니다.
이때는 의상실이 사향길에 접어들어서 조용하게 살았습니다.
남들 다 하는 대학공부를 못한 게 한이 되어서 대학공부를 시작해서 02학번으로 대학 공부를 하고, 양장점은 알바로 생각하고 대학공부를 더 열심히 시작했습니다.^^
결국 첫학기를 제외한 모든 학년을 장학생으로 다녀서, 졸업할 때는 동창회장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 생각함면 잘 했다고 박수를 주고 싶습니다.
집에 들어오면 살림하면서 양장점도 운영하고, 낮에는 학교생활을 하고, 그것도 전학년 장학생으로.
정말 이를 악물어 피를 머금으며 이겨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려운 아이들 등록금 마련하기 어려운 학생들이 얼마나 미웠을까요. 그러나 그 즈음은 나도 등록금을 걱정하는 학생이었습니다. 막내아들이 군에 입대하는 계기로 공부를 시작은 했는데, 사 남매 공부를 시키고 난 뒤라서 가정 경제가 풍족하지가 않았습니다.
막내딸이 in 서울의 굴지의 K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제가 아르바이트를 해 가면서 공부를 하던 터인데 등록금을 마련하기가 어려워서 휴학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엄마가 공부를 하던 터라 내가 얼른 휴학을 했습니다. 그 아이도 성적이 좋아서 학교에서 선생님의 칭찬을 받는 아이였는데, 엄마 때문에 학교를 쉬게 한다는 게 말도 안되는 일이지요.
학교를 졸업할 즈음, 나는 공부가 힘들었는지 식도암 진단을 받고 말았습니다. 결국 어렵게 학교는 졸업을 했지만 몸의 건강이 따르지를 못해서, 식구들의 반대로 사회활동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젠~장.
그래도 소원하던 대학공부를 끝낸 것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식구들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아마 어려웠지 싶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늘 갖습니다. 식구들이 협조를 해 주지 않았더라면 공부를 마치지 못했지 싶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고맙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기운이 가하다면 남편도 아이들도 모두 모두 업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