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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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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전생에 천민이었나 봐...


BY 낸시 2005-03-13

어렸을 적 내 꿈은 엉뚱했다.
농사일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면서도 농사꾼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땡볕에 땀 뻘뻘 흘리고 일을 하면 얼굴이 퉁퉁 붓는 것을 경험하고서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땀 흘려 일하고 난 후의 기분이 좋아서였다.
한 때는 거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예의, 체면, 염치, 권위, 질서,...이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여보, 오늘 모임에 화장하고 가야 돼?"
"아니, 그럴 필요 없어. 그냥 편안하게 하고 가도 돼."
부부동반 모임이 있을 때 가끔 오가던 대화다.
나는 화장하고 예쁘게 차려입고 우아한 여자 역할을 하는 일을 즐기지 않는다.
예의나 격식을 차리는 모임은 불편하게 느낀다.
누구집에 놀러가서도 실내장식이 잘되고 청소가 깔끔하게 되어있으면 불편하다.
혹여 내가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되고 그 느낌이 싫다.

 

남편 덕분에 나는 유한부인이 되었다.
쇼핑이나 다니고 이집 저집 서로 번갈아 손님 노릇하며 살면 되었다.
같은 직업을 가진 남편을 둔 여자들은 모여 쇼핑, 골프, 아이들 교육...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 자리에 앉아서 나는 따분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그런 자리를 피했다.
나는 혼자 잘노는 여자로 소문이 났다.
혼자 노는 시간에  수를 놓고, 옷을 만들어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마당을 가꾸었다.
차라리 그게 좋았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는 세계 각국의 요리를 맛 볼 수가 있다.
남편 덕분에 그 중에서 제일 잘한다고 소문이 난 집들을 돌아다니며 식사를 했다.
웨이터가 당겨 준 의자에 앉으면 냅킨을 펴서 무릎에 얹는 것을 도와 주었다.
와인을 고르고 이름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요리를 골라 먹으면서 불편하기만 했다.
재수가 좋으면 맛이 그저 먹을 만 했고, 아니면 뭘 먹는지도 모르고 그냥 삼켜야 했다.
하지만 '무슨, 맛이 이래?' 이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 자리엔 보통사람들은 신문과 방송에서나 얼굴을 대할 수 있는 인사들이 끼어있기도 했으니까...
집에 와서 어린 상추에 된장 되직하게 끓여 입맛 쩝쩝 다시며 먹으며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텃밭에서 갓 뜯은 야채를 된장 넣고 참기름 넣고 비벼 먹는 것이라니까... 아, 맛있다!.."

 

"여보, 금테 두른 그릇 말이야. 이번에 그것 버리고 갈까봐..."
"아니, 그게 얼마나 비싼 것인데 무슨 소리야..."
"난 편하게 살고 싶어..."
"안돼!..."
이민 오기 전 남편과 실갱이를 했다.
손님 접대용으로 샀던 좋은 그릇들을 시누이에게 주고 가고 싶다는 나와 안된다는 남편과...
결국 남편은 내 고집을 꺾지 못하고 맘대로 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영국제 장미무늬가 든 그릇 세트랑, 그것보다 몇 배나 비싼 미제 그릇 세트는 시누이 차지가 되었다.
그것들이 내 손을 떠나던 날 난 후련한 마음이 되었다.
손님이 오면 일회용 그릇을 쓰고 설겆이에서 해방되어야지...
아니면 가볍고 식기 세척기에 넣고 돌리기 쉬운 코닝을 쓰면 되고...

 

나는 땀 뻘뻘 흘리며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이사를 할 때도 이삿짐을 웬만하면 내 손으로 꾸렸다.
낑낑거리며 무거운 것을 들고 다니면서 나는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땡볕에 나가 마당을 가꾸는 것도 좋아한다.
얼굴에 죽은깨가 생기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 시간이 내가 삶의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가끔 남편에게 말한다.
"여보, 나는 전생에 천민이었나봐. 왜 땀 흘리며 일하는 것이 좋지?"
이제 남편이 퇴직을 하고 나는 예쁘게 차려입고 우아한 여자 역할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런데 그 시절이 조금도 아쉽지 않다.
오히려 해방되어 자유를 찾은 느낌이 든다.
비로소 내 자리를 찾아든 느낌이다.
난 전생에 정말 천민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