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산화탄소 포집 공장 메머드 가동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613

선물 (풍덕새가 운다)


BY 호호 아줌마 2005-03-05

 

선물


나는 선물하기를 좋아한다. 거창하게 선물이라 말하기에는 쑥스러운 것들이지만 무언가를 남에게 주기를 좋아한다. 귀에서 풍덕새가 우는 모양이다. 곡간에서 인심난다고 하지만 내경우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미래의 일은 생각지도 않고 내 것을 퍼주다 보니 정작 나는 그 물건을 사는 경우도 많다. 남편이 옆에서 잔소리만 하지 않는다면 사실 아무렇지도 않다. 참으로 해괴한 성격이다.


결혼하기 전 사무실로 찾아오던 보험 설계사 아줌마가 있었다. 하도 어색하길래 물어보니 설계사일이 처음이라고 했다. 올 때마다 사탕도 주고 휴지도 주고 이쑤시개도 주었나??

나는 그 아줌마에게 작은 보험을 하나 들었다. 아줌마는 내가 첫 고객이라면서 선물로 무엇인가를 주고 싶다고 했다. 그때 문득 나는 얼마 전에 알게 된 사람과 만날 일이 생각났다. 그래서 나는 필요한 게 없으니까 남자에게 줄 선물을 달라고 했다. 지갑과 벨트 세트였다.

그는 뜻밖의 선물을 받아들고 가만 바라보기만 했다. 순간 나는 그 선물이 혹시 싸구려라서 마음에 안 드는 것 아니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물건을 보는 눈이 없다. 남들이 비싸다 하면 비싼 물건인가 하고 싸구려라 하면 그런가 하는 정도이다.

“왜 마음에 안 드세요?”

“아, 아뇨. 무척 마음에 듭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는 가끔 만났고 아마도 그 후로 내가 붉은 천에 장미가 수놓아져 있는 손수건도 그에게 주었던 모양이다. 물론 그것도 보험 아줌마가 준 것이다. 그는 여자인 나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손수건을 안주머니에 가지고 다니기 때문이다. 손수건으로 내 얼굴에 묻은 립스틱 자국이나 음식의 흔적을 닦아 주기도 했다.

이후로 그는 내게 실크 스카프를 선물해 주었다. 굉장히 길고 하늘하늘한 스카프였다. 너무 멋스러워 내게는 사실 어울리지도 않았는데 줄기차게 두르고 다녔다. 이후로 고급 세무 장갑도 선물해 주었다. 그 장갑을 끼고 둘이서 등산을 하는 바람에 못쓰게 되었다. 또 캐치아이라는 예쁜 보석이 한참 유행하던 시절에  캐치 아이 귀걸이도 내게 사주었다. 너무 이뻐서 좋아라했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까 한쪽 귀걸이가 빠져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월급 탔다면서 내게 사준 반지, 그것도 잃어버렸다. 어디서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그는 매우 서운해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반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덥석 받다니...... 내가 순진한건지 바보인지 모르겠다. 얼마 후 이후로 우리는 결혼을 했다. 


어느 날 문득 친정 엄마가 내 스카프가 이쁘다하실길래 신랑이 데이트 할 때 선물한 것이라면 자랑을 늘여 놓았다. 옆에 있던 신랑, 난생 처음 백화점에서 비싸게 산 물건이라면서 쑥스러워 했다. 딸에 대한 기대가 컸던 엄마는 우리 결혼을 처음에는 탐탁지 않게 여기셨다.

“우리 딸내미가 스카프에 넘어갔구먼.”하시면서 엄마는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이 사람이 마음이 참 고와요.”하면서 우리 신랑, 내가 선물한 손수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뭔 손수건?”

나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빨간 손수건, 장미가 수 놓여져 있던 것, 기억 안 나?”

“아, 그 손수건, 맞다. 보험 아줌마가 주었지.”

“뭐???”

남편은 처음으로 여자에게서 선물을 받아 보았다고 했다. 지갑과 벨트를 받았을 때 너무 감동을 받아 내 치아에 묻어 있던 립스틱마저 이쁘게만 보였는데, 그게 보험 아줌마가 준거라니! 하면서 펄쩍 펄쩍 뛰었다.

그때 이후로는 심심하면 자기가 산 스카프는 얼마짜리이고 장갑은 얼마인데 자기는 고작 남이 준 것을 들러리로 받았다면서 속았다고 난리다.

“아니 내가 자기를 속였다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냥 물건이 있기래, 필요해 보이기래 준 것 뿐인데, 사람의 호의를 이렇게 무시하다니.”

하고 아무리 내가 반박을 해도 신랑은 콧바람을 씩씩 불며 분 해 한다.


시댁이나 친정에서 김치나 채소, 생선이 잔뜩 올라오면 마음이 심란하다. 이걸 다 먹지도 못하고, 넣어 둘 때도 없고, 보기만 해도 심란하다. 그러면 귀에서 풍덕새가 운다. 풍덕 풍덕 퍼주어라,  풍덕 풍덕하고.

나는 열심히 풍덕 풍덕 이웃에 나누어 준다. 친정에 온 것은 시댁에 가져다 주기도 하고 시댁에서 올라온 것은 친정에 보내기도 한다.

“이것아, 니 시에미가 고생해서 보내 준 건데 이걸 친정에 가져오면 어쩌냐?”

가져다주어도 엄마는 타박이다.

“그럼, 이걸 버려? 그러면 벌 받아, 엄마.”

남편은 아주 가끔 한마디한다.

“내 곡간도 봐가면서 퍼 주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