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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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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날의 추억


BY 27kaksi 2005-02-22

나의 유년 시절의 대보름은 아름다운 그림과 같다.

나이 차이가 나는 오빠들은-15년 이상- 며칠전 부터 다른
동네 사람들과 불놀이 시합을 위해 깡통을 구하고 구멍을 뚫고
불이 오래 가도록 여러가지로 준비를 한다.
그리고 집에서는 엄마가 나물반찬과 잡곡밥 준비에 분주하시다
그리고는 보름날이 오면,
동네 앞으로 넓은 벌판이 펼쳐졌던 우리 마을은 앞이 틔어
있어서, 여러가지의 구경거리가 있었다.
아버지는 논둑을 다니며 벌레들의 알을 태워 버리는 불을
놓으시느라 바쁘셨다.
논둑에 불을 놓기 시작 하면 여기저기에서 불이 놓아지고
온 들판은 빨갛게 타는 불과 연기로 장관을 이룬다.
화재가 나는 광경처럼 무시무시한게 아니라, 줄줄이
기역자로 아니면 미움자로 꼭 몽드리안의 구도처럼
아름다운 불의 향연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동네의 농악대가 구성진 농악을 하며 집집이 돌아 다니면
형편대로 쌀이며 잡곡을 내어놓고 그렇게 모아진 곡식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어 진다고 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오빠들의 친구들이 동네를 한바퀴 돌며
잡곡밥이랑 나물을 얻어다,
불놀이가 끝나면 먹곤 했는데,난 그속에 끼고 싶어 안달을
하곤 했다. 꼬마라서 거추장 스럽다고 늘 집으로 쫓겨 오곤
했지만....
밥을 아홉번을 먹어야 한다고 잘도 먹어대던 건장한 오빠친구
들은 지금은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이제는 아마도 손주 들의 재롱을 보는 할아버지들이 되어
있겠지....
젊은이들은,
동네 앞 공터에서 다른 동네 애들과 불놀이 시합도 열렸고,
어른들은 멍석을 깔고 윷놀이를 했다.
그옆에서,
여자들은 보름음식을 끝내고 같이 모여 강강 수월래를 했는데,
지나고 나면 꼭 누구누구가 결혼을 한대더라,
보름날 눈이 맞았대더라 라는 소문이 있곤 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 형부가된 애들 이모부도 언니랑 은밀한
만남을 가졌던 것 같기도 하고....

몸집이 작고 유난히 감기에 잘 걸리던 나는, 못가게 하는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오빠들을 따라 불놀이 하는 공터로
따라 가곤 했는데,
길고 긴 그네들의 불놀이 시합은 그칠줄
모르고 그냥 멀직이 서서 구경을 해야했던 나는, 금방 싫증을
내고는 집에 가자고 오빠를 졸랐다.
조금만 기다리라는 오빠의 말을 들으면 금새 눈물을 글썽이며
울기 시작하고, 얼마간의 징징대는 소리를 견디지 못해,
그러게 따라 오지 말랬잖느냐고 핀잔을 하면서, 나를 업고
돌아 오던 오빠의 등은 크고 따뜻 했었다.
어스름 잠이 드는 나의 얼굴 위로 환한 불빛이 밝게 닥아들다가
멀어지고 좀 뜨겁게 가까이 닥아드는듯 느껴지다가는 또
멀어지면서 오빠는 나를 집에 내려 주었다.
" 쯧쯧 ...따라 가지 말랬더니...오빠만 귀찮게 했구나"
혀를 차며, 나를 받아 안고는 착한 오빠의 등을 토닥이던
어머니는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자 세상을 떠나 셨다.
아마도 나의 대보름의 추억은 그때로 막을 내린 셈이다.

아! 아름다운 날들...
돌아 가고 싶지만 갈 수없는 나의 소박하고 정겨운 추억들.

빌딩숲 속에서 그래도 말린 나물들을 삶고, 잡곡밥을 하기위해
잡곡을 물에 담근다.
나의 유년의 기억을 그속에 담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