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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감 갈무리


BY 그림이 2005-02-20

곶감 갈무리 

그림이

남편이 시골에서 가지고 온 감을 홍시로 만들어 먹기엔 아까워 곶감을 만들었다. 광주리에 담아 베란다에 널어 두니 양이 너무 적었다. "조금 더 많았으면 좋겠다."라는 내 말에 남편이 "그렇네. 추녀 밑에 달아둔 곶감을 몰래 빼먹던 생각이 난다." 고 했다.
이틀 후 남편은 청도에 가서 석 접을 더 사왔다. 곶감 깎던 할아버지를 연상하면서 깎은 감을 굵은 실에 꿰어 빨랫줄에 걸고 남은 것은 베란다가 꽉 차도록 널어 놓으니 고향집 가을 풍경을 아파트에 옮겨 온 듯 맘이 푸근했다.
곶감을 깎으면서 세월을 깎아본다. 세월 저쪽을 돌아보면 가을걷이 후 온 가족이 함께 깎아 추녀 밑에 달아 놓으면 곶감은 담황색 발이 되고, 뜨락에 널어 놓은 무우말랭이, 끝고추,호박,박우거리,등 겨우네 먹거리와 조화를 이루면 가을이 익어감을 알았다.
곶감을 말리는데 정성을 다 했다. 놓여진 위치에 따라 말라 가는 정도의 차이가 있어 잦은 손질이 필요했다. 말랑말랑 적당히 건조됐다 싶을 때 고른 형태로 모양새를 내어 항아리에 껍질 한층, 감 한 층씩으로 넣어 덮어 두었다가 얼마 후 살펴 보니 하얀 분이 고르게 핀 것이 옛날 조부님께서 만드셨던 것과 별반 차이 없어 첫 솜씨에 만족했다.항아리에 그득하던 곶감은 귀한 손님이 가실 때 조금씩 드렸다.직접 만든 정성을 아시고는 모두 좋아하셨다.
두 아들과 며느리도 집에 오면 항아리에 담긴 곶감을 꺼내와 맛있게 먹었다. 그 모습을 보면 남이 할 수 없는 아주 귀한 음식을 나만 만들어 주는 기분이 들어 뿌듯했다. 사와서 먹었을 땐 그저 어릴 때 좋아했던 간식으로 여기고 먹었는데 지금 내가 내다 먹으려니 손이 오그라든다. 어릴 때 할아버지께서 개수를 헤아려 늘어뜨린 것을 한 개씩 빼먹으면서 들킬까 맘 졸이던 곶감은 내가 만들었다는 대견함에 얼른 손이 가질 않는다. .
남편이 몇 개쯤 남았느냐고 묻는다. 다가오는 설 제사 때 쓸 거라고 크고 보기 좋은 것은 없애지 말라고 당부한다. 자식으로서 가신 분께 작은 정성이라도 바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부모님의 나이에 와서 더 절실한 모양이다. 정성만큼이나 제값을 하는 곶감은 용기와 시기와 장소가 어우러져 잘 갈무리를 해야만 먹기좋고 보기 좋은 곶감으로 완성된다.

인생의 가을을 맞는 시점에서 나를 생각해 본다. 나를 담아 둘 용기에 대해 어떻게 정성을 기울여 살아왔는가? 또 다른 내 인생 갈무리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진다. 내 딴에는 똑같이 정성을 기울였다고 생각 헸는데 그 중 몇 개의 실패작이 보였다. 실패작은 과감히 버리라는 남편 말에 아깝지만 쓰레기통에 버렸다.

초등학교 다닐 때 친정 어머니께서 자주 오셔서 아이들을 돌봐 주셨다.
큰아이는 학년 전체에서 순위를 다투었고 작은놈은 그렇지 못했다. 자연히 큰아이 관계로 학교에 종종 가게 되었고, 작은 아이 선생님께서도 큰아이에 대해 늘 칭찬해 주어 나도 모르게 큰놈에게 더 관심이 갔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어미야 아이 둘을 두고 차별을 하지말아라."라고 하셨다. 무슨 차별을 했느냐고 되 물으니 작은 아이가 '엄마 아빠는 나한테는 관심없고 공부 잘하는 형에게만 관심 있으니 나는 놀아도 괜찮다.'라면서 숙제도 않고 문밖으로 나가 놀더라는 얘기를 해 주셨다.
많지도 않는 둘을 두고 어미의 소홀함이 상처를 줬나 싶어 그 후에 조심했지만 지금도 아이의 맘속에 둘 다 공평하게 한다고 여기는지 의문스럽다. 며칠 전 며느리가 "시숙께서 결혼할 때 조건 좋은 손위 동서가 들어오게 되면 어머니께서 형님을 더 이쁘하실텐데 그러면 저가 속상하지 싶다고 솔직히 말한다.

내 가족이 된 며느리는 나로선 그만하면 됐다고 할 정도로 골고루 배워온 며느리에게 자취를 하던 아들을 맡겨 짐을 벗은 듯 맘이 편하다. 이러한 며느리가 사랑스럽다. 그런데 며느리는 앞으로 맞아야할 손위 동서에게 시어머니 사랑을 뺏길까봐 저토록 신경을 쓰니 어른 노릇도 쉽지가 않다. 어렸을 적의 작은 아이가 제 형과 차별된 애정을 느끼며 서운함을 표현했듯이 며느리도 미리부터 신경을 곤두세운다.

어느 누구보다도 내 가족에게 인정받고 싶다. 내가 떠난 훗날 나의 존재는 내가 쏟은 정성만큼 가족이나 주위사람들이 나를 갈무리 해줄 것이다. 깊은 장방에 소중히 갈무리될지 마당 귀퉁이에 버려져 누구에게도 관심 밖이 될지는 나 하기 나름일 것이다. 똑같이 내 손으로 깎아 말린 곶감이 정성과 관심에 따라 한 쪽은 항아리에 소중히 갈무리 되고 다른 한 쪽은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