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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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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애인에게 편지쓰다.


BY 그림이 2005-02-19

시누이는 아래위 시숙과 시동생이 k대 나온것을 남편이 나왔다고 한것이다.

일부러 그랬는지 몰라서 그랬는지 그것을 숨기려는 나의 남편은 고통스러

웠겠지. 복학한 등록금 영수증이 문제였다.

정말 시시한 들어보지도 못한대학, 내가 실망한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러나 엎지런 물이다. 이 상황에서 남편의 기를 꺾기는 더더욱 싫었다.

용기를 가지세요.

어디서든지 열심히 하면 되잖아요.

공부 하면서 2년 동안에 남편이 가지고 간 돈은

생각보다 너무 많이 들었다.

70년초 정말 취직은 잘 되었다. 어지간하면 기업에 들어갔다.

졸업한 남편은 취직이 잘 되지 않았다.

나는 공무원이였다.

큰 아이도 낳다.

정말 돈을 아껴쓰야했다.

월급을 취직 할 동안 남편께 맡겨도 보았다.

며칠이 못가서 동이 났다.

나의 지참금도 없어졌다.

많지도 않는 패물 전당포에 맡긴 영수증이 내눈앞에 딩군다.

결혼선물인데 엄청난 수수료를 지불하고 찾아오기를

몇번째 아예 영수증을 찢어버렸다.

집에 노는 남편은 나의게 폭행을 하기 시작한다.

연애 한곳에 했으면 잘 살았을건데

우리엄마가 너한테 나를 팔아먹었으니

네 맘대로 해라 말도 안되는 소리

그런데 나는 그때 왜 남편한테 잘못했다고

빌었을까 울면서 빌면 당신 잘못한게 없다

미안하다.  그러고는 또 많지도 않는 가구를

마구 던지고 부순다. 그래도 한마디 대꾸도

못했던 나 너무 겁이 많아 무서워한게 나의 약점이였다.

술도 못하는 남편은 매일 맨 정신이다.

어느날 옛날 애인에게 편지를 쓰란다.

어떻게 썼는지 기억도 없지만 울면서 썼다.

끝은 맺지 않은걸로 기억된다.

그걸 등기로 부친 영수증을 나의게 보여준다.

그때까지 엄마,오빠에게는 말 안했다.

나의 문제로 친정 부모형제에게 부담주기 싫었다.

좀 어려운건 알지만 딸의 고통을 몰랐는데

어느날 친정엄마와 외숙모가 왔는데

나와동갑인 여외사촌은 신랑이 서울법대 출신으로

세관에 사무관이였다.

자연히 우리 외숙모는 사위자랑을 하였다.

그당시는 세관에 다닌다면 괜찮은 직장이라고 생각 할 때다.

듣고 있던 남편은 자기 처지를 아는 외숙모가 밉기는 했겠지.

설거지 하는 나의게 연탄재를  던졌으니 상상을 해보세요.

온 부엌과 나는 탄 연탄재 세례를 받았으니

아직도 생존하신 외숙모는 볼때마다 x무슨서방 아직도

그성질 가지고 있나 너 길레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