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선배의 소개로 신랑을 만났다.
그 선배언니의 결혼식날 신랑은 나를 보았단다.
정식으로 소개를 받은 것은 선배언니의 아이가 돌하는 날 만났다.
그 언니가 우리를 이어줄려고 했던 이유는
"둘이 너무 닮아서..." 그것이었단다.
결혼을 할려고 했을 때,
큰누나(시누)뿐만 아니라, 시댁사람들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혀야했다.
어른들은 사돈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를 댔고,
시누들은 무조건 싫었단다.
결혼식즈음하여, 그의 집에 갔을 때였다.
나는 그의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옆집에 (그의 친구집)에 멍청하니 있었다.
조금 뒤 친구부인이 나더러 숨넘어가는 소리를 한다.
"누구씨 나와 봐...누구 얼굴에 피난다. 나와 봐. 누나가 글쎄 할퀴었대."
놀라서 뛰어나온 나의 눈에 그는 정말 누나의 손톱자국을 얼굴에 남기고
있었다.
마데카솔을 발라주면서 온갖 오기가 다 생겼다.
그렇게 싫어하던 모든 가족들을 다 물리치고,
그는 어머니께 딱 한마디 했다.
"결혼식 안 해도 좋아요. 그냥 살래요."
울시댁 어른들 다 넘어가셨다.
마지막으로 어른들이 오라는 소리를 듣고 갔을 때,
그 때만 하더라도 큰 위력을 갖고 계시었던 시고모님(울아버님의 바로 아랫동생)
이 나를 보시더니,
"정말 둘이 많이 닮았네...결혼시키지."
그 말을 듣고서 일사천리로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나에게도 시누이가 다섯이 생겼다.
그렇게도 싫었으니, 이름도 외워지지가 않았다.
누가 누구인지도 몰겠고,
결혼 한 그 해 난 귀여운 아들을 낳았다.
울아버님 어머님은 그 이유하나만으로 내 편이 되어 주셨다.
지금 큰 시누를 빼고,
다른 시누이 네명은 아직도 나에게 경어를 사용한다.
왜 그런지 몰겠지만,
14년이 흐르고, 이제야 나도 나이가 들긴 드는 모양이다 .
시누이들이 나에게 아무런 소리를 하지 않는 이유가
늙으신 부모님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나의 숙제이다.
나에게 떨어진 숙제인 것이다.
실제로 시누이들이 하는 것보다 내가 하는 것이 훨씬 더 많다.
작년 여름에 백내장 수술을 해 드렸는데도,
가타부타 말 한마디 없었다.
어디 놀러가신다고 하셨을 때도,
그 많은 딸 들,
용돈하라고 한 푼 드리는 것을 못봤다. (이유가 있겠지만, )
시간이 흐르니, 울어머님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이 1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지금도 울신랑은
명절을 쇠고 나면, 시누이들이 친정으로 몰려 올 시간이면,
나더러 집에 가자고 한다.
나는 있던 그대로
친정이 없어서 갈 때는 없어도, 아무 말 없이 신랑 말에 따른다.
입었던 옷 그대로 짐을 싣고,
떠나오는 자리에
울어머님은 항상 배웅을 하신다.
"니가 고생했다... 조심해서 가라..."
그이가 그리 불효자는 아니다.
그는 자기가 장남이라는 이유로 모든 자리를 고사하고, 시댁과 가까운 곳에서 산다.
해외근무가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고, 서울 근무도 하지 않았다.
부모님 때문에...
난 일찍이 여읜 울부모님을 대신해서, 시댁엘 하고자 노력을 한다.
사람이 귀중한 것은 알기에...
울신랑이 그것을 알긴 아는 모양이다.
덕분에 나는 시누이가 다섯이라고 하면 첨엔 다 놀라지만,
가까이 사는 이웃들은 말을 한다.
"누구엄마 같은 외며느리는 다 한다."고 첨엔 뭔소린 줄 몰랐다.
---------------------------------------------------
가까이 지내는 아이의 친구엄마는 친정에서 귀하게 자랐다.
돈 많이 든다던 미술을 전공했고,
덕분에 사는 모습은 그림을 그려 놓은 듯이 산다.
그녀는 시누이다.
남동생에겐...
그녀를 첨 만났을 때
그 집에 놀러 가보고 놀랐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님이 계시었다.
많은 형제들 중에서 돌아가면서 모시는 중이라고 했다.
철없던 그녀가 시어머님을 육개월을 모시고, 다른 형제들은
계속 그 일을 그녀가 해 주기를 바랬다.
실제로 그 많던 식구들은 어머니의 안부에 전화 한통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거부를 하여, 어머님은 치매 노인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육개월을 가까이서 보고나서
그녀도 생각이 많이 바뀐 듯 했다.
그녀는 친정부모님이 계신다.
절대 남동생에게 부모님을 맡길 수 없다고 했다.
친정부모님이 그녀의 집에 와서 머무는 시간이 많기는 하다.
좋아 보인다.
아이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해 주기에 충분하다.
그녀의 신랑 또한 아무 말 없이 이해해 준다.
그녀가 백화점에 가서 친정 부모님 옷을 살 때,
나도 같이 울어머님 옷을 사 드린다.
그녀가 친정부모님께 하는 것을 보고 나면,
나도 그렇게 해 드리고자 노력을 한다.
시누이 올케 사이엔 무언가 있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올가족은 무언으로 답한다.
마음 내키는 대로
있는 그대로 하면 될 것이다.
자연주의 사상처럼 그렇게 실천한다면 무엇도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을 배우며 살고자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