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가 말했다.
"나중에 동생 결혼하거든 올케만 시키지 말고 같이 부엌에 들어가서 일도 하고 그래라..."
"헹~, 난 싫어. 내가 바보야? 고모들 보니까 울엄마랑 작은 엄마들만 시켜 먹던데... 고모들은 다섯이나 되어도 우리집에 오면 방에 앉아 술먹고 놀고 울엄마만 부엌에서 살잖아..."
그렇게 대답해 주었다.
하지만 올케가 생기고 나니 말대로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늙은 내 부모가 인질로 잡혀있는데 나는 약자가 될 수 밖에 없다.
출가외인이란 말에 두드러기가 돋는 나지만 결혼하고 나서 스스로 그 말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지독한 짠순이인 내가 올케옷도 하나 사다 주었다.
내 아이들 옷은 얻어다 입혀도, 시집 조카 옷은 사 준 적이 없어도, 올케가 낳은 아이들 옷도 사다 주었다.
내 부모의 노후를 맡겨 놓고 처분만 바라는 약자의 아부였다.
어머니가 암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던 때, 이 주에 한 번씩 주말이면 고속버스를 타고 어머니를 보러갔다.
일요일 아침, 어머니는 이불 속에서 내 발을 차며 얼른 부엌으로 가서 밥을 하라고 했다.
어머니는 직장에 다니는 올케가 일요일에 늦잠을 잘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어했다.
먼 길에 고속버스 타고 내려 간 딸보다는 직장에 다니는 며느리가 안쓰러웟던 모양이다.
나는 부엌에 들어가 밥을 했다.
올케는 나와 보지 않았다.
좀 염치없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감히 불평같은 것은 하지 못했다.
나는 약자니까...
그보다 동생보고 이불은 남자가 개키는 것이라고 잔소리를 하였다.
올케에게 잘 보여야 울부모에게 득이 될 것 같아서...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내려갔다.
동생은 딴살림을 나기로 했다고 아버지가 말했다.
아픈 어머니랑 같이 살면서 직장에 다니는 올케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니, 서울에 사는 딸은 위독하다고 빨리 내려와 보라고 하고서, 같이 사는 아들은 방 얻어 내어 보낸다는 것이 말이 돼요? 아버지 지금 제 정신에서 하는 말이예요?"
다른 방에 있는 올케가 들으라고 큰 소리로 떠들었다.
처음으로 시누이 노릇을 했던 일이다.
그 후 동생네는 딴 살림을 나지 않고 두어 달 후 어머니는 죽었다.
어머니가 죽고 난 후 내 입장은 더욱 약해졌다.
홀시아버지를 모시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아버지, 올케가 직장에 다니니까 밥 같은 것은 부엌에 들어가 챙겨 드세요. 옷도 아버지가 다려 입구요."
"아버지, 이 용돈으로 올케 생일 선물 사 주고 남은 돈만 아버지 쓰세요."
"아버지, 올케가 외식하자고 하면 절대 집에서 그냥 먹자고 하지 말아요. 얼른 옷 차려입고 나서서 앞장서 가자고 하세요."
...등등 생각나는 대로, 틈나는 대로, 아버지를 가르쳤다.
올케가 전화해서 불평하면 무조건 맞장구를 쳤다.
두 남자가 자기만 잡아 먹으려 한다고 말해도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거실에서 티비보는 시아버지가 미워 죽겠다고 해도 웃었다.
올케는 내가 제 언니인지 시누이인지 구분을 못하는 것 같았다.
시누이에게 시아버지 흉이며 남편 흉을 볼 때 단어를 골라 써야 한다는 것도 모르고 친정언니에게 하듯 막말을 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그것을 탓하지 못했다.
찬물 한 그릇이라도 울아버지에게 효도하는 것은 나보다 그녀였으니까...
올케를 탓하기는 고사하고 남동생에게 전화 할 때마다 올케에게 잘해 주라고 신신당부했다.
남동생은 누나 속도 모르고 잔소리가 듣기 싫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십 년을 더 살고 죽었다.
아버지가 죽고 난 후 내 입장이 달라진 것을 올케는 모르는 듯 했다.
전화로 여전히 남편 흉을 보았다.
그 남편이 내게는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인 줄도 모르고...
부모하고 남동생은 다르다.
"정말 그렇게 맘에 안들면 이혼해..."
올케의 불평에 이렇게 말해 주었다.
남동생에게도 전화해서 말했다.
"야, 정말 그리 싫거든 이혼해라. 내가 중매할테니까..."
내 말이 섭섭해서 올케는 큰언니에게 전화해서 차마 그럴 수 있느냐고 하소연 했더란다.
"얘, 내가 니 언니가 아니라 니 남편 누나다. 나도 네가 불평하는 소리 듣기 싫다. 내가 팔이 안으로 굽을 것이란 생각 못해 봤니?"
언니도 이렇게 말해 주었단다.
올케는 그 뒤 우리에게 남편 흉보는 일을 멈추었다.
어쩌다 전화하면 오히려 목소리가 밝아졌다.
둘이 잘 산다고 한다.
이혼하랄까봐 겁나는가 보다.ㅎㅎㅎ
시누이는 시누이다.
나도 시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