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대신 마을금고 이사회의에 참석을 했다.
원래도 사람 많이 모이는곳을 별로 좋아 하지 않는 남편인지라
굳이 채근하여 보지도 않은 채
당연스레 내가 참석을 한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마음금고의 경영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금리가 제1금융권 보다는 좀 높아서
내게 작은 이익이라도 더 주기 때문에 금고를 이용하는 것인데
일년마다 이맘때면 하게 되는 이사회에는
벌써 사년째 한번도 걸르지 않고 꼭 참석하고 있다.
이런 나같은 사람을 두고
"염불에는 맘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다"고 하는 거 같다.
정말이다.
내가 이 회의에 참석하는 이유는
늘상 회의가 끝나고 2부행사로 하는 추첨에 더 흥미가 있기때문이다.
대체로 추첨운(?)이 좋아선지 갈때마다 행운을 얻어 오게되니
이번에도 안 갈 수 없지 않은가.
선물이래야 휴지나 라면 정도가 대부분인데
한번은 압력솥을 타오기도 했었으니
마음속에선 이번에도 영락없는 욕심이 은근히 부글거린다.
겨울내내 아침 늦잠에 익숙해진 나는
병원에 오전예약이 되었다거나
오전시간에 다른 볼일이 생기면 어쩔 수 없이 바쁘다.
"나,나가면 자기가 청소기 좀 밀래요? 바빠서....."
"이번엔 추첨 하면 뭐가 될라나? 추첨 안되도 기본 선물은 주거든요, 그게 어디예요? 점심도 깔끔하게 부페로 먹고...."
거실을 휘젓고 다니며 부산을 떨어도 남편은
티비에다 눈을 고정 시킨 채 완전히 닭 쳐다 보는 소 같다.
"다녀 올께요~! 오다가 복지관에 들러 운동도 하고 올거예요.
내가 뭐 해 놓으라 했어요?
"청소기....!"
혼자 크게 웃었더니 그런 날 보고 남편도 웃는다.
보슬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다.
바짝 말라 있던 아랫연못에 물이 조금 분걸 보니
엊저녁 부터 내리기 시작한 봄비가
가뭄에 도움이 될 만큼은 내린 비 였나 보다.
점심을 먹고 시장엘 들려 나물 몇가지를 살 계획였는데
한손에 우산들고 시장 바구니 끌고 올 생각이
그냥 나를 차에 태워 복지관으로 옮긴다..
갱년기도 운동으로 극복 하라 했으니
열심히 해야지.
건강이 곧 돈 버는 거라는 거,
요즘 뼈저리게 실감 하며 실습하고 있는 중인데
나라도 열심히 해서 돈 벌어야지.
헬스기구를 골고루 열번 또는 스무번씩 돌면서
별스럽게 돈으로 따지고 있는 내가
어느새 궁티를 내는건가 싶어 생각해 보니 딱 일년 됐다.
실업자 된 것이.
처음엔 오랜 속박에서 벗어난 것 같은 해방감이 더 컸었는데
겨우 일년만에 나는 이러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속내를 남편에게 이미 보였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상스런 병에게 멱살이 잡혀 있는 그이에게 난 늘 씩씩 해야 하는데....
가랑비에 후즐근하게 날개를 적신 닭들이
내자동차 소리에 놀라서 우~ 몰려 도망간다.
내 크락숀 소리도 아랑곳 하지않는 놈이 누구더라? 어떤놈이야?
지난 늦가을에 열마리의 병아리를 키워냈던 암탉이다.
한꺼번에 열마리나 거느리고 다니는게 안타까워서
메뚜기를 열심히 잡아다 줬더니 사람을 전혀 두려워 하질 않는다.
내가 가까이 가면 친구쯤으로 생각하는지 저는 더 가까이 다가서는데야
어쩔 도리가 없다.
따뜻해지면 많은 병아리를 까게 해야지.
열마리쯤이어도 좋겠고 거기에 오골계도 세마리 합쳐서
다섯마리씩만 병아리를 깐다해도 몇마리야?
올라가던 차를 멈추고 차안에서 가랑비속의 닭들을 내다보며
나는 혼자 또 잠시 소박한 행복의 꿈을 그린다.
그래, 그냥 이렇게도 좋겠다.
" 뭐 탔어?"
"못 탔어요, 그냥 이 고추장 삼키로짜리~! 이게 어딘데, 사려면 비싸~!
그리구 오다가 마트에 들러서 이거 물엿~!"
"물엿은 뭣에 쓰려구?"
" 자기가 오꼬시 먹고 싶다면서요? 아참, 강정~!그거 만들어 주려구 ~"
"귀찮은데 뭘....오꼬시는..."
"안 귀찮아요. 그래서 엊저녁에 찹쌀찐거예요. 땅콩? 서리방콩? 뭘 섞을까?"
" 자기 맘 대루....."
엊저녁에 쪄진 찹쌀이
비가 오는 바람에 밖에 나가 보지도 못하고 방에서 뒹굴고 있는데
방이 하도 따뜻해서 하루만에 거의 다 마른 거 같다.
시집와서 엄청히도 치뤘던 잔치.
거기에 꼭 빠지지 않던 강정, 약과.....
그땐 그게 정말 지겹고 힘들어서
어린맘에 밤이면 혼자 울기도 많이 했었다.
나이탓인가보다.
이젠 내가 스스로 그런것들을 만들어 보고 싶어진다.
내 머리속에 있는 기억들을 끄집어 내서
몇년만에 하나둘씩 다시 실습을 해 보고 싶어진다.
붙어 말라버린 쌀덩어리를 빈병을 굴리며 떼고 있자니
결혼초의 시집살이가 추억되어
어렴풋 내 가슴으로 배어 스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