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을 넘긴 시각..
빈 도시의 썰렁함이 추위를 한층 가중시킨다.
구부정한 환자 한명과 함께 응급실을 찾은 보호자..
추위만큼이나 냉랭한 기운이 보호자에게서 흘러 나오고 있다.
차소리에 미리 문을 열고 나오는 간호사의 안내로
허름한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
보호자는 환자로부터 거리를 두고 바라만 보고있다.
어떻게 하는지.....
어디가 아프세요
언제부터 그러셨어요
휴.....술냄새
창피했다 보호자는.....
정말 어딘가 숨고싶을 정도로 ...
당직의사인지 조무사인지 환자의 배를 여기저기 눌러보고는
역한 술냄새에 고개를 얼른 돌려버리고 만다.
언제부터 얼마나 마신거에요 도데체...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하는 생각을 수도없이 했다.
숨겨놓았던 술병을 모두 없앴더니 어디 있냐며 닥달을 해댄다.
먹고 죽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며 아예 소주 다섯병을 사다 주었다.
이를 갈면서....
병나발을 불면서 밤사이 다 마셔버린 것 같다.
명절때 들어온 양주도....
지난 봄에 재미삼아 담아놓은 오디술도....
모두 마셔버렸다.
작년 모든 전쟁은 끝났다고 생각했었다.
사이사이 작은 전쟁들이 있긴 하였지만 참을만 하였다.
일년정도 참으로 편안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또 시작인 것이다.
금 토 일 월...
나흘 밤낮을 술로 보낸 사람...
죽을 작정을 하지 않고서야 그리 마셔댔을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내 일만 묵묵히...
그런 내 속은 어떠하였을까...
언어폭력과 던져 깨져버린 집기들...
거실은 난장판이다.
그러면서 그는 치운다.
아이들과 나....
모두가 각자 할 일을 한다.
쇼파 한쪽에서 짧은 호흡 내 쉬어가면서 병나발을 분다.
저러다 죽겠지....죽어버려라....
방관하는 악녀는 결국 4일째 병원데려다 달라는 그의 말에
굴복을 하고 만다.
가든지 말든지.....죽든지 말든지
그냥 그렇게 내버려 두질 못했다.
두려움을 피해 잠시 나가 있었던 예전에는 제 발로 스스로 찾았던 병원....
다시는 무슨일이 있어도 내 집을 지키리라 생각하며 있었기에
죽기를 바라면서도 아파 신음하며 병원가자는 그의 말에
한참을 버티다 동행하고 말았다.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할까
내가 문제인 것일까 그가 문제인 것일까...
불씨가 무엇이었든간에 술로써 해결해야만 하는 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참으로 힘들다..
아침외래로 다시 오라는 말을 듣고 응급처치를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 세시 반이다.
잠이 오질 않았다.
억지로 잠을 불러 함께하고 일어난 아침....
아들아이 졸업식 날이다.
당뇨로 인해 갈증난 입을 자꾸 물과 차...
배가 아프니 소화제 매실 등등을 마셔댄다...
참 무식한지고.....
또 마시든지 말든지....방관한다.
준비하여 아들을 보내고 시간맞추어 딸과함께 아들의 졸업식장에 참석했다.
불안하지만 축하해줘야 할 자리이기에.....마음이 아파도 밝은웃음 지어보냈다.
두어시간 흐른 뒤 폰이 울린다.
병원인데요....
***보호자 되시나요...의사선생님이 면담을 요청하시네요..
찍고 있던 디카를 아들에게 내어 주면서
엄마 먼저 갈테니 천천히 찍고싶은 친구들과 더 찍고 오라며 먼저 학교문을 나섰다.
그의 두툼해진 병원챠트를 펼쳐놓고
그놈의 술이 문제네 정말.....의사의 혼잣말을 듣는다.
신장의 기능이 너무 떨어져있고
당뇨치수 300 이상이고
췌장의 꼬리에 물혹인지 낭종인지 동그란 혹이 생겨있고 췌장의 머리부분은 잔뜩 부어있단다.
3년전 최악의 상태까지 간적이 있던지라....
알면서도 다시는 그러지 말리라 생각했던 그도 의지가 약해지면서 마셔대는 술...
죽기살기로 마셨지만 막상 숨 쉬기조차 힘드니 겁이 났을까...
더 이상...
무얼...
어떻게.....
얼마나 더 해야 끝이 날 것인지....
입원시켜 놓고 나 부르지말고 혼자 다 알아서 하라는 말만 해놓고는
돌아와 앉아있는 지금....
착잡하기만 할 뿐이다.
아들의 대학입학식....하숙....등등 복잡한 일이 태산인데.....
얼마나 더...
나를 괴롭혀야 직성이 풀릴까.
헌데
그이가 없는 이 집안이 너무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