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지난 지 벌써 며칠이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십여년 전에 다투었던 문제로 우린 올해도 다투었다.
문제는 친가와 처가에 대한 선물이다.
첫해에 대판 싸운 다음 우린 대체로
지금까지는 공평하게 이 일을 처리한 편이다.
그 것도 그냥 두면 당연한 것처럼 일방적으로 정해지니
내가 먼저 나서서 챙겨 온 까닭에....
사실 시집에 하는 거에 대해서 난 뭐라고 말하고 싶은 맘은 없다.
다만 문제는 언제나 처가에 대해선 무관심하고,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것에 있다.
그렇게 공갈과 협박을 하고 당근과 채찍으로 오래 훈련을 시키고
개조를 하려고 해도 이 습관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난 이런 일들을 겪을 때마다 소름끼치게 느낄수 밖에 없다.
올 해도 별 다르지 않은 문제 였다.
명절 며칠 전날 곰곰이가 선물을 한아름 사들고 들어왔다.
-이것 저것 고르기 힘들어서 이번엔 일괄적으로 사서 분배하기로 한 거였다.
우린 시가로 친정으로 다 형제가 만만찮게 많아서
분배를 할 때도 상당히 많은 애로 사항이 있긴하다.
나는 물건들 숫자와 사람 숫자를 맞추기 위해 대충 헤아려 본 다음,
"자기야 저건 누구거야?"
"응 그건 큰형네..."
"그럼 저건?"
"응 그건 작은 형네..."
"그리고 저건?"
"아 그건 작은 아버지네...."
.
.
처음엔 아무 생각없이 물었는데,
아니 웬걸?
나오는 이름이 다 시집 식구들 아닌가?
암만 물어봐도 울 친정식구는 입끝에도 안 오르네...
물건 수는 점점 줄어들고 남은 사람수도 점점 줄어들고......
그런데 어떻게 된게 아직까지 울 친정 식구는
한 사람도 입에 오르지를 않고.....
이 쯤되면 나도 슬슬 약이 오르고
가슴이 답답하다 못해 이젠 저 자궁밑까지 갑갑하다.
그래도 입술 꼭 물고 또 묻는다.
"저기 저건 ?"
"아 그건 고모님거...."
'이번에도 역시나.... 나쁜 놈!!'
입이 나쁜 놈이라고 소리 치고 싶어 근질근질해 진다.
그래도 인내심을 갖고 조금만 더 참아 보기로 한다.
아직 물건도 몇개 남았고, 그 중 하나만이라도 친정식구
이름 나오면 참아주기로 마음 먹으면서....
물건 수는 점점 줄어드는데 눈치를 보니
이게이게 끝까지 울 친정은 들먹일 생각을 않는거 같다.
슬슬 화가 나지만 지금까지 시켜온 교육이 마지막에
빛을 볼거란 기대를 절실히 하면서 매달려 본다.
그럼에도 속에서는 이미
퐁퐁을 풀어서 휘~이 ~ 저어놓은 마냥 뽀글거리고 있다.
이젠 물건 수는 더 줄어들고 주변에 신세 졌던 분들께 드릴
선물도 거의 다 정해졌다.
드디어 물건은 하나밖에 남지않았다.
난 생각한다.
'그래 마지막 남은 저거하나라도 울 친정 누구 준다면
나 오늘 암 소리 안한다.'
마음은 점점 절실해 지는데,
이 곰곰이는 너무 태연하다.
나는 그래도 끝까지 기대를 버리지 않고 묻는다.
"저건 누구거야?"
"어 그건 이번에 결혼한 조카거".
.
.
나는 드디어 뽀글거리던 속들이 미친 듯이 터져버렸다.
"그럼 우리 친정식구들 건 하나도 안 샀어?"
울 곰곰이 이제서야 눈치채고
'아차'하지만 이미 늦은 일이다.
"당신은 어떻게 된게 결혼하고 지금까지
자기 핏줄밖에 모르냐?
나는 하늘에서 떨어진 별똥이냐?
시집식구들은 사람이고 울 친정엔 사람없냐?
울 친정은 동물원이냐?"
"아니 그게 장모님이랑 처형들거도 샀는데
우리 직원들주려니 모자라서.....
처가집 걸 직원들 걸로 돌리는 바람에.....
내일 처가집 식구들 거 더 사올게"
"그럼 처가 식구들거 직원 주지 말고
니네 식구들거 주지 왜 울 친정 선물할거 직원들 줘?"
"그게 난 처가 식구들이 더 편해서 그런건데...."
"그래 그럼 당신은 나중에 우리 딸들 시집가서
인사도 안오고 선물도 안해도 그러겠네
'아구 우리딸이랑 사위는 얼마나 장인이 편했으면
선물도 안사고 인사도 안하는지 참 착하다'
그러겠네"
"......"
"당신은 참 속 넓어서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