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여섯시 반이면 한치의 어긋남 없이 알람이 나를 깨운다. 종교방송을 시작으로 밤새 뒤척이던 잠자리에서 귀부터 열리는 일상이다. 촛침 돌아가는 소리까지 잠속으로 다 불러 들여야 하는 불면증이 며칠 째 계속 되다보니 하루가 맑질 못하고 흐릿하게 구름속을 헤집는 기분이다. 우리 나이면 피해갈 수 없는 혹독한 홍역을 나라고 예외는 아닌성 싶다. 팔만사천개의 땀구멍이 비집도록 비질 거리는 진땀의 정체를 처음에는 대수롭지않게 지나쳤지만 정도가 심해서 심각하게 짚어보니 갱년기 증세같았다. 원인을 알고나서 더 심하게 앓아야 했다. 우울증을 동반할수 있다는 경험자의 충고가 더 무서웠다.
남편을 출근 시키고 집안을 송두리 째 뒤집을려고 했다. 그동안 일 핑게대고 게으름 부린 흔적이 곳곳에 함정을 판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전에 꺾어다 놓은 진달래의 씨눈이 바알갛게 터지고 있는 경이로움에 전신이 떨렸다. 세상에.......... 저 작은 씨눈 안에서 옹크리고 기다린 시간이 얼마나 길고 답답했을까. 새각시 연지볼 같은 수줍음이 내 앞에서 고스란히 알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숨죽이고 바들거려야 하는 시간들을 실내의 온기가 앞당겨 주었다 열여덟 꽃망울을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우고 살짝 눌렀다. 터질듯한 몸놀림에 황급히 손을 거두고 혹시라도 상처 입을까 질그릇 몸통을 어루 만졌다. 흐려있던 머릿속이 마알갛게 희석되는 것 같아서 왠지모를 흥분으로 CD를 걸고 듣고자 하는 곡을 찾았다. 이젠 인터넷에서 음악을 들을 수 없는 불편함으로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내 분신같은 음악이다. Secret Garden의 'Nocturne'........... -음악용어. 낭만파시대에 주로 피아노를 위하여 작곡한 소곡(小曲)에 붙여진 이름. 야상곡(夜想曲)이라고도 하며 여러 악장으로 된 것은 야곡(夜曲)이라고 한다. - 갑자기 손돌림이 빨라졌다. 늘어져 있던 몸속에서 꿈틀거리는 加速의 氣가 땀구멍을 틀어막고 터질듯이 부풀어 올랐다. 씨눈속의 생명체와 실내를 채워주는 시크렛 가든의 연주곡 그리고 녹차의 향이 어우러져 난 무아지경 빠졌다. 이 시간이 좋다. 잠시라도 나를 잊고 비워진 머리로 또하나의 나를 기억하는 이시간이 나에겐 더없이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다.
얼마전 정통 문예협회에 내가 올린 글이 된서리를 맞았다. 서슬 시퍼런 선배 글쟁이들의 그 먹물 기질이 내글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우리나이에 100% 소화해 내기 쉽지않은 맞춤법 그리고 행의 배열이 잘못 되었다는 지적과 주관적인 견해에 저으기 불만스러웠다. 수긍해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는,큰그릇에 미치지 못하는 나의 알량한 자존심이 날을 세웠다. 쓴소리에 너그럽지 못하는 좁쌀속 같은 이런 맘으로 글을 쓴다는게 오만이고 객기였을까를 생각했다. 부끄러운 맘 없지 않았으나 인정하기엔 뭔가 궁색한 해명거리라도 만들어야 했다. 맞춤법은 법대로 행해야 하는덴 불만없지만 주관적인 관점을 들이대고 내글에 티를 잡는 건 받아들일 수 없는 내 고집의 한계였다 주관적인 잣대는 정답도 없는 애매한 자기 견해에 불과한데 왜 이렇게 밖엔 못할까 하는 식으로 한 켠으로 쏠려서 무조건 자책하는 건 겸손이 아니고 自虐에 가깝다. 그러기 싫어서 난 아직도 작은 그릇에 지나지 않는가 부다. 차가 식어 버렸다. 생각에 빠지다보면 내 주변의 상황에 무디어지는 맹점을 난 아직도 고치지 못하고 있다. 내속에 든 또 하나의 나를 끄집어 내어 햇살 좋은날 말끔히 세탁해서 말리고 싶다. 쉰햇 동안 찌들고 묵은때에 절여진 채로 방치된 나를 이 아름다운 계절에 널어놓고 싶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