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곰곰이랑 나는 중매로 결혼을 했다.
나이는 곰곰이가 세살이 더 많다.
그래선지 첨에 만났을 때는 둘다 당근 말을 올렸다.
그런데 만나는 횟수가 점점 많아지자
이 곰곰이가 슬슬 말을 놓는 횟수도 늘어갔다.
이 여우는 기분이 조금 나빴지만
바로 콕 찌르자니 곰곰이가 좀 민망해 할 거 같아서
날을 두고 계속 지켜 보기로 했다.
드디어 결혼식을 치르고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신혼 여행 기간에도 반은 높이고 반은 말을 낮추고.....
그래도 그때까진 좀 견딜만 했기에 눈 꼭 감고 기다렸다.
난 계속 높임말을 쓰면서....
신혼여행 뒤에도 이런 저런 행사를 치르자니
이런 걸로 시비 걸 시간도 사실은 없었다.
드디어 진짜 우리 집으로 돌아와서 며칠이 지나고 나니
우리 집 곰곰이는 완전히 말을 낮추고 나 혼자만 계속 높임말을
쓰는 것이 확연히 자리를 잡고 난 슬슬 약이 오르고 억울해 졌다.
결혼초에는 어느 집이나 의견 조율도 잘 안되거니와
서로가 칼자루 쥐겠다고
기선 제압을 위해 알게 모르게 눈에 뜨이지 않는
기싸움이 심각함을 여기 들어 오시는 모든 분들은
경험을 통해 알고 계실 것이다.
선 봣을 때는 곰곰이가 눈이 뾰~ㅇ 간 까닭에
그래도 말을 잘 듣더니
집에 데려다 놓고는 '잡은 고기에게 미끼를 왜 줘?'
심보인지 곰탱이 짓을 자꾸 하더란 거다.
나는 가슴 저 아래에서 슬슬 무엇이 자꾸 기어올라오고
뽀골뽀골 거품이 일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느 날 곰곰이가 한마디하자말자 기다렸다는 듯이
탁 낚아채서
"너! 자꾸 반말 할래요?"
곰곰이가 화들짝 놀래면서 눈이 둥그레졌다.
-이 곰곰이는 늘 동면상태라 눈이 늘 조금 게슴츠레한 상태였다.-
"아니 왜 소리 질러?
나이도 내가 세살이나 더 많은데 뭐, 나는 말 놓고
자긴 말 높이는게 당연하지. 별 걸 다 시비냐?"
"그건 아니지. 당신이랑 나랑 한날 한시에 어른 됐는데
왜 넌 반말이에요?"
"그래도 내가 나이가 세살이나 더 많잖아?"
"그래? 그럼 연상이랑 결혼 했음 넌 말 높이고 살았겠네요?"
"......"
"봐라 곰곰아 남자랑 여자랑은 하룻밤에 일년씩 까먹는단다.
너랑 나랑 3년 차이니까 우리 세밤 동침하면 그때부터
너랑 나랑은 동갑이 되는거야. 알아?"
"그건 어느 나라 법칙인데?"
"구미호 나라 법칙이다. 뭐 불만있냐?
나한테 높임말 듣고 싶음 당신도 말 높이든지
아님 말구. 난 자기 하는 대로 할거니까 알아서 하셔"
그날 이후로 난 곰곰이와 맞먹어 버렸다.
근데 문제는 시집에 가서 였다.
손위 동서랑 시누님들께서 워낙이 우리랑 나이차이가 많이
나다보니 여자가 남자한테 말 놓는 꼴을 눈 꼴시러 못봐주시겠단다.
그래서 여러번 꾸중을 들었다.
"이보게 자네들 끼리 있을 때야 어떡하든지
시집에서는 동생한테 말을 높이게."
그래 시집에선 말을 높여 줄라고 애를 써봤는데
이게 잘 안되는 것이 대문밖에서 까지 '응응'하다가
갑자기 '예예'가 영 낯 간지럽고 내가 이중적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체질적으로 안 되는 것이었다.
근데 시집갈때마다 이 문제로 지적을 받으니
나중엔 또 억울한 생각도 마구 들기 시작했다.
'아니 자기들도 여자면서 일방적으로 높임말 쓰는거 억울하지도 않나?'
.
.
얼마가 지난 후 난 우리 손위 형님들이랑 시누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생글거리면서 말했다.
"저기요 형님들 제가 저이 한테 같이 말을 높이든지 낮추든지 하자고
했더니 본인이 낮추길래 저도 같이 그랬거든요. 그리구요 전
원래 성격이 솔직해서요 뒤에서는 이러다가 앞에서는 저러다가
그게 영 안되네요 제 낯이 간지러워서 돌아서서 다른 말투쓰는 게
체질적으로 안되거든요. 말투를 그렇게 쓸 수 있음 제가 다른 일도
뭐 앞뒤다르게 못하란법 있겠어요? 전 보이는게 다인 사람이거든요.
전 말투도 그렇게 안되지만 다른 행동도 그게 잘 안돼요.
이해해 주세요."
모두들 땡감 씹은 얼굴로 날 쳐다봤지만,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다고,
우리 시집 시집 식구들도 그날 이후로 내 말에 대해선
일절 함구했다. 속으로는 어떤지는 모르지만 ......
속내까지 짐작해 가면서 속 끓일일이 뭐 있으랴?
보이는 것만 보면 되지.
그 후로 쭈-욱
난 똑같이 해 준다.
자기가 높이면 나도 높여주고 자기가 낮추면 나도 낮춰주고.....
울 곰곰이는 이 일이 여전히 불만일지도 모르지만
암 말 하지 않으니 보이는 대로 보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