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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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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버지와 철 없는 조카딸.


BY 낸시 2005-02-13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형부가 처가 어른들 얼굴을 미처 다 기억하지 못했을 때다.

술에 취한 작은아버지가 형부를 보고 노발대발했다.

"상놈 같으니라고...보고 배운 것 없는 후레자식... 처작은아버지를 보고 제대로 인사도 할 줄 모르다니..."

"작은아버지 그게 아니라, 저 이가 아직 미처 몰라서 실수를..."

언니는 애써 변명을 했지만 술취한 작은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야, 너 그러는 것 아니다. 너 시집 잘 갔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천하에 상놈이다. 저 놈이..."

가족들 모임이 있으면 어른행세를 하고 싶어하는 작은아버지에게 형부는 고스란이 수모를 당하고 말았다.

 

툭하면 다른 사람을 보고 상놈이라고, 후레자식이라고 욕하길 좋아하는 작은아버지는 이런 사람이다.

할아버지는 작은아버지를 지게 작대기로 몰고 다니며 억지로 학교를 보냈다고 한다.

작은아버지는 한 때, 그래도 그 옛날 시골에서는 괜찮은, 면서기가 직업이었다.

면서기 작은아버지를 둔 덕분에 나는 평생 엉터리 생년월일을 갖고 산다.

출생신고를 하라고 했더니 자기 딸과 나를 같은 날로 해버렸다.

그 엉터리 면서기도 몇 년 후엔 주색잡기에 빠져 떨려나고 말았지만...

직업만 잃은 것이 아니다.

결혼하고 새살림이라고 내 준 논도 집도 다 팔아 먹었다.

그 찌꺼기로 시골에서 구경하기 힘든 유성기도 있고 카메라도 있긴 했지만...

면서기 직업을 잃은 후 작은 아버지는 평생 백수로 살았다.

다른 사람들이 들에서 산에서 땀 흘릴 동안 그는 유성기 틀어 놓은 방안에 누워 시간을 보냈다.

하긴 공헌을 한 것도 있다.

손바닥 크기보다 작긴 하지만 어린시절 우리의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 몇 장은 분명 작은아버지 덕이다.

늙은 큰형이 농사지어 놓은 것을 얻어 먹고 사는 일이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작은아버지는 알지 못했다.

자기가 결혼해서 나은 자식들 가르치는 일마저 늙은 큰형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산 듯 하다.

나중에 우리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자기 자식들은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한 놈이 없다고 울부모를 보고 섭섭하다 하였으니까...

이런 사람이 나이 들었다고 어른 행세를 하려 들었던 것이다.

 

젊어서 형에게 얹혀 살던 작은아버지는 늙어서는 자식들에게 얹혀 살았다.

자식들 초등학교 졸업도 시키지 못했지만 작은아버지는 효자아들을 두었다.

며느리도 착하다고 친척들 사이에 칭찬이 자자했다.

작은어머니도 그런 남편하고 살면서 별다른 불평도 없이 조용하고 차분한 여자였다.

늙어서 간이 나빠진 남편을 위해 열심히 몸에 좋다는 민간약을 구하러 다니기도 하였다.

그런나 좋은 아내, 효자 아들, 착한 며느리도 철없는 작은아버지를 고치지는 못한 것 같다.

작은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며느리를 보고 욕을 한다고 소문이 났다.

 

작은아버지 눈과 귀는 유난히 남의 흉을 보고 듣는 읽에 밝다.

그것을 전하는 입도 부지런하다.

"형님, 그 집안이 말입니다. 순 상것들이라서... 아, 글쎄 자식들 이름에 들어가는 항렬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산다니까요..."

"아, 그럼 안되지..."

작은아버지의 말에 아버지도 맞장구를 친다.

큰형님이라고 작은아버지는 아버지 앞에서 예를 갖추기 위해 말투도 표정도 공손하기 그지없다.

형제 사이에도 깍듯한 예의를 갖춘 그들의 말투나 표정은 제법 교양을 갖춘 양반이다.

하지만 옆에 있는 나는 입이 간질간질하다.

그것을  미처 모르는 작은아버지는 계속 양반타령이다.

"형제간의 우애도 없는 상것들입니다.  얼마 전에는 형제 간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더 이상 참지 못한 나는 불쑥 끼어든다.

"근데요, 아버지! 며느리보고 욕하는 집안은 상놈 맞지요?"

"그런 일은 안되지...안되고 말고..."

순진한 아버지는 내가 던진 미끼를 덥썩 문다.

"작은아버지가 며느리보고 욕한다고 소문이 자자하던 걸요. 에이,  그런 사람이 무슨 양반타령을 하고... 아버지, 양반 좋아하는 사람이 그런 동생을 보고 가만 두어요? 혼내 주세요! 맏형이 그런 동생도 못 다스리면 거 무슨 양반 집안이라고..."

족보니 양반 이야기만 나오면 배알이 꼬이는, 출가외인인 나는 한껏 그들을 비웃는다.

당황한 작은 아버지는 안간힘을 쓰며 변명에 나선다.

"아니, 나는 며느리보고 욕은 안허네... 무슨 그런 소리를..."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날까... 변명은 무슨...괜히 양반인 체 폼 잡기는...ㅉㅉㅉ"

 

착한여자를 아내로 맞은 형부와 달리 못된여자를 아내로 맞은 울남편은 처가에 가서 수모를  당하는 일은 없었다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