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인된 떼쟁이였다.
혹시라도 남동생이 나를 보고 배울까 염려한 아버지는 미리 예방주사를 놓았다.
'네 누나는 막내딸이니 어리광을 부려도 괜찮지만 너는 큰아들이니 그러면 안된다.'
아들과 딸을 차별한다고 어찌나 남동생을 못살게 굴었는지 아버지가 눈물로 하소연했다.
'내가 잘못을 인정하고 앞으로 차별하지 않도록 노력할테니 제발 동생하고 싸우지 마라.'
자기가 낳은 자식들에게도 곰살궂게 대해 본 적이 없는 작은 아버지도 나만은 예외로 대접해 주었다.
'예쁘지~..., 우리 @@ 착하지~... '
어디로 튈지 모르는 조카딸의 입을 미리 막아두자는 속셈이었다.
어머니는 어른들의 이야기 자리에 낀 나를 꼬집었다.
버릇없이 끼어들지 말라는 경고였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친척 어른들과 입씨름을 계속하였다.
도무지 버르장머리라는 것이 없었다.
아버지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정말 손에 진땀이 배어나도록 힘들 때가 있었지...'
결혼하고 찾아간 나를 보고 아버지는 막내딸이 그리운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밥을 뺏어 먹는 사람이 없으니 밥맛이 별로 없다.'
추수가 끝나면 어머니는 고속버스를 타고 감 배달에 나섰다.
고속버스장에 마중간 큰언니에게 제일 먹음직한 감을 가리키며 어머니가 그랬단다.
'이 감은 @@것이니 손대지 마라.'
아무리 봐도 언니 몫이라고 하는 감은 내감만 못해보이는데...
그럴 수 밖에... 제일 맛있고 좋은 감을 내감이라고 내가 찍어두었는데...
내가 아이를 낳고 언니들은 불평했다.
어머니의 사랑이 공평하게 나뉘어진 것이 아니고 우리 아이들을 편애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작은언니는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어려서도 편애하더니 아이들까지 그런다고 속상해 하였다.
정말 우리 부모는 나를 더 이뻐했을까?
제일 말썽꾸러기였는데...
내게도 이쁜 구석이 있었나?
울부모가 날 더 이뻐할 만한 이유가 있었을까?
있다면 그게 뭐지?
'엄마는 학교에 찾아오지 말고 아버지만 와.'
'왜?'
'엄마는 까맣고 못생겼으니까...'
큰언니가 어렸을 적 한 말이란다.
'엄마, 나 도시락에는 쌀밥 좀 싸줘. 학교가면 창피해서 죽겠단 말야...'
작은 언니는 부엌에 와서 도시락 싸는 엄마에게 울먹였단다.
나는 좀 그런 면에 둔했던 것 같다.
언니들과 같은 이유로 불평할 마음이 든 적은 없다.
꽁보리밥 도시락을 들고 학교를 가도 당당했다.
울엄마가 까맣고 키가 작다는 것도 어렸을 적엔 정말 몰랐다.
내 눈에는 그리보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교복만 보면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가 훤하던 시절, 내가 다니던 학교는 유독 백선의 긍지를 강조했다.
뱃지 밑에 달린 백선이 곧 엘리트의 상징이니 엘리트로서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라고 입학하자 마자 선생님들은 귀에 못이 박힐만큼 백선의 긍지를 강조했다.
그 백선이 달린 교복을 입고 나는 방과 후에 남부시장에서 어머니의 광주리 장사를 도울 때가 있었다.
얼핏 백선의 긍지에 부끄러운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뒤이어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더욱 부끄러운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내 어머니의 딸이고 내 어머니는 광주리 장사를 해서 그 학교에 날 보내고 있었으니까...
대학교 다니던 때, 남학생들에게 나는 꽤 인기있는 여학생이었다.
우리집까지 쫓아다니는 아이들도 심심치 않았다.
그 중의 하나가 나뭇짐을 진 우리 아버지가 초라해 보였는지 불손한 태도를 보였다.
우연히 그것을 보게 된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올랐다.
"야, 니 눈에 어찌 보였는지 몰라도 내게는 이 세상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한 아버지다. 너 따위가 뭔데 그리 불손한 태도를 취하는 거야. 당장 꺼져!..."
아버지는 눈에 불을 켜고 씩씩거리며 팔팔뛰는 나를 달래느라 오히려 정신이 없었다.
그 녀석은 얼굴이 벌개져서 돌아갔다.
혹시 이런 것들이 울부모가 날 사랑한 이유였을까?
다른 사람 눈에 초라해 보일 지 모르지만 내가 당신들을 정말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을 그 분들도 느끼셨을까?
우리 아이들도 날 닮아 자기 주장이 강한 아이들이다.
키우기가 녹록한 아이들은 분명 아니었다.
우리 아이들이 자기 부모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까지 날 닮아줄까???
난 우리 부모만큼 헌신적인 부모는 못되는데...
지나친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