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년만 맞벌이해서 자기 부모를 돕자고 남편은 결혼 전에 미리 말했다.
책가방 든 동생이 넷이나 있었던 것이다.
선선히 그러마고 하였다.
남편은 그 동안은 경제권도 자기가 갖겠다고 하였다.
아무리 동의를 했어도 시집에 돈 갈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질지도 모를 나에 대한 배려라고 하였다.
그러라고 하였다.
철이 없어서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다.
사랑에 눈이 어두워 남편이 원하는 것은, 그저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다.
그깐 일로 남편에게 생색내고 싶지도 않았다.
남편의 동생들이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래도 남편은 경제권을 내게 넘겨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도 달라고 하지 않았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남편이 한달 생활비라고 주는 것으로 그냥 살았다.
식도암으로 시한부 삶을 사는 엄마에게 가는 고속버스차비랑 용돈은 과외를 해서 벌었다.
출가외인이라고 처가일엔 모른 척 해야 된다는 것이 남편의 지론이었던 것이다.
전업주부가 된 나는 아이 둘 손을 잡고 전철을 타고 부천 언니집에 놀러가길 좋아했다.
돌아오는 길에 횡재를 했다.
천원에 팔찌 두개, 목걸이 하나, 반지 하나,..., 아무튼 한보따리 샀다.
사실 내게 필요한 것은 팔찌처럼 생긴 그것이었다.
팔이 짧은 나는 옷을 사면 항상 소매가 길어서 팔찌처럼 생겨 소매를 올려주는 물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것들까지 덤으로 준다니 얼른 산 것이다.
다른 물건들은 울딸 장난감으로 생각해도 이건 횡재다 싶었다.
저녁 늦게 돌아 온 남편에게 밥상를 차려주고 밥상머리에서 자랑을 했다.
"여보, 여보, 나 오늘 뭐 산 줄 알아?
볼래, 볼래... 이것도 있지, 이것도 있지, 이것도 있지...모두 얼마 줬게?..."
한보따리 되는 물건을 이것도 들고 저것도 들고...전철에서 팔던 사람 비슷하게 흉내를 내며 신이 나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 나를 굳어진 얼굴로 째려보던 남편은 퉁명스레 말했다.
"쓸데없는 물건들을 아무리 싸다고 해도 뭐하러 사?"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 누가 결정하는 것인데? 필요하니까 샀지..."
나도 퉁명스럽게 말하고 하다만 설겆이나 하러 부엌으로 갔다.
막 그릇하나를 손에 들고 씻으려는 찰라, 와르르... 그릇 쏟아지는 소리가 났다.
자기 말에 말대꾸했다고 화가 난 남편이 밥상를 뒤집는 소리였다.
기가 막혔다.
갈수록 산이라더니, 남편의 횡포가 갈수록 심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돈 번다고 유세인가, 싶었다.
들고 있던 그릇을 있는 힘껏 바닥에 던졌다.
"당신만 그릇 깰 줄 알아? 나도 깰 줄 안다고..."
바닥에 닿은 그릇은 산산조각이 났다.
남편은 번개처럼 달려와 내 머리채를 잡고 방안으로 끌고가며 발길질을 했다.
아이들도 보고, 함께 살던 시동생도 보고 있었다.
시동생이 달려와 말렸다.
"형님, 왜 이러세요...."
시동생은 남편보다 키도 크도 힘도 세다.
남편은 시동생에게 끌려갔다.
"도련님, 오늘 저녁에 나가서 자고 오세요."
정신을 차린 나는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시동생에게 내밀며 말했다.
그날은 남편과 결단을 낼 생각이었다.
시동생이 나가고 한참 지난 후 남편을 불렀다.
"나랑 이야기 좀 합시다."
"난 할 말 없어."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요. 우리 이야기 좀 합시다."
"난 할 말 없다니까..."
"정말 그럴거예요? 같이 안 살 거예요?"
"맘대로 해..."
남편과는 대화가 되지 않았다.
남편은 성미가 급하지만 마음이 여린 사람이다.
뒷감당이 안되었을 것이다.
잠시 후 시동생이 들어왔다.
자고오라고 했더니 눈치도 없다.
주었던 돈을 도로 내민다.
그 돈을 받아들고 옷을 차려입고 밤중에 전차를 타고 언니집으로 갔다.
언니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다시 돌아왔다.
나는 아이가 둘이나 딸린 엄마였던 것이다.
자존심을 코에 걸고 살던 나는 너무도 수치스러워 자꾸 죽고만 싶었다.
여덟 살, 일곱 살인 두 아이가 엄마 없이 살기엔 너무 어린 나이라는 생각이 들어 차마 죽을 수는 없었다.
시동생은 내보냈다.
내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 사람과 같이 사는 것이 싫었다.
다른 핑계를 댔지만 내 수치심도 한 몫을 했다.
남편과는 표면적인 화해는 했지만 잠자리를 같이 할 수는 없었다.
창녀가 된 것 같아 싫었다.
몇 달 후 저녁을 먹고 나서 갑자기 숨이 막혔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더니 숨쉬기가 곤란해졌다.
"여보, 여보, 나 좀 살려 줘.... 숨을 쉴 수가 없어..."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웃으웠다.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 거짓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응급실에 실려가 주사 한대를 맞으니 숨쉬기가 편해졌다.
여러가지 검사를 했지만 아무런 원인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하였다.
아마도 정신적인 것이 원인이었나보다 스스로 짐작만 했다.
그 일이 있고 남편과 잠자리도 같이 하고 좀더 화해의 폭을 넓혔다.
진심으로 내가 바라는 것은 죽음이 아닌 것을 알았으니까, 앞으로 살 날을 위해서 적과의 동침도 필요했으니까...
그 일 이후 남편도 놀랐는지 폭력을 사용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예전에 남편을 사랑하던 나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우리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남편이 없는 미래를 그려보는 날이 많았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차츰차츰 내 목소리를 높여갔다.
싸울 때조차 꼬박꼬박 쓰던 경어 따윈 버렸다.
이혼을 해도 좋다고 맘 먹은 내게 무서울 것이 없었다.
돈을 아껴 쓰라는 남편의 말에 남편이 주는 생활비를 방바닥에 패대기치고 말했다.
"야, 치사해서, 니가 벌어다 준 돈으로 안 산다. 안 살아..."
남편은 아무런 말도 못했다.
남편은 내게 경제권을 맡으라고 하였다.
"싫다. 이제와서 내가 뭐하러 맡냐? 니가 번 거잖아. 니 맘대로 해."
남편의 언성이 높아지면 나는 이혼을 하자고 하였다.
남편은 내 말에서 진심으로 이혼을 바라는 마음을 읽었을 것이다.
그는 이혼을 바라지는 않았다.
집을 나가겠다는 나를 결사적으로 붙들었다.
이래서 나는 날마다 이혼을 꿈꾸는 여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