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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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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아버지, 시아버지


BY 낸시 2005-01-30

우리 아이들은 사춘기를 혹독하게 겪었다.

둘 다 고등학교를 중간에 그만두고 집에서 빈둥거리던 때도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자연스레 내 부모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죽고 없으니,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아버지..."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만 듣고도 알았다.

"왜, 아이들 때문에 힘드냐?... 아이들은 이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것을 눈 앞에 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 말했다.

"아버지,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를 많이 힘들게 했지요?"

"그랬지... 손바닥에 진땀이 나도록 힘들 때도 있었지..."

"내가 지금 그 벌을 받나 봐요...."

"어.., 거, 무신 소리를 그렇게 하냐?... 그런 소리는 부모 자식간에 할 소리가 아니다..."

아버지하고 전화를 하고나면 조금 위로가 되었다.

우리 부모가 날 이기려고 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도 아이들을 이기려고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날은 말썽꾸러기 아이들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시집에도 전화를 했다.

시부모에게 할 자식의 도리라 생각하고 하는 전화다.

시어른들도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 별 일 없으시지요?"

안부 인사에 대한 대답도 없이 시아버지는 화가 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길래 그 지경이냐?

그 애들이 어렸을 때 얼마나 착했는데...도대체 집에서 뭐하는 거냐?"

"그러게요.... 죄송해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시아버지에게 섭섭했다.

미운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의 방황이 남편 탓이라고 생각하던 때라 남편이 더욱 미웠다.

그런 날은 퇴근해서 돌아 온 남편과 아이들 사이에서 중간 역활을 제대로 못했다.

그래서 집안에 한바탕 폭풍이 일기도 하였다.

 

"아버지, 나 오늘 돈이 필요한데..."

아침 밥상머리에서 이리 말하면 아버지는 두 말 없이 밥 숟가락을 놓고 일어났다.

아침 일찍 남의 집으로 돈 빌리러 가는 것이다.

돈 빌릴 시간을 위해서 미리 말하라고 하였지만 돈이 없으니 다음날 가지고 가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버지, 나 서울대 갈까?"

"좋지..."

돈이 없으니 지방대 가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딸의 실력도 무슨 공부를 하고 싶은지도 묻지 않았다.

그저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였다.

아버지는 평생 가난한 농사꾼이었다.

자식들 학비를 위해서 논도 팔고 밭도 팔아야 했다.

농사꾼에게 땅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버지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이 닿을 때까지는 땅을 팔아서라도 뒷바라지 해주마고 말했다.

 

"셋째, 저 놈만 대학 졸업하면 당장 직장 때려칠란다."

시아버지는 툭하면 이렇게 말했다.

자식들 때문에 자기가 희생하고 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편은 자기 아버지 때문에 공부를 소홀히 했노라고 시아버지를 가끔 원망하였다.

형편이 어려우니 지방대에 가라고 노래를 부르는 아버지 때문에 공부가 하기 싫었단다.

셋째가 대학을 졸업하고 시아버지는 원하던 대로 직장을 그만 두었다.

곧 후회하였다.

직장은 자식을 위해서 다니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필요한 곳임을 비로소 안 것 같았다.

 

나는 친정아버지 같은 부모가 되고 싶다.

시아버지같은 남편과 그래서 가끔 싸운다.

남편은 오늘 새벽도 삐져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있다.

딸이 새벽에 전화를 한 때문이다.

딸은 아빠가 알까봐 걱정이다.

엄마가 자기 말을 들어주어서 고맙단다.

난 시아버지가 아니라 친정아버지를  내 아버지로 두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 정말 고마워요.

내가 아버지 제삿날 같은 것 기억하지 못해도, 아버지를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 아시지요?

제삿날은 기억하지 못해도, 아버지 같은 부모가 되려고 노력하며 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