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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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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미 늦었다해도


BY 우연 2005-01-30

지치고 무감각해진 일상에서 가끔 꺼내보는 알리바바의 보물-
내겐 서가에서 키운 동화작가의 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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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어머니의 전화를 받는다. 안 바쁘면 들리라 하시며 너희 식구들 무장아찌  먹느냐 에서부터 환절기에 무사하냐, 조청 갖고 가거라 에서 끝을 맺는다. 그녀의 동화등단소식에 잔잔한 감동에 젖어있는 아침이다.

 

 a4용지두장 가량의 분량에 담긴 산뜻한 메시지, 아이는 다시 힘을 내어 자전거 패달을 돌리고 그 뒤를 신나게  달리는 강아지. 이렇게 평이하고 간략한 글 속에 여리고 상처받기 쉬운 어린 아이의 마음을 감싸안는 따뜻한 내용을 담고 있다니.

 

친정집은 내가 나서 자란 고향에서 모든 것을 그대로 간직한 채로 있다. 형제자매는 모두 출가하여 부모님 내외분이 지키고 있지만 오랜 세월 변함이 없는 방이며 장롱, 세간은 때로는 넉넉지 못한 생활이 주는  아픔이 되기도 하지만 떠난 자의 향수를 자극하는 푸근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안채 밖의 우리 보금자리에는  어머니의 혼수품인 작은 장롱을 나란히 하고 오래 전에 젊으신 아버지가 손수 짜 넣으신 서가가 붙박이로 놓여져 있다.

 그곳에 우리 형제들의 젊은 날을 엿볼 수 있는 애독서 들이 아직도 한 두 권쯤 남아있다. 아버지의 '논어'에서 남동생의 사전으로 가득 찼던 아버지 표 서가는 내가 결혼을 해서 집을 떠나는 날부터 조금씩 비더니 이제는  모로 누운 건방진 책들도 생겨날 만큼 자리가 널널하다. 

 

각자 분가할 때 이미 족집게로 선별해서 가져가고 껍데기만 남아있을 뿐이지만 그곳에서 잠을 청하는 밤에는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 20년 전의 나로 돌아가 이미 나만큼이나 커져버린 아이들을 재워 놓고 청년 시절의 아련한 감상에 빠져드는 일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 드문  행복이었다.

 

 아주 어렸던 날, 나는 세상에서 제일 탐나는 물건을 훔쳤다. 보면 더 보고 싶고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잠 재수 없었던 그것, 결국 도서관 관리를 맡긴 선생님 눈을 피해 최고급 양장판의 '개구리왕자'를 가방에 숨겨와 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나도 이런 책을  꼭 만들겠다고 다짐하면서 밥도 거르면서 통째로 본떠 그리고 써넣어 조잡한 한 권의 아류작을 만든 후에도 돌려주지 않았다. 

나를 의심하지 않는 선생님 때문에 더더욱 마음 졸이며 가책을 느껴야했지만 누군가의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한마디를 들은 후부터는 억지로 나를 합리화해버렸다. 

 그 후 알록달록한 그림책을 지나 아버지가 사주신 리빙스턴 아프리카 탐험기나 아문센 북극탐험기 만이 이 세상 도서의 전부 인줄 알았던 나는 이 서가에서 새로운 세상을 알게되었다.


'날으는 것이 두렵다' 깨알같은 글자가 세로로 누운 그 번역본은 첫장부터 나를 금단의 영역으로 데려갔고  몰래 읽는 독서의 즐거움을 그 날 깨우친 아이에게는 스스로 금지할 방법이 없었다.  페미니즘 소설의  상징으로 기록되는 소설임을 훗날 알았지만 나이 열두 셋의 나에게는 어쩐지 아버지께 읽었다는 것을 절대로 들키면 안될 것을 무의식중에 알려주고 있었다.

 

이후로 내 독서의 영역은 사방팔방으로 뻗어가 안채에 기거하시는 아버지가 연필을 깍아주고  역사 이야기를 해주러  건너오실 때마다  서랍속에 숨기는 책들이 늘어갔다. 나의 비행은 꿈에도 모르시고 세계의 위인전기나 전래동요가 세계명작보다는 우선 읽어야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아버지. 
그때 우리 경이 커서 뭐가 될래 하시던 말씀, 큰 기대도 없고 그저 이쁘게만 자라주길 원하던 딸 가진 아버지의 심정이었으리라. 그럴 때는 마음속의 부끄러움은 어디론가 던져 버리고 온갖 꿈과 환상으로 가득 찬 세계명작을 떠올리며 배를 쑥 내밀고는 동화작가요! 할라치면 역시나 별 고민없이 그래그래 하시고 안방으로 건너가던 아버지.

정작 내가 자라서 글쓰기 공부를 할 의향을 비쳤을 때는 어쩐지 쓸쓸한 표정으로 말씀이 없으시던 아버지. 그 어둔 표정 때문에  글쓰기란 감히 넘봐서는 안돼는 사치스런 감정으로 밀어붙이고 살아왔는데  그녀의 등단과는 무관하게 갈수록 삶 속에서 글쓰기는 간절해지는것은 무엇 때문인지.

모자라는 필력 때문에 더 아쉽고 그 아쉬움마저도 스스로 표용할만큼 세상이치도 알게 됐다. 이름을 알리기 위한 글쓰기가 결코 아닌 것을...... 인생에 주어진  사명을 본인들은 안다. 그때가 너무 늦어져 버렸을 때에도 그것은 늦은 것이 아니다.

내게 글쓰기를 권하지 않는 아버지의 아픔까지 아직은  다 알 수는 없어도. 인생의 봄날 다 보내시고 두통, 천식, 관절염에 시달려가며 이제서야 새벽에 책상 앞에 불 밝히는 아버지의 심정.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자고 할 때마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그 말씀을 아직 젊은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건강이 우선이라고  간곡하게 말씀을 드려도 현실적으로 시간이 부족해서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것을.

 

방학이면 게으름에 빠져서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흘려보내는 내 아이들은 또 다른 내 모습이다. 고놈들 손을 잡고 한 열흘쯤 아버지를 옆에서 지키고싶다. 새벽에 꼿꼿하게 책상에 앞은 그분의 옆모습에서 세월의 무상함과 못다이룬 꿈의 아쉬움을 느낄 수 있을뿐이겠지만.

곁에서 공책이랑 펜 챙기고 다리도 주물러드리고 한권의 꿈이 완성되는 것을 도우고싶다.

가장 오랜 나의 선배님, 아버지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