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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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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게 병이다


BY 토 리 2005-01-25

날씨도 추운데 요즘 근20년을 아성으로 지켜온 주방장 자리에 위기가 닦쳐오고 있어서 긴장을 하고 있다.
"엄마, 오무라이스 할 줄 아세요?"
"응 할 줄 알지."
아들녀석의 갑작스런 질문에 체면 유지용 대답을 하고 말았다.
오무라이스 솔찍히 할 줄 모른다. 중학교때 가정실습 시간에 한번 해 본 경험이 전부이고 아가씨때 친구들과 뭉쳐다니면서 스넥코너에서 사 먹어본 것 말고는 메뉴도 잊고 살았다.

그런데 2004 수능시험을 치른 아들녀석이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나선곳이 음식점 써빙일이다.
며칠을 다니더니 주방에서 솔에 세제를 묻혀 물병을 씻고 있는 내 모습을 지켜봤는지, 물병을 씻을때는 굵은 소금을 넣어서 흔들면 된다고 알려 준다.
몰랐던 상식이라 고개를 끄덕이면서 기특하게 여겼다.
그리고 며칠 후 밥을 차리고 있는데 문제의 오무라이스를 할 줄 아냐고 묻더니 가게에서 먹어 봤는데 맛있더라면서, 내일은 엄마가 오무라이스 좀 해 달래는 거다.

다음날은 재료를 못 사왔다고 핑계를 대고 미뤘다.
엄마의 속마음을 눈치챘는지 가게 주방아줌마에게 만드는 법을 물어봤다면서 또 설명을 곁들이면서 먹고 싶단다.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자리가 없다 싶어서 신혼때 사두었던 요리책을 꺼내 뒤적여서 근사한 오무라이스를 해 주었다.

"엄마도 할 줄 아는데 왜 한번도 안해 주시고 맨날 찌개만 끓이셨어요."
요녀석이 찌개를 끓여주면 국물을 잘 먹지 않는 취향이였으니 달갑지 않았었나 보다.
평소에 이런 저런 찌개를 끓여서 밥상을 차렸었는데 느닷없이 전에 없던 요리가 올라오니까 남편도 딸아이도 신기한 듯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반성 많이 했다.

유난히 고기요리를 좋아하는 아들녀석이 이번에는 닭매운탕을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요녀석 닭매운탕은 지 엄마요리가 맛있었나!'
내심 쾌재를 부르면서 조리과정을 설명했다.
아! 그랬더니 가만히 듣고 있던 녀석이 마치 문제점을 찾았다는 듯이 한마디 하고 말았다.
"살짝 끓여내고 양념을 재워뒀어야 고기속까지 간이 뱄죠. 그래서 속살이 싱거웠구나!"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랄까.
아들녀석이 다니는 식당은 "낙지요리"전문점인데 닭매운탕도 했나보다.

그래서 우리집 주방엔 지금 어제 슈퍼에서 토종닭 사다가 아들녀석이 알려 준대로 살짝 끓여 낸 후 양념을 재워 뒀다. 아들녀석에게 맛있는 닭매운탕을 먹여서 입을 닫게 해야 할 것 같다.
또, 하루는 과일샐러드를 할때는 사이다를 첨가해야 맛있다는둥 주방에서 곁눈질로 배워 온 것을 잊지 않고 하나씩 전수하고 있다.
우리 아들녀석이 중학교 다닐 때 교내요리대회가 열리는데 친구와 함께 김밥을 가지고 출전하기로 했다면서 김밥 싸는 연습을 했던 것이 생각난다. 아무래도 요리에 소질이 있는 건 아닐까?

유난히 먹성이 좋아서 엄마가 해 준 음식은 뭐든지 맛있다고 달게 먹던 아들녀석이였는데 아르바이트 시작과 함께 엄마의 실력을 파악하고 의문을 품기 시작한것 같다.
고백하건데 그동안 가게 사장 한답시고 요리다운 요리를 해 본적이 없고 밥 반찬 몇가지 해서 먹고 살아왔었는데 이제는 전업주부답게 분발해야 할 것 같다.
큰 불평없이 달게 먹어준 남편이 새삼 고맙게 느껴지면서 아르바이트 한다고 자정 넘게까지 고생하고 있는 아들녀석 늦잠자는 모습이 안쓰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