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구는 드럼과 잘 어울린단다”.
인천 여성보컬팀 “샤인”에서 드럼을 맡고 있는 “왕언니”,
그 녀가 내게 들려준 말이다.
2년전 시아버님의 부고를 듣고 서울에 갔을 때 일이다.
남편은 아버님 병환 덕분으로 1년에도 한,두번씩 서울을 다녔지만
난 십년전쯤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온가족이
한겨울에 서울을 간적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뚜렷한 사계절을
보여 주고 싶었지만 우선 매서운 겨울, 하얀 눈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친구는 멀지 않은 인천에 살고 있었지만 만날 여건이
되지 않아 전화만 하였는데.
그래도 아주 간혹 연락을 끊지 않고 있었은 터라
이제 또 언제 서울에 나올일이 있을까 싶어
꼭 만나고 싶은 친구 몇을 만나기로 하였다.
서울대학,
넓고 넓은 바닥이 붉은 흙으로 겨울바람에 날리고 있었던 오래전,
학교가 막 이전한 얼마후에 이곳에 온적이 있었다.
그 때의 모습은 상상 할수 없이 아름답게 잘 가꾸워진
교정앞에서 혹시나 달라진 모습으로 못알아 볼까
계속 핸드폰으로 이야기하며 마주치니
오랜 세월의 흐름속에서도 옛모습은 남아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대화가 없었던 상태이니 무슨 말이 술술
나올수 있었으랴
어쨌던 그날 밤만은 같이 있자는 일치된 의견으로 인천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니”
“드럼치고 있다” 왠 드럼?
“난 장구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기는 하였는데...”.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에 숨겨져 있던 것이 뚝 튀어 나와 버렸다.
내릴때가 다 되어 “너 정말 열심히 배워볼래?
장구는 드럼과 잘 맞는단다”.
인천역에 내리자 역옆에 있는 악기점으로 데려갔다.
그곳은 “샤인보컬팀” 리더가 운영하는 곳이였다.
악기사러 오시는 분들께 의견을 내어 함께
연습하여 팀이 형성되었다 했다.
한가한 토요일 오전이다. 몇일전 사랑이를 빼 얼굴모양이
달라졌던 딸아이가 오늘은 제법 정상적인 모습으로
이모네 가게로 잠깐 일을 하려 나갔다.
차가 있을땐 운전하기 싫어 꼼짝 하기 싫더니만
역에 데려다 주지도 못하고 걸어가는 것이 조금 안스럽기도 하고
집에만 있어야 하는 것이 조금은 갑갑하게 느껴졌다.
몇일전 오랫동안 옷장위에 올려두었다 꺼낸 장구의
줄을 탄탄하게 졸이였다.
“쿵쿵 쿵따쿵따 쿵따쿵따 쿵따따 쿵따따 쿵따 쿵따”
오랜만이라 박자는 제자리를 찿느라 한참을 헤메였지만 제대로
두들기노라면 스트레스 해소에는 딱 적격인데.
혼자로는 도무지 신명이 나질 않아 잠깐으로 마친다.
같이 배우던 친구들과 다시 함께 연습에 들어갔으면 하는 생각은
있지만 매일 일나가고 토요일 아침엔 골프에 재미가 붙어
바쁘다는 소문을 듣고 보니 쉽게 연락할수가 없었다.
지금은 풍물패 어른들이 계시지만 그 세대가 지나면
누군가 또 우리네 얼을 이어갈 사람들이 이어져야 하지
않겠나 하는 “사명감?”은 아니더라도.
내가 친구에게 선물로 받은 장구를 갖고 온후 선생을 물색하고
2명의 친구를 모왔다. 한명은 이미 사물놀이 4가지 악기를
다 갖고 있었고,
한 친구는 “당신 회갑때 한마당 놀아줄께요” 하고
남편한테 졸라 이곳에서는 살수가 없어
마침 서울에서 방문오는 선생친구 편에 부탁을 하였다.
그리곤 우리집에 모여 1년간 렛슨을 받았다
선생의 장단 맞추는 깽가리 소리의 요란함 때문에 옆집엔 미리
양해를 구하여 두고.
지금쯤 작은 지하실 방에서 열심히 두들기고
있을 친구는 타인에게 음악으로 봉사하기 위해서라지만,
남을 위하는 마음이 진정으로 기쁘고 즐겁게
자신에게 주어지고 있는 것일게다.
사소한 일에, 지나쳐도 되는 것에
신경 곤두세우지 말고 열심히 두들겨 보자.
잠깐이라도 그안에 모든 것을 친구의 사랑에 실어 날려 보낼수 있게..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남에게 기쁨이 될수있게
나름대로 열심히 배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