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代)물림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 업이나 물건을 물려주는 것이다' 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계승 또는 세습으로 엇비슷하게 씌여 지기도 하는데 유전인자로 인한 '대물림'은
인위적이나 물리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한게 있다
그중의 하나가 '피는 못 속인다'라는 속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대물림'이 있는데
이 기가막힌 대물림을 해준 집안이 있었다.
내가 자란 친정 동네에는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처첩(妻妾)을 거느린 사람이 있었다.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의 그 아름다운 양속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나선 그 인사는 참으로 그 방면엔 귀재였다.
재산이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인물이 출중하냐 하면 그건 더욱이 아니다.
그냥 흔하디 흔한 인물에 하루 세끼 굶지 않을 정도의 재산이 그남자 이력의 전부였다.
그런데도 그와 인연을 맺은 여자는 하나같이 그를 거부하지 않았다는게 불가사의했다
그의 여성편력은 흉이나 흠이 아닌 한편의 무용담으로 뭇 사내들의 사기를 꺾어 놓을 정도로 전설적인 야화였다.
만일, 여자가 다섯남자를 거느렸다면?..... - 불가능한 얘기지만 -
그의 부인을 처음 보았을때 그녀가 첩인줄 몰랐다.
너무 오랫동안 보아왔던 그네들의 가족관계에 하등 의심의 여지가 안 보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부인이 밉지않은 미모를 가졌고 또 그 남자는 주욱 그 집에서 만 사는것 같았다.
자녀들도 내 기억으로 5~6명은 족히 되었다.
그 당시 소문에 의하면 그 부인은 이미 세번째 여자라는것과 인근에 두어명의 여자가 더 있다고 했다.
그런데 희안한건 이 남자의 능력이었다.
평생을 빈둥거리며 여자에게 얹혀 살았지만 조금도 기가 죽거나 주눅이 들지 않았다는거다
그의 여자들은 하나같이 장사로 돈을 벌어 들여서 이 남자를 깎듯이 모셨다는거였다.
다만 조강지처만 가정에서 살림을 했고 나머지 여자들은 거의가 '물장사'를 했다.
손바닥 만한 동네에서 그들의 행적은 자연스럽게 입에 오르내렸고 덧붙혀지는 살도 적지 않았을것 같았지만 사실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것 같았다.
그의 숱한 자녀들...
그런데 그의 자식들이 줄줄이 아비를 닮아가고 있었다.
아들은 처첩을, 딸들은 외도에다가 이혼, 재혼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했다.
내손으로 이혼수속 밟아준 딸도 둘이나 되었었다.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피'를 들먹였다.
그 '피'가 어디로 흐르겠냐는 자연섭리를 끌어다 붙혔다.
내가 공직에 있을때 그의 아들이 호적등본을 떼러 왔었다.
그때는 모든 서류를 손으로 하나하나 쓰야 하는 원시적인 방법을 썼는데
그 집의 서류를 뗄려면 모든 일을 접고 그 일에만 매 달릴 정도로 가족이 엄청났다.
3~40명이 넘음직한 가족들을 한자(漢字)로 일일이 쓰자니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의 가족이 창구에 얼씬거리기라도 하면 우선 불안(?)하고 겁부터 났을 정도로 공포의 대가족이었다.
누가 손자고 누가 아들인지 신경 안쓰고 대충 나이로 가늠했다가 틀려서 서류를 재발급 한적이 있었다.
재발급 할때의 그 기가 막혔던 고충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연령으로 봐서는 손자 같아서 '孫'으로 쓰고나면 '子'로 수정한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 아들은 제법 온순한 사람이었던걸로 기억 한다
서류를 떼러 올때면 꼭 '박카스' 한 박스를 사가지고 오던가 전화로 미리 예약을 했다.
그리곤'미안하고 면목 없어서..........'라는 말을 빠트리지 않았다.
가족이 많다보니 떼러오는 서류도 만만찮게 많았다.
취업용, 취학용, 법원제출용,등등...
하나같이 정밀기재를 요하는 종류가 많았는데 그럴때는 야간작업을 할 정도로 분량이 많았었다
내 기억으로는 그 아들도 처첩을 거느린걸로 아는데 그 아비에 비할만큼 대단하지는 않았다.
둘까지는 기억 하는데 나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내가 직장생활을 접을 무렵 그 가족들은 서울로 대거 이동을 했다.
호적까지 다 옮겨 가지고 갔을때 난 긴숨을 내 쉬었다.
그들의 볼일을 두번 다시 봐줄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그 아들이 호적을 옮겨 갈려고 왔을때 나에게 양산을 선물했다.
그동안 애먹이고 고생시켜서 정말 미안했노라고.........
아비 잘못 둔 덕에 남까지 애 먹인게 너무 부끄럽고 염치가 없었노라고.
이젠 분가한 가족도 많고 빠져나간 식구들이 많아서 가족수가 절반으로 줄었다고 우스개 한게 기억에 남는다.
같이 동행한 여자는 First (처)도 아니고,Second(첩)도 아닌 또다른 제3의 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