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새해 첫날
매달 첫주 토요일에 모이는 가족들의 모임이 있는 날이 아니어도
새해 첫날이라 온 가족들이 모이는 날이다.
오래전 기억엔, 새해 첫날은 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날이여서
바닷가로 소라나 전복을 잡으려 가곤 하였지만
이제는 흘러간 추억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어른 주먹만큼이나 커다란 소라들과 그리고 바위 밑에 넙적하니
다닥다닥 붙어있던 전복들.
이민 인구가 많아지면서 아시아, 특히 한국사람, 중국사람이
가는 곳에는 씨가 마를 정도로 싹쓸이하니
벌써 오래전에 잡는 것이 금지 되었다.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음식을 준비하여 모이지만
이번에는 동생네 차례인데 고기는 내가 사서 재워두었다.
맛있게 재워 먹이고 싶었다.
집에서는 가까운 장소였지만 한번도 와보지 않은 곳,
바다를 끼고 멀리 하바브릿지와 시내가 한눈에 자리잡고 있는,
수풀속에 잔디밭의 공간들이 연결되고 있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였다.
어젯밤은 하바브릿지에서 하는 불꽃놀이를 보러 온 사람들로
발딪을 틈이 없었을 이곳이 오늘은 쉼을 갖는듯이
한적하니 오후가 되어서야 사람들이 자리를 들고 나오고 있었다.
켄베라에 살고 있는 동생네도 휴가를 맞아 올라와
인디아에 있는 딸아이와 또 오빠딸.
두 여자아이를 빼고는 온 식구가 모였다.
아이들이 커감에 한달에 한번씩 갖는 가족들의 모임에
모두가 모이기는 점점 더 쉽지 않았다.
올 나이트를 한 아들이 할머니네로 바로 가서
삼춘과 일찍와 아예 자리깔고 곤하게 자고 있었고,
송구영신예배에서 늦게 돌아온 식구들 또한, 다들 길게 자리하였다.
한참 친구들과 어울릴법도 한데 오후되어 일마치고 온 아들과 같은
나이의 조카.
두 덩치 큰 녀석이 함께하여 더욱 자리가 가득채워졌다.
우리가 이민오려고 세브란스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을 때,
그곳에 걸려있던 시드니 하바브릿지 아래에 노니던 요트들.
그 때의 그 정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간간히 빠른 속도로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옷이 물에 젖지
않게 같은 색의 옷을 입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물살을 나누며
달리는 작은 보트.
커다란 객선과 유람선 그리고 돛이 높은 요트들이 하바다리 밑으로
지나오기도 또 지나가 바다 저편으로 가기도 한다.
잔디밭과 바다가 연결되는 바위 위엔 낚시대를 꽂게 구멍이 나있었다.
제법 커다란 흙도미가 오빠의 낚시에 물리어 올라오니 어디에서 나왔는지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여들기도 하였다.
배들이 많이 다녀 공해로 오염되어 있을 것도 같은데 정상적으로
물고기가 살고 있을 정도면 괜찮다고 한다.
불을 피우는 것이 금지가 된듯,
갖고간 가스버나위 후라이팬에 고기를 굽는다.
상추와 쌈장 그리고 김치, 이보다 더 좋은 음식이 또 있을까.
아이들 성장과 함께 세월따라 더욱 연로하여 가시는 부모님과 함께
우리 엮시 외면과 내면이 달라지고 있는데.
한국에서 살았던 날보다 숫자가 늘어가고
있는 이곳에서의 삶. 참으로 오랜 세월이 흘렸구나.
이제는 더욱 빨리 가는 세월을 직시하며 한가하여 가는 손에
무엇으로 채우며 지내어야 할까?
생각이 멈추어진 것같다. 다음주 부터 남편이 직장에 돌아가고
그후 몇일 지나지나 딸아이가 돌아오면
그 땐 나의 생각도 정상적으로, 또 무엇을 하여야 할지 칼레지에
어떠한 코스들이 신설되었는지 아마 기욱거려 볼것이다.
하고 싶은 공부가 있었지만
아이들 어렸을때는 그 핑계로.
적당히 자라서는 규칙적인 봉사활동으로
그리고는 파트타임으로 일을 함께하니 이런 저런 이유로 시간도
하고 싶은 의욕도 또한 자신도 저만치 다 멀어져 갔다.
이곳에 사는 것이 가장 좋았던 이유는 무엇이든 배우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배울수 있다는 것이였는데.
아이들 내 손에서 벗어남에 시간이 더 많은 만큼 게으름이
그 자리를 차지함은 ….
그 또한 나이 들어가는 증거이기도 하다는 핑계가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것이요, 찿으라 그리하면 찿을것이요,
두들기라 그리하면 열릴것이니라”. 하였는데
다시금 적은 것에라도
충실할수 있고 열심할수 있는 한해가 되기를 나자신에
바람하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