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신한금융그룹의 임직원 근무기강 확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708

잘 난 체...


BY 낸시 2005-01-01

여편은 겸손이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겸손과 내숭이 동의어라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그러니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말하는 일에 망설임이나 거리낌이 없다.

남편은 사람은, 특히 여자는,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먹는 일에만 쓰이지 않고 말하는 일에도 쓰이는 여자의 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그것이 자기가 같이 살고 있는 여자일 경우에는 수치스럽다고 느낄 때도 있다.

 

'넥타이 매고 가는 놈, 너만 잘났냐?

새끼줄 매고 가는 놈, 나도 잘났다.

자가용 타고 가는 놈, 너만 잘났냐?

자전거 타고 가는 놈, 나도 잘났다.

.......

......"

여편이 중학교 다니던 때 담임선생님이 즐겨 부르던 노래다.

살면서 여편은 가끔 그 노래의 가사를 살짝살짝 바꾸어 흥얼거린다.

"남자로 태어 난 놈, 너만 잘났냐?

여자로 태어 난 년, 나도 잘났다.

*달고 태어 난 놈, 너만 잘났냐?

그런 것 없어도, 나도 잘났다.

......

......"

특히 남편에게서 잘 난 체 한다고 핀잔을 받을 때 이렇게 흥얼거리기를 좋아한다.

 

남편 친구의 부인중에 남편과 비슷한 사람이 있었다.

그녀도 여편의 입은 먹는 일에 쓰일 뿐 말하는 일에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사건건 여편의 일에 자기가 결정권을 행사하였다.

한  접시씩 음식을 해가지고 모여 놀기로 한 날, 여편이 해 갈 음식의 종류는 그녀가 정했다.

여편이 가꾼 상추 모종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도 자기가 정한다.

줄 것인지 말 것인지 조차 여편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

친구들이 누구 집에 모여 놀 것인가를 정하는 것도 그녀의 몫이다.

여편의 집이 만만하다고 늘상 여편의 집에서 모이게 된 것도 그녀가 결정한 일이다.

겸손과 거리가 먼 여편이 한 두 번은 모르지만 계속 그녀의 횡포를 두고 볼리가 없다.

의의를 제기했다.

의의를 제기하는 여편에게 그녀는 잘 난 체 한다고 공격했다.

남편이 잘 난 체한다고 공격해도 여편은 웃고 넘길 때가 많다.

죽을 때까지 잘 난 체 하며 살기로 굳게 결심하고 사는데 때로 그런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편의 친구 부인까지 자기를 공격하는 것을 웃어 넘길  만큼 여편이 너그럽진 못하다.

 

"여보,  **엄마가 날보고 잘 난 체 한다고 하는데 기분 나쁘더라...."

둘이서 동네 한바퀴를 돌던 날 여편은 남편에게 하소연을 하였다.

"사실 당신이 잘 난 체를 하잖아."

평소 겸손하지 못한 여편에게 불만이 많던 남편이 여편의 편을 들어 줄 리가 없다.

이 말에 여편의 참을성은 한계에 도달했다.

평소 남편이 잘 난 체 한다고 할 때마다 해주고 싶지만 참았던 말들을 다 쏟아내었다.

"뭐라고? 나보고 잘 난 체 한다고?

누가 더 잘 난 체 하는지 들어볼래?

음식점에 가서 내가 먹을 음식을 내가 정하면 너 화내지?

내가 먹을 음식도 니가 정해주어야 너는 흡족하지?

이런 때 누가 잘 난 체 하는 거지?

모임에 갈 때 내가 입고 가는 옷을 누가 정하지?

니 맘에 안드는 옷을 입었다고 너 화 내지?

내 맘에 드는 옷을 입겠다는 나와 니 맘에 드는 옷을 입히려는 너 중 누가 잘 난 체 하는 거지?

우리 이사를 스무 번이 넘게 다녔는데 그 때마다 집을 누가 정했지?

딱 한번 내가 정하고, 나머지는 니가 다 정했지?

그런데 너, 내가 정한 것을 잘못 정했다고 몇 번이나 불평했지?

니가 열 아홉 번 정했을 때 내가 불평하는 소리 들었어?

이런 경우 누가 잘 난 체 하는 것이지?

너 툭하면 남 보고 잘 난 체 한다고 그러지?

**엄마도 툭하면 남보고 잘 난 체 한다고 그러더라.

세상 누구나 제 잘 난 맛에 사는 것 아니야?

왜 그리 남 잘 난 꼴을 못 보는데?

혼자서 잘 난 체 하고 싶어 그러지?

그래서 다른 사람이 자기 의사표시를 하는 꼴도 못보는 거지?

......

......"

막혔던 봇물이 터진 것처럼 여편의 입에서 남편에 대한 공격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며칠 후 여편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책을 한권 남편 앞에 디밀었다.

둘이서 같이 성경공부하는 교재다.

거기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남에게 잘 난 체 한다고 하는 사람은 혼자서 잘 난 체 하고 싶은 사람이다......'

남편은 기가 죽었다.

멋적은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몇 년이 흘렀다.

남편과 여편은 여전히 잘 난 체 하는 문제로 싸운다.

여편의 강력한 무기는 예전에 같이 공부하던 성경교재에 쓰여있던 말이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여기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무기를 남편도 개발했다.

 

"책에서 한 줄 읽었다고 그것이 진리인 줄 알아? 그게 바로 잘 난 체 하는 거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