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전화벨이 울립니다.
발신자 번호를 보니 061로 시작합니다.
제 딸아이가 있는 학교의 지역번호지요.
잠시 가슴이 철렁거립니다. 그러면서도 지독한 반가움을 느낍니다.
그런데... 까르륵...
숨 넘어갈 듯한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엄마, 전화 받어!"
수신자부담 전화라서 아이는 그렇게 외치지요.
아무 번호나 하나 눌렀습니다.
다시 아이의 경쾌한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엄마, 이제 며칠만 있음 엄마가 나 데리러 오네!...야...시끄러...호호호..."
아이는 연신 웃음소리를 흘립니다.
"그래, 인제 조금만 있음 엄마랑 만나서 집으로 오네.... 근데 옆엔 누가 있니?"
"ㅇㅇㅇ, www, ㅌㅌㅌ, 등등..."
"아줌마, 안녕하세요?"
옆에서 아이들이 제게 하는 인사소리가 들립니다.
학교로 몇 번 찾아가서 보았던 참 곱고 착한 제 아이의 친구들이랍니다.
처음 아이가 전화를 할 때는 늘 울음소리만 들려주었어요.
다른 식구들과 멀쩡하게 이야기 나누다가도 절 바꾸면 그 때부터 아이의 목소리는 목이 메인 채 너무도 가슴아프게 훌쩍거렸습니다.
엄마...엄마... 보고 싶어요. 너무너무... 집에 가고 싶어...
그렇게 늘 울었습니다. 때로는 통곡하듯 그렇게 울었지요.
그 때마다 제 가슴이 얼마나 아프던지...
찢어지는 가슴이란 게 무엇인지 절감했답니다.
한번은 아이가 너무나 가족을 그리워하기에 주말에 보성에 내려갔습니다.
살은 많이 빠졌는데 얼굴은 그 나이에 슬픔, 아픔 이런 걸 겪어서 그런지 촉촉한 슬픔이 깃든 그런 모습이었답니다.
얼마나 그리움이 깊었으면 철없던 아이에게 저런 표정이 깃들 수 있을까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밤에 아이가 자는 방에서 함께 잠을 청하는데 아이가 가만히 제 손을 잡습니다.
또 다른 친구도 함께 있기에 서로 안고 잘 수도 없고 그저 서로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마음을 나누었지요.
그런데 아이의 어깨가 들썩거렸습니다.
너...울고 있니?
아이는 아니라고 했지만 그 말을 하는 목소리에는 울음이 가득했답니다.
툭...투둑...
제 눈에서도 겨우 참고 있던 눈물이 봇물 터지듯 그렇게 흘러내렸습니다.
다른 친구가 눈치 챌까 조심하며 우리는 서로를 보듬으며 밤을 보냈지요.
함께 있던 친구는 이 학교 친구 중에 유일하게 엄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라 다들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친구였어요. 사실 그 친구의 엄마는 너무 많이 아픈 분이라 아이를 돌볼 여력이 없는 형편이랍니다. 그 친구 말로는 제 아이가 너무 자주 우는데 자기는 어지간해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제게 해 주었답니다.
사연이 아주 많은 친구인데 나름대로 슬픔을 잘 이겨내는 아이 같아 대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문에 저도 제 아이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데 엄청난 절제를 해야 했던 것이랍니다.
그러나 이 밤만 지나면 엄마는 집으로 가고 자기만 남겨진다는 생각에 아이는 내내 우울했습니다. 다음 날, 외출해서 저녁까지 함께 있다가 기숙사로 돌려보내고 그 곳을 떠나오는데 아이의 눈에서 수돗물처럼 눈물이 그야말로 콸콸 쏟아지더군요. <절대로 아이 앞에서 눈물 보이지 말라.> 다른 엄마의 충고였는데 전 그렇게 강한 엄마가 되질 못했습니다. 제 눈이 토끼 눈처럼 발개지도록 눈물이 났답니다.
남편은 차안에서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제 아이였어요. 엄마가 너무 보고싶어...너무...흑흑...
괜히 아이를 보러갔나... 더 많이 울게 만들었나... 속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렇게 많이 울고 마음 약하던 아이의 목소리가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우는 음성이 아니었습니다.
자기도 잘 견뎌내고 열심히 생활하니까 엄마도 잘 기다려 달라고 오히려 절 다독이기도 했습니다.
자기 미래에 대해서도 조금씩 진지한 고민을 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가족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가끔 보내는 편지에는 딸아이의 애틋함이 절절히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건강 염려도 얼마나 진실한지, 엄마 아빠를 생각하는 마음도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지, 동생을 그리워하고 아끼는 마음 또한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래서 이젠 저렇게 까르륵 넘어가는 웃음소리까지 제게 들려줄 줄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 월요일엔 딸아이를 데리러 보성에 갑니다.
학교가 방학을 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마음놓고 아이를 볼 수 있습니다.
8월에 아이가 보성으로 간 뒤, 두 번 집을 다녀갔지요.
그러나 너무 짧은 시간 밖에 주어지질 않아 만나자마자 부터 이별을 아파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이번에 아이를 데려오면 정말 푸근한 마음으로 아이를 볼 수 있습니다.
정말 겪어보니 서로에게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실감하게 됩니다.
보고있어도 보고싶다는 그 말이 그렇게 가슴에 와 닿을 수가 없구요.
잠시 행복한 마음 전하고자 들렀답니다.
자주는 못 들리지만 그래도 절 기억해주시기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