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텃밭에서 풀을 뽑고 있었다.
시골집이어서 마당에 텃밭이 있다.
네 살 짜리 손녀딸이 새우깡 한 봉지를 들고 대문을 들어섰다.
군것질거리를 잘 사주지 않는 인색한 엄마를 둔 까닭에 새우깡은 손녀딸에게는 귀한 것이다.
손녀딸은 새우깡 한 봉지를 들고 기분이 좋다.
평소 엄마는 군것질을 하면 이빨이 썩는다고 했지만 그런 협박보다는 새우깡의 고소한 유혹이 훨씬 강렬하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새우깡 한봉지를 손에 든 손녀딸은 할머니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방으로 들어 오세요. 새우깡 같이 나누어 먹게..."
"먼저 들어 가거라, 할머니는 나중에 들어갈께..."
할머니는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손녀딸은 새우깡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오랫만에 먹는 새우깡이 참 맛있다.
'와삭, 바사삭,...'
고소하고 찝찌름한 맛에 자꾸 집어먹다 보니 한봉지를 다 먹어 버렸다.
한봉지를 다 먹고 흐뭇해진 손녀딸 마당에 있는 할머니 생각이 비로소 났다.
아차, 할머니랑 같이 먹자고 했었는데...
할머니가 나중에 들어오겠다고 했었는데...
놀러가려면 마당을 지나야 하는데...
할머니를 볼 면목이 없다.
네 살 짜리 손녀딸, 곰곰 생각했다.
어찌 이 난국을 타개할 것인가?
평소 엄마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그래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고 했는데...
역시 어른 말은 평소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네 살 짜리 손녀딸, 방에서 나와 토방에서 신발을 찾아신었다.
마당과 토방사이의 계단을 내려서서 타박타박 걸어 할머니에게 갔다.
"할머니, 저 나가서 놀다올께요.
그리고, 할머니! 새우깡은 제가 혼자서 다 먹었어요.
할머니 이빨이 썩을까봐서..."
나중에 할머니에게서 이 말을 전해들은 엄마는 흐뭇했다.
"흐미, 이쁜 내새끼..."
엄마는 딸을 안고 엉덩이를 토닥여 주었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는데, 틀림없이 딸은 자라서 효녀가 될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엄마의 착각이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 한다지만...
싹수가 노란 것을 모르고 될 성 부른 나무로 착각하다니...
그것은 거짓말을 잘 할 가능성이었다는 것을 세월과 함께 엄마는 실감하고 또 실감했다.
하지만 오늘도 엄마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열두번 변한다는데, 네 살 짜리 딸이 보인 가능성이 어찌 한가지 뿐이랴...
'울딸은 효녀가 될꺼야.
제몸 돌보지 않고 부모를 생각하는 심청이 같은 효녀가 될꺼야...
이미 빠지고 없는 할머니 이빨도 썩을세라 제 이빨 썩을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효심이 어디로 가겠어...
틀림없이, 심청이 부럽지 않은 효녀가 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