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이쁘다.
항상 샐샐거리고 웃는 것도 이쁘고 열심히 맞벌이해서 시동생들 학비 대는 것도 이쁘다.
결혼하고 일년도 안되어 떡두꺼비 같은 손자까지 낳아 준 며느리가 볼 수록 이쁘다.
그 이쁜 며느리가 둘째를 낳을 때가 되어 직장에서 휴가를 얻었다.
첫애는 친정에 가서 낳아 섭섭했는데 둘째는 시집에 있으면서 낳겠다고 하니 더욱 이쁘다.
그런데 그 이쁜 며느리가 아이를 낳으려 왔는데 하필이면 바쁜 농사철이다.
직장에 다니느라 피곤한 며느리를 좀 쉬게 하고 싶은데 시골의 바쁜 농사철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모내기는 때를 맞추어야 한다.
하지가 지나면 날이 더워져 옮겨 심은 모가 자리 잡는데 몸살을 심하게 한다.
그래서 모내기는 가급적 날이 더워지기 전에 끝내야 한다.
모내기 철은 일년 중 가장 바쁜 때이다.
금방 시집 온 새색시도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다는 말이 있을 만큼 바쁜 때이다.
농사 짓는 집에서 자란 며느리는 이런 것을 잘 안다.
시어머니가 좀 쉬라고 하여도 일군들 밥을 하는 부엌 일을 거든다고 열심이다.
시어머니는 그런 며느리를 보는 것이 안타깝다.
시어머니 마음은 그리하여도 며느리는 농사일을 돕는 것이 즐겁다.
시골에서 자란 며느리는 모내기 철이 되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는 생동감이 좋다.
마음 같으면 논에 뛰어들어 모내기라도 하고 싶지만 만삭인 배가 허락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일은 논에 뛰어들어 모내기 하는 것만은 아니다.
부엌에서 하는 일도 재미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감자를 넣고 만든 갈치 조림, 반짝반짝 윤이 나게 조려 깨를 듬뿍 뿌려 낸 새우조림, 빨긋빨긋한 보리새우와 파란 애호박이 어울려 먹음직한 호박나물, 상추하고 쑥갓을 넣어 버무린 겉절이, 멸치넣고 파릇하게 조려낸 풋고추,...
일꾼 대접을 위해 만든 음식들은 평상시 상에 오르는 음식과 달리 깨소금도 듬뿍 뿌리고, 실고추 고명도 올리고 해서 더욱 맛있어 보이고 잔치 기분을 돋우기까지 한다.
며느리는 이런 분위기가 좋아서 시어머니가 들어가 쉬라고 하여도 부엌에서 서성인다.
만삭이라고 하여도 이번에는 둘째라서인지 몸도 가볍고 그다지 힘들지 않아서 부엌 일이 그냥 재미있다.
시어머니가 힘든 일은 손도 못대게 하니 그다지 힘들 일도 사실은 없지만...
시어머니는 일꾼 대접 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윗집 새댁을 불렀다.
윗집 새댁도 시골 출신이라 일을 잘 한다고 하였다.
며느리보다 키도 크고 손도 크고 윗집 새댁은 정말로 일을 잘했다.
그래서인지 시어머니는 며느리는 시키지 않고 힘든 일은 윗집 새댁에게 부탁을 하였다.
"새댁, 다라이에 잡채 좀 버무려 줄라우?"
"새댁, 저기 밖에 걸린 솥에 국이 있는데 국 좀 국그릇에 퍼 주구랴."
"새댁, ..."
부지런히 윗집 새댁에게 이것저것 부탁하던 시어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자기 며느리는 시키지 않으면서 윗집 새댁만 부려먹는 것에 대한 미안함에서 한 말이다.
"우리 며느리가 애 낳을 때가 되어서 힘든 일을 시킬 수가 있어야지..."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하지만 이것은 해도 너무했다.
며느리는 윗집 새댁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시어머니의 터무니 없음에 기가 막혔다.
이것은 정말 기막힌 코미디다.
아무리 내 며느리가 귀하다고 해도 이것은 지나치다.
며칠 후 만삭이던 아랫집 며느리가 첫아들에 이어 이번에는 딸을 낳았다.
그리고 하루 뒤 윗집 새댁은 첫아들을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