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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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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손


BY 지금 이순간 2004-12-05

잠이 덜깬 눈으로 얼굴에 물을 적시고 거울을 들여다보니 낯선 여자가 서 있다.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눈가에 주름은 골이 패이고, 예전의 기억에 남아 있던 나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니 늙음의 두려움이 밀려온다.

태어나는 모든 생명은 사라지기 마련인걸 잠시 이 순간 아주 간단한  진리를 망각했나보다.

한국땅이 아닌 타국에 와서 산다는것이 생각보다 쉬운일이 아니다.

언어의 장벽은 성격까지 바뀌게 하는 힘을 가졌고, 대신 단조로운 삶의 맛을 보게했다.

어딜가나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이 든다.

외로움이 깊어지면 사람의 소리, 손짓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려 그들에게로 빨려든다.

모를때와 알때, 그리고 알아가질때....

어쩌면 실수란걸 가장 많이 할수 있는 상황이 무엇을 모를때와 그것을 점점 알아가질때

바로 그 순간 아닐련지..

그 과정이 지나가면  체득한 경험으로 인해 다가가고 물러설때를 알아진다.

마치 어린 아이가 불의 두려움을 모르고 다가서다 깜짝 놀라 울며 뒤돌서며 알아지는것

처럼 인생이 모두 경험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좌충우돌 이리저리 날뛰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은 어렵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바로 좌충우돌이기에 스스로의 문제점을 발견하기가 그만큼

힘이들고 알아지는 길도 멀수 밖에 없다.

빡빡하기만 한국생활에서 이곳 생활은 느슨하다 못해 지루할때가 많다.

지루하다 못해 소심해지까지 하는 이곳을 떠나야한다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싸아하다.

지금도 운전기사와 의사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아 뻥하고 뒤로 넘어가지만

이곳이 왠지 자꾸 좋아진다.

하늘에 걸린 뭉실한 구름도 좋고, 금새 안면 바꾸고 험상궂은 얼굴로 찌뿌려있는

하늘의 변화도 좋고, 바람 내음, 땅내음, 비좁고 상처투성인 도로들,

그리고 한낮의 뜨거움마저....

마치 사랑하는 이를 두고 돌아서는 여인의 마음처럼  괜시리 눈시울이 젖어든다.

어떤이는 '정' 이란 참 지긋지긋해서 버려야할 첫번째로 뽑고,

어떤이는 '정' 이란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 여기고,

어떤이는 '정' 이란 집착의 뭉치이며  그것마저도 분석해야할 대상으로 보고,

어떤이는 '정' 이란 사람답게 사는 덕목 중에 하나로 본다.

내게 있어 '정' 이란 이 모든 이야기들이 하나도 틀려 보이지 않으니

아직도 난 인생의 문턱조차 구경 못한 초보자인게다.

아픔과 기쁨, 역경을 지나온 이들에게 느낄수 있는 진한 내음,

이 땅은 바로 그런 내음이 난다.

하루하루 비 내리는 폼이 마치 사계절 같다.

1분도 버티기 힘겨울 정도로 따갑게 내리쬐던 태양빛이

어느새 천둥번개를 동반한 먹구름으로 덮이고 세상은 온통 깜깜해진다.

맨발로 사는 세상,

발바닥에 느껴지는 땅의 온기로 사는 사람들,

그래서 그들의 성품이 포근한가보다.

달구어진 돌판에 앉아 비가 내리기 전후의  변화를 읽고 보는것이 재미있다.

먹구름 사이로 하얀날개를 펴며 비행하는 새들에게 자유와 평화가 영원하길....

주변의 건물들과 나무들이 비에 젖어 흐느끼고, 우리집 견공은 밤새 지친 몸을 달래듯

삼매에 빠져 좀처럼 미동하지 않는다.

비도 참 시원하게 내린다.

한국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빗줄기가 여긴 일상속에 묻혀있으니 사람들조차도

비가 오고가는것에 그저 담담할뿐이다.

그저 이방인으로 사는 '나' 만의 느낌만 어지럽다.

오늘 하루도 세상의 모든이들이 행복하고 부유하고 평화롭기를 기원하며....

랑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