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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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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을 찾아서- 1) 백조여 안녕


BY 라메르 2004-11-30

 


"가만 있어 봐. 잊어 버릴 뻔 했잖아. 125,126....?...아이 참."

"자알 논다. 아이구 내 속. 벌렁 자빠져 천장 무늬세면 밥 나와?
우라 질 년. 할일없음 기어 나와 무시꼬랭지라도 다듬어."

"엄마 좀 봐주라. 한 번 만."

"뭘 더 봐 줘? 아이고 내 팔자. 어떤 년은 발바닥에 티눈 백혀
때끔거려도 걸어야 하구, 어떤 년은 하두 자빠져 있어 등짝에 등창나게 생겼구."

"좀 봐주라. 응? 뗑뗑이도 오늘 부로 종친다네. 뗑~"

"종쳐? 그럼 뒈지기라도 허냐?"

"뒈지긴 왜 뒈져?. 빠샤"

"빠샤? 좋아하네. 우라질 년."

"엄마 구박주다 후회하지."

"후회? 후회는 니가 하지마라. 등골빠진 니 에민 맨날 청춘인 줄 아나?
아이고 삭신쑤셔. 이리와 등짝에다 파스나 붙여라."

엄마의 등짝은 바짝 말라 앙상했다.

파스 두 개가 양 어깨 쭉지를 다 덮었다.

"엄마~ 저~"

"엄마 뭐? 힌소리면 관두고~...."

"으응, 아~니~"

"싱거운 년"

신이는 병원으로부터 받은 소식을 전할까 생각하다 관뒀다.

"신이씨 병원인데요. 갑자기 결원이 생겨서 내일 당장

일손이 필요한데 내일부터 일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다. 지금 당장 이라도. 죽도록 일을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해야 되니까.

신이의 엄마는 노점에서 야채를 판다. 무시꼬랭지 한 개라도 더 팔려고
오금이 쑤시고 티눈 박힌 발바닥이 따끔거려도 어디든 마다하지 않는다.

파 한단, 배추 한단, 심지어 오이 몇 개라도 득달같이 배달을 하는 통에
재고는 없다. 재고를 없애는 만큼 발품을 판 관절은 삐걱거리다 야심한
밤이면 통증으로 고생을 하지만 아침이되면 물뿌린 배추잎파리 마냥
싱싱해 진다.

신이가 대학을 중퇴하고 시골로 내려왔을때 엄마의 상심은 컸다.

"신이 아부지 어쩐데유. 우리 신이 핵교 관뒀네유. 절름발이 맹길었어유."

아빠의 무덤가에서 엄마는 참 많이 울었었다.

"다른 길도 있겄제 찾아 보믄 사~"

그때 엄마는 그렇게 신이를 위로 했었다. 신이는 그 해 어영부영 놀았다.
놀수록 절망의 그림자가 짙어 왔다. 절망을 하다 깨달은 게 있다.
절망은 희망을 갈구하는 또 하나의 몸짖이라는 것을. 그래서 희망을 갖는
방법을 찾아 보기로 했다. 가난한 인간 신이가 가질 수 있는 희망의 눈높이는
어디인지. 돈, 빽, 학벌.......많은 걸 빼고 나니.....
헐렁했다. 없는 거 천지다. 없는 게 너무 많아 있는 것조차 가려져 보이지
않는 조건에서 뭘해야 할런지....

간호 조무사 학원에 등록을 했다. 보라빛 꿈은 애시당초 글렀다. 아쉬운데로
풀칠해야 할 목구멍에 포커스를 맞추고 보니 한없이 작고 초라한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잠시 눈시울이 붉어 졌다. 설 곳이 마땅치 않은 옹색한 꿈의 바운다리.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자격증을 얻어 로컬(개인의원)에서 일하게 됐다. 쥐 꼬리 만한 월급,
빨래.청소.업무보조, 시계추처럼 매일 똑딱거리는 삶. 신이의 많지도
않은 열정을 금새 싸늘하게 했다.

적지만 꼬박꼬박 받아오는 월급에 눈을 반짝이며 엄마는 희망을 꿈꾸고
있었다. 엄마의 작은 희망을 뭉개기가 어려워 미루다 신이는 석달 만에
그만두게 됐다.

신이는 다시 백조의 자리로 돌아 왔다. 아무 생각없이 놀았다. 아니
생각이라는게 들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것도 희망이라고 상실하고 나니
다시 희망을 품기가 두려워 졌다.

백조에게도 시간은 흘러 일년의 세월이 갔다. 그 사이 희망이 꿈틀거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희망이 꿈틀거리면 싹부터 잘라냈다.

아마 그때부터 였을꺼다.

"아이고 웬수바가지. 허구헌 날 방구들 지켜야?"

"니가 안지켜도 안방, 건너방, 쪽방 모두 안녕 안하냐?"

그때부터 생긴 신이 지칭은 바가지다. 이제 씁쓸했던 백조기를 마무리 하려 한다.

"잘있거라. 바가지. 신이곁에 머물렀던 슬픈 이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