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가 오늘 졸업여행이라고 2박 3일 예정으로 집을 떠났다. 며칠전 12년간의 공부의 결산인 수능을 마치고 한편으론 후련한 맘으로 또 한편으론 앞으로의 결과에 대한 불안함을 안고.... 잠시지만 집이 텅빈것 같다. 나에게 선물처럼 다가온 내아이 아직은 어린 나이였던 내나이 스물셋 예정일을 지나도 출산의 기미조차 없는 아이를 품고 유도분만이 힘들것 같다는 의사의 권유로 제왕절개로 이 세상의 빛을 만나게 했다. 겉보기엔 건강체 자체였는데 이 부족한 엄마 젖도 제대로 못먹이고 백일만에 젖을 떼고 밤낮 바뀐 아이와 씨름하며 지내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그 아이 벌써 열아홉 청년이다. 내리사랑이라던가.. 둘째를 낳고보니 네살짜리 큰녀석은 징그럽게 느껴지고 작은녀석만 끼고 지내다보니 큰녀석의 아우탐이 만만치 않았고 참 많이 혼내곤 했다. 그때의 기억을 아직도 가끔씩 얘기할때면 마음에 비수가 꽂히지만 참 내가 얼마나 철부지 엄마였는지 새삼스런 반성을 한다. 첫아이라고 큰아이라고 늘상 의젓해라 한건 아닌데도 아이는 그렇게 커가는것 같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다하지 못하고 자신을 제어하는것인지 잘 참아내더니 고3이 된 올해 그 아이의 억눌림이 폭발되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위해 삼겹살 파티를 해줬는데 아마도 몇녀석이 술을 가져와서 먹었나보다. 가끔 집에서 아빠가 남자도 맥주는 조금씩 먹어도 된다며 한잔씩 주곤했지만 이녀석 먹지도 못하는 소주를 쉬지도 않고 먹었단다.(아들 친구녀석 말에 의하면) 얼마를 먹었던건지 내 아이라곤 상상도 못할 모습으로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울부짖으며 하는 녀석을 보며 정말 이게 꿈이었으면 했다. 나 나름으로는 아이랑 눈높이 맞추며 산다고 아이랑 함께 얘기도 많이 했고 틈만나면 아이 팔짱 끼고 함께 영화도 보곤 했는데 도대체 내가 아는 아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 당혹함....그 미안함 자신은 겉낳지 속낳는게 아니란 어른들 말씀이 딱이었다. 다음날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도 놀라고 내 얼굴조차 못쳐다보는 아이를 보며 그 아이의 마음을 억누르게 만든 나와 남편의 무언의 압력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야 다 위해서 하는 얘기라고 했지만 그게 그렇게 힘들게했다는 반성과 후회를.... 그렇게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찌됐던 수능이 끝났다. 시험 성적이야 이미 굴려진 주사위마냥 점수로 판가름 나겠지만 성적이 좋든 나쁘든 좋은 대학을 가든 그렇지 못하든 그저 내 아이로 우리곁에 있는 너이기에 사랑한다는 얘기를 자주한다. 세상은 넓고 할일도 많다는 명언처럼 되어버린 그 말처럼 어디서든 하고픈 일 즐거이 하며 살아갈수만 있다면 그게 행복이라고... 내가 내 아이를 이런 눈으로 바라보듯 우리 엄마도 늘 날 그렇게 보고계시겠지. 그저 이 자식 잘 살아가기를... 당신이 못다해준 사랑에 미안해하시며.... 첫아이였기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 기대도 더 많았고 그래서 자신의 어깨에 주어진 짐을 스스로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지만 가장 소중한것은 너의 행복이란다.... 언제나 엄마의 든든한 보디가드.... 우리 앞으로도 열심히 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