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가 다섯살이고 작은아이가 세살이었으니까 내가 설흔 하고도 한살...
참 젊디 젊은 나이다.
출장간 남편이 돌아오는 날이다.
보름만에 돌아오는 남편을 집에서 기다리기 지루해서 공항에 나갔다.
남편이 깜짝 놀라며 반가워하리라 기대했다.
짠...놀랐징...?
요렇게 해줄 요량이었다.
시동생과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면서 아이들도 가장 아쁜옷으로 입히고
나도 정장을 했다.
그당시에는 김포공항이다.
입국자명단을 확인하고 삼십분 연착한다는 방송을 들으면서 시동생은
햄버거 먹는다고 가고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멀뚱히 서있었다.
세련된 사람들이 많았다.
옷을 챙겨입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누가 큰아이 머리를 쓰다듬는다.
'엄마 닮았네...'
귀에 익은 목소리다.
돌아다 보니 옛날 나의 첫사랑이었다.
육년전 친구 결혼식장에서 보고 처음이다.
갑자기 가슴이 쿵하는 소리를 냈다.
'신랑 마중 나왔어...'
나는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그는 웃었다.
'오랫만이야...애들이 이쁘네...'
그가 말했다.
'왠일루...?'
'나도 누구 마중 나왔어.'
나는 출국자가 나오는 곳만 뚫어지게 바라보기만 했다.
'그 형은 키가 커서 그렇게 열심히 안봐도 눈에 띨거야...'
그렇게 그가 말했다.
그는 태연한척했지만 귀밑이 발갛게 몰들어 있는것이 보였다.
그는 남편의 고등학교 후배다.
우리의 결혼소식에 그의 친구들이 후배의 애인을 뺏어 간다고
흥분을 해서 남편을 만난적이 있었다고 한다.
따진다는 명분이었단다.
나는 그 소식을 삼십년 후에 어떤 친구로부터 들었다.
명동에 있는 오비베어에서 그의 친구들과 남편이 만났다.
남편을 만나고 온 그의 친구들은 남편의 달변에 혹해서 아무말도 못했단다.
술만 퍼지게 얻어먹고 참 멋있는 형이야 라는말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따지겠다던 친구들 아무도 입도 뻥긋못했단다.
남편은 멋있는 말을 참 잘했다.
여자고 남자고 그의 말에 혹하곤 했으니까...
언변은 타고 나는것 같았다.
나는 여자의 과거따위에는 연연하지 않아...
현재만 내꺼면 되...
뭐 이런 이야기를 했단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그리고 후배들이 앞으로 살아가는 지침을 강의도 했단다.
그들은 많은것을 배우고 돌아왔다고 했다.
무엇때문에 남편을 만났는지도 다 잊어버린채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그가 아이들 나이를 묻는다.
아이들 이름도 묻는다.
'잘 살고 있지?'
라는 말도 했다.
나는 햄버거 먹으러 간 시동생이 올까봐 조마조마 했다.
애써 그를 외면하는동안 돌아보니 그가 가고 없었다.
남편이 나온것은 한참 후였다.
'아이들을 왜 이렇게 촌스럽게 입혔어?'
첫마디다.
구라파에 있다오니까 한국사람들이 촌스럽게 보이나보다.
'촌스럽게 공항까지 줄줄이 나오고 그래...'
짜증이다.
나는 그 사람이 어디선가 이 장면을 보고 있는것 같아 얼굴이 뜨끈했다.
챙피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했다.
두리번 거렸다.
그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보내고 만것이 그날 밤내내 가슴이 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