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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에게는 너무 아픈 추억


BY 인 연 2004-11-07

兄에게는 너무 아픈 추억

전사에게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주어진 작전을 수행하라는 특명을 내리듯 아버지는 
우리형제를 불러 세워 놓고 일장 훈시와 함께 명령을 내렸다.
목덜미에 난 솜털까지 긴장이 되었는지 스치는 실바람에도 민감하게 흔들렸다. 
아버지는 아랫마을 작은집에서 농기구 빌려 오라는 것이었고 귀가 중에 행여 낫이나 
쇠스랑을 함부로 놀려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당부까지 하였다.
아버지의 명령을 막상 듣고 보니 그렇게 긴장할 일도 아닌데 지레 겁을 먹은 것이 
조금은 창피하였다.

아버지의 표정이 오랜만에 온화해 보였다. 아버지의 표정은 우리형제에게 심부름을 
시킬 때는 평소와 사뭇 다르다. 조금은 비겁해 보이지만 그런 아버지를 탓하는 것은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격이라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우리형제는 그리스 전사처럼 달려 작은집에 당도했지만 집안에서는 어떤 인기척도 
들을 수가 없었다. 가족 모두가 들에 나간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이미 당숙께 농기구 이야기를 하였을 터이다. 
우리형제는 마치 전사가 된 듯 집안을 조심스럽게 탐색하다 농기구 창고에 침투하여 
아버지가 말한 농기구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의기양양, 농기구를 승리의 깃발처럼 든 우리 형제는 마을 골목길을 접어들었다. 
그 때였다. 고추잠자리 떼가 낙화암의 삼천궁녀처럼 잉크 빛 하늘에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낮게 비행하는 고추잠자리를 잡아 볼까 팔을 길게 뻗어 손그물을 만들었다. 
예전에도 간혹 손그물에 고추잠자리가 걸려 든 적이 있었기 때문에 팔이 늘어나도록 
뻗으며 고추잠자리를 쫓아갔다. 
나와는 달리 형은 고추잠자리에 관심이 없었는지 나의 행동에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다른 때 같으면 내가 하는 일마다 이래라, 저래라 참견하다 나에게 불평도 많이  
들었는데 왠지 모르게 형은 여느 때와 달라 보였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길가의 잡초 끝에 잠자리가 여기저기 내려앉아 있는데도 
다가가지도 않았다. 
오장육부 중에 어디가 불편하냐며 물었지만 형은 침묵하며 고개만 가로 저었다. 
둘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의 강이 흐르다 물이 마를 즈음 형은 출처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궁금해 하는 나의 표정을 본 형의 미소는 의미심장意味深長한 말 한마디로 바뀌었다.

"저기 감 말이야. 참 맛있겠지?" 

형의 말끝을 나의 시선은 득달같이 따라갔다.
돌담을 넘어온 가지에 매달린 감이 맛깔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형은 로뎅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처럼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더니 이내 입맛을 다시기 
시작하였다. 이쯤되면 형이 무슨 말을 내게 할지 나는 안다. 
이심전심이라 했던가. 의기상투意氣相投는 시간 문제였다.

"바람 불고 비오는 날이 제일 좋을 거야."
"그럼, 애로사항은 좀 있겠지만 사람들도 안 돌아 다니고 비오는 소리 때문에 왠 만한 
소리는 들리지 않을 거야."
"분명 단감이 맞지?"

모의가 끝나고 며칠이 지나자 마침 아침부터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고 형제는 
무언의 교감이 오갔다. 
지루한 하루가 지나고 밤이 깊어지자 부모님 몰래 형은 바가지를 나는 비닐봉지를 
챙겼다.
형이 바가지를 챙기는 이유는 시골에서 살면 삼척동자도 아는 상식이다.
대상에 따라 서리 방법이 약간 다르다. 
충분한 사전 탐색은 기본이지만 밤중에 수박이나 참외를 서리할 때면 가능한 웃옷을 
모두 벗어야 한다. 더 좋은 방법은 팬티만 입는 것이다.
그래야 어두운 밭을 더듬고 기어 다닐 때 수박이나 참외의 촉감을 쉽게 감지할 수 
있고 행여 주인에 들켜 쫓김을 당해도 옷자락이 없어 손에 잡힐 염려도 없고 주인에게 
옷차림을 보여 주지 않아 뒤탈이 없다.
감을 서리할 때도 바가지를 준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흔들거리는 나뭇가지에 올라 잎사귀에 쌓인 감을 발견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바가지를 머리에 쓰고 나무에 올라 고개를 휘저으면 가지에 
매달린 감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가지에 부딪친다. 
그 소리를 따라 손만 뻗으면 감은 쉽게 손안에 들어온다.

우리는 돌풍을 동반한 빗줄기를 뚫고 골목길을 더듬어 감나무가 있는 돌담에 이르렀다. 
나는 감나무 밑에서 망을 보며 형이 따서 던져 준 감을 비닐봉지에 담는 일을 맡았고 
형은 감을 따는 임무를 맡았다. 
형제의 눈빛은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도 유성처럼 빛났다. 묵시적인 큐 사인과 함께 
형은 조심스럽게 감나무에 오르기 시작하였으나 감나무는 세찬 바람에 몹시 흔들렸다. 
목소리를 낮춰 형에게 조심하라며 나는 위로의 말을 전했고 시간이 지나자 발 밑에 잘 
익은 감이 한 두 개씩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형은 마치 전사 같았다. 감을 전문적으로 서리하도록 훈련받은 전사였다.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뭇가지를 여기저기 옮겨 다녔다.
골목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형을 지켜보며 형이 던져 주는 감을 비닐봉지에 열심히 
담던 나는 불안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감으로 비닐봉지가 거의 채워졌을 때 나는 그만 내려오라며 형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형은 이미 서리의 기쁨에 흠뻑 빠져 있었다. 가지에 매달린 감을 모조리 따야만 
내려올 것 같았다. 
형은 휘어지는 나뭇가지를 다람쥐처럼 여기저기 옮겨 다녔다. 몹시 위태로워 가슴이 
두근거렸다. 

욕심이 지나치면 사단事端이 생기고 과식하면 배탈이 난다는 진리를 되새기는 것도 
유익한 생활의 발견이다.
갑자기 불어온 돌풍에 형은 중심을 잃고 나뭇가지에서 손을 놓쳐 버렸다. 
나뭇가지가 와지직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둔탁한 소리도 함께 들려 왔고 나는 너무나 
놀라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팽개치고 형을 부르며 돌담에 올라갔다.
감나무 밑에는 짙은 어둠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세찬 빗줄기가 서늘해진 가슴팍으로 스며들었고 죽음이 지나간 듯한 침묵이 흘렀다.

"감나무에서 떨어지면 죽거나 큰 병신이 되는 법이여."

갑자기 얼마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 말씀이 떠올랐다. 
결이 약한 감나무는 조그만 충격에도 쉽게 부러지니 오를 때는 조심하라는 말을
할머니는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더더욱 비바람이 부는 날에는 물을 먹은 나뭇가지가 쉽게 부러지는 특성이 있다.
멀쩡하던 형이 죽었다는 생각이 들자 혼자 시체를 수습할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고
아버지의 체면과 형의 명예를 생각한다면 남의 감을 서리하다 떨어져 죽었다는 소리는 
듣지 않아야 될 것 같았다.
어떡하든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호흡도 불사할 생각으로 담을 넘었다.
흥건하게 젖은 땅바닥에 형의 주검은 침잠한 굼뱅이처럼 늘어져 있었다.
난생처음 겪는 공포와 위기가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마음은 급했지만 손으로 더듬기가 
무서워 발로 먼저 터치를 해 보았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또 다시 발로 터치했다. 이번엔 좀더 세게 밟고 찼다.

"아, 아!~ 윽!~"

어디선가 세상을 다 살아 버린 듯한 목소리가 빗소리에 묻혀 공포스럽게 들려 왔다.
죽은 줄만 알았던 형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형에 대한 분노가 불같이 
일어났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이런 상황에 성격 좋은 내가 참지 않으면 세상이 너무 
삭막해 진다. 
형은 목구멍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듯한 신음소리를 냈고 그 때서야 나는 십년감수한 
듯 하였다.

"감...감은 어떻게 됐....냐?"
"이런! 지금 감 걱정할 상황이야. 빨리 일어나!"
"못 일어 나....겠....다."
"많이 아퍼. 어디 다쳤어?"
"묻지마. 말도 안.....나...온...다."

아픔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 더 고통스러운 법이다.
보아하니 땅바닥에 튀어 나온 돌부리와 부딪친 형의 골반뼈와 항문이 치명타를 입은 
듯하였다. 입술을 깨물고 참고 있던 나는 웃음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형은 그 밤 이후 누구에도 털어 놓지 못할 쓰라린 아픔을 안고 3개월을 고생하였다.
특히 화장실에서 느끼는 고통은 심히 안쓰러울 정도였다. 오호애재嗚呼哀哉라! 
사춘기 형의 가을 끝 자락은 참으로 잔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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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 포트 리에서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