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번 일요일엔 남편과 둘만의 오붓한 데이트가 있었다.
물론 그의 신청에 의한거다...^^
그가 나에게 요렇게 먼저 둘만의 데이트를 신청한 연유는 이러하다...
~거슬러 올라가, 젊은시절,
내성적 성격 이면엔 또 콧바람 쐐기를 무지 즐기는 나의 기질적 특성 땜시
휴일마다 가족 나들이는 거의 생활이었다.
큰아이만 있을때도 휴일이면 드라이브하기는 어길 수 없는 암묵적 룰이었다...
그러다 둘째가 태어나고 그 횟수가 점 점 줄어들기 시작했고 급기야
나마저 서서히 귀찮아 질락 말락했다.
거기에 일조를 가하는 또 하나는 애들이 당췌 협조를 하지 않는데 있다.
큰놈 중3, 그래 이 놈은 지금 한창 사춘기라 혼자 있는걸 즐기는게 당연하다 치더라도
10살짜리 딸마저 컴퓨터 게임과 친구랑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걸 선택할 때면
슬그머니 김이 빠진다.
큰 놈은 포기하더라도 작은 아인 어찌 꼬득여서라도 데리고 갈려고 애를 썼건만
이젠 이 마저도 접어야 할 것 같다.
한 달 전쯤 남편,나 ,딸 모처럼 야외로 가기로 했다.
말할 것도 없이 나의 제안에 의해서다.우린 가까운 경주 보문단지로 가기로 했다.
차 창밖에 펼쳐진 황금빛 들판과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 한들거리는 코스모스는
무르익은 가을을 만끽하기에 충분했다.
들뜬 기분으로 목적지에 도착, 때마침 둘씩 짝지어 시원스레 달리는 자전거 타는 모습이
포착, 우리도 빌려 타기로 했다.
참고로, 난 평생동안 단 한번도 자전거를 타 본 적이 없노라고 남편에게 얘기했다.
우린 2인용 한 대를 빌려 앞자리엔 남편, 뒷자리엔 딸과 나 번갈아 타기로 협정을 맺었다.
먼저 남편과 딸 둘은 유유히 바람을 가르며 호수를 돌았다.
난 강아지와 함께 빈 벤치에서 초라하게 앉아 있었다.
어랴~ 근디, 거의 30분이 지나서야 그들은 내 앞에 나타났다.
딸아인 어린이용 자전거를 타고싶다고 빌려달랜다.
'음~ 그럼 딸은 어린이용 타고 , 남편과 나랑 같이 타면 되겄당 후후~'
순간적인 내 머리속의 계산이었다.
잉?
남편은 2인용 자전거를 타보라고 나에게 슬그머니 건네 주었다.
그리고 그는 딸아이 자전거를 잡아 주며 둘이서 낄낄대며 신나게 놀고 있었다.
내 옆엔 길다란 2인용 자전거만 덩거러니 서 있었다.
이건 계산 착오다.
아~~ 난 왕따가 되어 있었다.
주차되어 있는 차 속에서 난 배신감과 외로움과 함께 씩씩대고 있었다.
나의 스린 아픔은 안중에도 없이 지네들끼리 신나게 놀다 온 남편에게
그 동안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 두었던 폭죽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휴일엔 하루종일 컴퓨터만 껴안고 있는거.
*평생동안 영화구경 가자소리 한번 하지 않은거.
*식탁에서 식사하지 않고 TV 보며 낄낄대며 밥 먹는거.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외식은 절대 하지않는거.
*아이들 안데리고 외출하면 죽는줄로만 아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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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생략.
사이 사이 공포도 쏘아가며 폭죽을 터뜨리다 집에 도착했다
이번 일요일,
어째~ 평소 남편 같잖은 것이 감이 다르다.
아침밥 차리는 소리에 부리나케 식탁앞에 앉는다.
후후~ 약발이 받네.
청소기 돌리자 얼른 자기가 뺏어 든다. ㅋㅋㅋ
오늘은 컴퓨터앞에 앉지도 않았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더니 둘이 단풍구경 가잔다.
이렇게해서 우린 둘만의 오붓한 데이트를 즐기게 되었다.
근디, 언제까지 약발이 갈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