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로 이민와서 1년 1달이 되어 어찌어찌하여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정착이라는 말아래 공부를 계속하여야 하여 5년 후에야 첫아이를 갖게 되었다.
입덧이 얼마나 심하였든지 처음에는 친정에서 회사출근을 하고.
조금 괜찮을듯 하여 집으로 왔지만 기차에 내리면 밖의 공기 내음,
회사에 들어서면 달라지는 냄새에 출근하여 몇번이고 넘기다 보면 어느새 집에 와있곤 하였다.
그 때는 하바다리를 건너면 첫빌딩(지금은 더 높은 빌딩이 앞뒤로 가득 메꾸워 졌지만) 12층까지 있는 “호주표준규격” 호주 스탠다드에 다녔는데 회사내에 소문이 자자하여 몇분이서 딸인가 아들인가 하면서 빨강색과 하늘색, 노란색의 아기 옷을 뜨개질 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점심시간이면 오페라 하우스와 다리가 내려다 보이는 회사앞
작은 공간에서 잠깐씩 눈을 붙이곤 하였다. 때로는 눈물이 핑돌정도로 많이 힘이 들었다.
아이를 늦게 갖인 이유도 있을것이고 몸이 약한 이유도 있었을까?
하옇던 2번 병원에 들어갔고 3번째 들어가서 첫아이를 갖었다.
전혀 먹지를 못하였는데 4개월이 지나니 어느 가게 구운 닭을 조금씩
먹을수 있어 닭과 우유만으로 지냈다.
그러면서도 근무에 열심을 내었다.
예정일이 가까와도 전혀 내려올 기색이 없어 의시는 한 3주 늦게 나오겠다고 하였는데 예정일 전날 다른 주 브리스밴에서 선물가게를 하시는 아는 언니가 물건을 하려 시드니로 내려와 하루 종일 뚱뚱한 배를 하고선 물건하려 다니는 곳에 따라 다녔는데 그 덕분인지 다음날 이른 새벽에 진통이 오기 시작하였다.
남편을 직장에 나가지 말라하고 날이 밝아서는 언니에게 이야기 하니
“어제 먹다남은 된장국에 밥말아 먹고 가자”고.
병원에다 데려다 놓고 언니와 남편은 또 물건하려 나갔다.
아파하는 내옆에 누가 있는 것이 싫었는데 다행이였다.
저녁이 가까올 무렵 아이는 나오려 하고 늦게 나올것이라고 단정한 의사를 한참을 찿아야 하였고. 부리나케 온 의사는 나오기 싫어하는 아이를 꺼내기 위하여 나가 커다란 집게를 갖고 오고 한바탕 소동이 있은후에 아이의 탄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