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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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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아이] 엄마, 사랑해요~


BY 황연서 2004-11-02

본명 정 예지(필명 정서희)
생년월일 1998년 2월 10일 오전 10시 17분생
태어난 곳 대구 침산동 **산부인과

[엄마, 엄마, 힘 빼세요,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고 반복하시구요
아직 멀었어요, 쉼호흡 많이 하세요!]

[네에,,,아야야, 아야야]

어여 빨리 출생하기만을 바랬다
18시간 째 진통 중이었다
잠은 마구마구 쏟아지는데 배가 너무 많이 아파서 쉬이 눈을 부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큰 대자로 두 다리 쭈욱 뻗고 편히 눕고 싶었는데 아랫배가 틀어지는 통증때문에
항상 오른 쪽, 왼쪽, 번갈아 가면서 모로 누워있어야만 했다

[빨랑 나와라, 빨랑]

하면서 가물가물거려오는 눈이 감겼고 잠시 1~2분 사이 깜빡 잠이 들었다
빨강색 한복 조끼를 입은 아주 자그만한 새끼 돼지를 품에 와락 껴안았다
근데 그 쪼그만한 새끼돼지의 힘이 얼마나 센지 자칫 놓쳐버릴 것만 같았다
조막만한 돼지는 내 품에서 떨어져 나가려고 발길질을 세차게 하면서
몸을 옆으로 마구 휘젖는데 조마조마 불안한 맘 가눌 길이 없었다
혹시나 돼지를 놓치면 잃어버릴 것이 뻔했기에 놓치지 않으려고
난 필사적으로 돼지를 꽉 부둥켜 안았다
그렇게 돼지랑 실랑일 벌이면서 꿈에서 깨었다

그 때였다 몸 안에서 뜨끈뜨끈한 양수가 확 터져나왔고 더 심한 진통이 시작되었다
배가 아파왔고 자연스레 두 다리를 치켜올려 꽉 잡으며 힘을 주기 시작했다
간호사가 놀래며 다가왔다

[어머! 어머! 아이 머리가 보여요! 빨리 빨리 분만실로 옮깁시다]

으으윽!
힘을 삼 세번 주자 쑤욱하고 뭔가 묵직한 것이 내 몸 안에서 빠져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우렁찬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매번 드라마에서나 보던 애기 낳던 장면을
지금 막 내가 재현했구나 하는 마음에 그저 감회가 새롭기만 했다
탯줄이 막 잘려진 딸 아이가 내 옆에 뉘여졌다
얼굴을 돌려 아이의 얼굴을 고즈넋이 바라보았다 누굴 닮았을까?
짙은 검은 머리칼이 유난히 돋보였다
뽀얀 살결이 날 닮아서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금방 태어나서 그럴까? 아이의 얼굴상이 많이도 찡그려져 있었다
아이의 표정이 마치 전생에 욕쟁이 할머니같다란 느낌이 들 정도로 엄청 일그러져있었다
아이는 새하얀 베넷옷에 둘둘 말려지고 발목과 팔목에 내 아이란 표시가 붙여졌다
그리고 신생아 바구니에 담겨져 신생아실로 옮겨졌다

나도 입원실로 옮겨지고 하루가 멀다하고 난 아이 면회시간만을 기다렸다
낮동안엔 남편이 출근하는지라 시댁식구들은 바빠서 못 오시고
친정모친은 원래가 내 할 도리엔 무관심한 양반이신지라 딸이 애를 낳는데 열일 제치고
들여다 봐야 한다는 상식조차 모르시는 분이시기에 당연히 오시지 않으셨다
그래서 난 혼자서 쓸쓸히 밥 먹고 뒤를 치우면서 몸조리를 해야했다
아이 면회 시간이 다가오면 혼자서 링겔대를 끌고서 엉기적엉기적 걸음을 어렵게 옮겨
내 딸 아이가 뉘여있는 신생아실로 가서 창문 밖으로 아이와 면회를 즐겼다

그 곳에서 깨끗이 목욕 씻기고 따뜻한 우유먹고 그래서인지 처음 봤을 때보다
많이 얼굴의 잔주름이 펴진 상태였다
눈망울도 또렷또렷해졌고 곧 잘 웃음 지어보였고 짙은 검은 머리숱이 유난히 많아서
전혀 신생아같아보이지 않을 만큼 참으로 건강하고 밝아보였다
태아 때 열달 내내 엄마랑 아빠가 이야기 걸어주며 같이 놀아주며 사랑을 많이 나눠준 덕에
아이는 천성적으로 꽤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듯 해 보였다

**

[예지야~ 요기 봐! 엄마 봐 봐, 어서, 자, 사진 찍는다, 웃어봐! ,,,,,,,까꿍!!]

[까르르르~]

아이의 웃음 소리가 허공 높이 울려퍼진다
맑고 화창한 7월의 한 낯 더위도 물러날 정도로 딸 아이의 웃음 소리가 참으로 청명하였다
며칠 전에 꼬까방에 들렀더니 눈에 딱 들어오는 옷이 한 벌 있길래,
너무도 어여뻐 보여서 큰 맘 먹고 한 벌 장만하였다
그 옷을 입혀 아파트 근처 정원에서 사진을 찍으며 아이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태어난지 아직 6개월 밖에 안 된 아이를 바위 위에 앉혀놓고 사진을 찍으려하는데
옳게 앉는게 잘 안 되는지라 사진을 찍으려하면 옆으로 쓰러지고 뒤로 넘어지고 하는 통에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었다,
그래도 오기가 있지 이대로 물러날 수 없어서 아이의 골반과 허리 뒤 춤에 바위돌로
자세를 고정 시킨 후에야 비로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잠시 한 눈 판사이 아이가 뒤로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아이의 다리가 바위의 날카로운 부분에 살짝 스치우게 되었다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트렸고 ....

근데 난 분명히 들었다

아이가 울면서 [ 엄마~ ]하면서 울음보를 터트렸다는 것을..

내게 엄마란 소리를 들려준 것이다,

나를 아직 엄마되기엔 미흡한 점이 많은 나를 엄마라 불러준 것이다

얼마나 기쁘고 행복하고 감사하였는지....

아이의 울음소리가 웃음소리고 들렸다

아이의 울음을 달래려고 안아주고 으르고 그러던 그 때가 아직도 아련하다

그러나 그 이후 부터, 변화가 생겼다
그 무렵에 연년생으로 아이가 들어서는 바람에 큰 아이를 많이 보듬어줄 수 없게 되었다
몸이 무거워지고 모든게 예민해져갔기에 큰 아이 뒤치닥꺼리가 피곤으로 와 닿았다
혼자서 살림하며 큰 아이 돌보기가 여간 만만찮은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남편의 베려가 있었다면 훨씬 수월했겠지만,
둘째가 들어서자 마자 갑자기 남편의 태도가 변해버렸다 아주 신경질적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남모르는 심적인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 것이다

남편이 그렇게 변한 이유는 150만원의 봉급으론 두 아이를 키워낼 수 없다란 판단에서
유산을 권유했는데 난 남편의 뜻에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의 태도가 툭하면 짜증에 시비에 욕설에 학대에 구박에 손찌검에,,,
그렇게 되자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큰 딸의 뒤치닥꺼리를 빌미삼아
큰 딸에게 자주 화를 내게 되었고 신경질을 부리게 되었다

그렇지만 내 나름대로 큰 딸에게 잘 해주려고 최대한 노력하였다
물론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엄청나게 사랑하고 있음은 사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무의식적으로 화풀이를 큰 딸에게 해 대고 있는 자신을 보아야만했지만
한편으론 그런 내 자신이 너무도 싫어고 미웠지만
그래도 딸 아일 너무도 사랑하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을 떠 올리면서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나의 부족함을 달래려 애썼다
사실은 친정 엄마가 날 키울 때의 폭력적인 모습과 너무도 닮아있는
그런 내 자신이 너무도 역겨웠다
엄마가 날 폭력적으로 키웠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남편의 학대에 대한 분풀이를 적절히 소화하지 못하는 것이란 사실을
전문상담기관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난 과거 친정엄마로 부터 입력된 나쁜 기억을 지워버리려 노력했다
딸 아이에게 최대한 좋은 엄마가 되고자 노력했다
내 친정엄마처럼 그런 부덕한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기에 난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친정엄마가 나를 형편없는 아이라 각인시켜놓은 탓에 내 인생이 불행하게 되었기에
그런 불행을 내 딸아이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란 각오로
난 큰 딸아이를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사람을 듬뿍 나눠주고자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실천하였다

지금은 우리 큰 딸이 너무도 온전하게 잘 자라고 있다
나의 살가운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나 지금은 7살이 되어있다
6살 박이 여동생과 함께 도란도란 잘 자라고 있다
엄마사랑 많이 받고 자란 덕일까?
모두들 너무도 밝고 긍정적이고 착하다...
영혼이 너무도 순박하고 곱다

학원에서 그림을 잘 그린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곧 잘 그림을 그려와 보이는데,

하트 문양을 그리고 그 안에 [엄마 사랑해요]라는 문구를 써서 보여주며

활짝 웃음지어 보인다

엄마, 사랑해요~

 

엄마 힘들답시며 집 안 청소도 곧 잘 도와준다

설걷이며 방 청소며 빨래까지..

그리고 힘들어하고 피곤해하면 다가와 어깨와 팔 다리 여기저기를 주물러준다

맘이 아파서 울고있으면 친구가 되어주겠다면서 미주알고주알 이야길 다 들어주기까지 한다

너무도 흐뭇하고 기특하기만 하다...

딸이 곁에 있어서 이젠 외롭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