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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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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 착각과 현실


BY 메기 (배정희) 2004-10-21

(신혼) 착각과현실

 

 결혼하면 좋은 것만 상상 했다.
 사랑만하며 사랑만 받으며 꿈결처럼 살리랴.
 같이 있을수 있다는게 얼마나 좋을까?

 신혼여행을 다녀오니 방 한칸에 시할머니가 누워 계셨다.
 호청도 씌우지 않은 이불을 덮고,
 하얀머리 뚱뚱한 몸, 얼굴은 틀니를 빼니 아기  얼굴 이었다.

 시어머니는 서른여덟에 혼자가 되셨다.
 아들 셋과 딸 하나 시어머니 한분이 부양할 가족이었다.
 작은 아버지는 조카가 결혼 하면 당신 어머니는 모셔 가겠다고 하셨다는데 ,
 여의치가 않은 모양이었다. 

 나와 같이 한집에 남편,시동생, 시할머니가 살아야했다.

 남편과 시동생을 출근 시키고 할머니 이불 호청을 꿰메야 겠다고 작정은 했는데
 걱정이 앞섰다. 학교 다닐때 실습해본 것이 바느질 연습의 전부였으니까. 
 할머니는 좋아하셨고 풀을 빠빳하게 먹인 하얀 옥양목 호청을 주셨다.
 골무를 끼고 용을 쓰며 한떰식 떠나갔는데 다 하고보니 삐뚤삐뚤

 춤을 추고 있었다.
 할머니는 화안히 웃으시며 괜찮다고 좋아 하신다.

 나는 우이동에 사는 서울 토박이와 결혼해서 우이동에 이층을 세를 얻었다.
 집은 가난 했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남편이 벌면 나는 알뜰하게 모우리랴 작정해서 몇년 동안 아무것도 사지

 않으려고 편지지 우표 클립등 작은 것 까지 다 챙겨서 왔다.
 우이동은 수돗물이 밤12시가 되어야 나왔고 시동생이 물은 받아 주겠다고 해서
 잠은 설치지 않아도 되었다.
 결혼해서 얼마 되지 않아 김장을 한다고 어머니가 하시는 가계로 내려 오라고  

 했다.
 아침 먹은 설거지를 하고 만반에 준비를 하고 갔던이 김장은 끝나가고 있어
 몇포기 치대니 끝났다. 그리고 가계에 밥과 반찬을 매일 해서 배달을 하라고

 했는데 일이 더디다보니 시누이가 몇 번 짜증을 내더니 가계에서 해먹는다고 한다.

 남편 월급은 어머니가 바로 받아서 월급이 얼마인지도 몰랐다.
 나는 신혼인지 식모인지 ,밥하고 차리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돌아서면
 할머니는 점심을 달라고 하셨다.
 시동생은 학교 선생이었는데 매일 바지를 벗어 놓았고 친척들은 형수한테

 속옷도 서슴치 말고 내놓아야 한다고 하니 시동생은 그렇게 했는데 팬티에 항상

 피가 묻어 있어 나는 이상한 생각을 하곤 했다.
 남편은 미안 해서인지 속옷도 하루 더 입겠다고 했다.
 세탁기는 밤12시에 사용할 수가 없었다.

 한낯부터 눈이 내리기시작 했다.
 부산이 고향인 나는 펑펑내리는 눈을 처음보았다.
 금방 길은 하얗게 변했고 산도 나무도하얗다. 나는 할머니 밥상을 차려놓고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추어 회사 앞에 갔다.    코발트색 코트를 입으니 나도

 눈속에서 멋져 보여 콧노래를 흥얼대며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결혼하고 첫 데이트에 나는 들떠 있었다. 눈에 취해 있기도 했고,_------

 남편은 의아해 하며 찻집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웬 일이니 ? 할머니 밥은 어쩌구왔어? ”
 “차려 놓고 허락 받고 왔어” “우리 짜장면 이라도 먹고 가자”
 나는 매일 토큰 두개에 천원을 받아 오는 남편의 주머니 사정을 알기에 내가

 돈을 내겠다고 까지 했는데도 어른 모시고 살면서 우리끼리 먹고 가면 안된다고

 부풀 대로 부픈 내 기분을 일순간에 곤두박질 시켜버렸다.
 연애 할 때 와는 100% 변해버린 그를 보며 나는 그저 팔 다리에 힘이 빠져옴을

 느꼈다. 내가 큰걸 요구 한것도 아니고 저녁 그것도 자장면이라도 먹고 가자고

 했는데 거절 당한데 대해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말없이 집에 왔다.
 그는 눈도 쓸지 않았다며 옷 벗자 마자 널빤지로 눈을 민다.
 나는 보기 좋은데 눈을 쓴다고 쓸지 말라며 쫓아 다니니 눈이 얼면 대문이

 열리지 않아 나갈 수도 없다고 한다.
 그는 바쁘다고 거의 늦게 오고 술에 취해 왔다
 나는 매일 밤을 세다시피하고 신혼기분이 나기는 커녕 매일 눈물을 찔금거렸다.

 어머니를 돕겠다고 가계에 나갔다.
 어머니는 48세 였는데 시아버님과 열두살 차이가 나서 그런지 생각은 육십세

 사람 같이 했다.  살아온 얘기를 하시며 당신을 잘모셔야 한다는 말을 했는데

 보름동안 같은 말만 반복 하는데 앞날이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신혼이니 남편만 잘해 주면 살아 질 것 같은데 그는 매일 술에 취해서 

 늦게왔다.
 나는 술에 취해 코를 고는 소리에 잠들지 못하고 밤을 하얗게 보냈다.
 머리맡에서는 누군가 곡괭이로 땅을 파는 소리가 자꾸 들렸다. 
 그러기를 며칠 나는 더 이상 여기 있다가는 미칠 것 같아 떠나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밤이 새도록 편지를 썼다.
 결혼은 해도 후회 하고 안해도 후회 한다는데 해보고 결정하니 후회는 없을 것같다.
 자기 하나 보고 시집 왔는데  자기마저 매일 늦게 오니 나는 할머니와 시동생 

 뒤치닥거리 하러온 것 같다. 며 어머니가 하신 말씀은 빼고 몇장을 적어놓고

 새벽에 골목길을 빠져 나오는데 그렇게 홀가분 할 수가 없었다.

 첫차를 타고 서울 시내를 달리는데 미련도 아쉬움도 없이 다시는 안오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결혼 삼개월째 였다.

 부산역에 도착하니 막상 갈곳이 없었다.
 친정에는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 친구 현자를 불렀다.
 현자는 좋아하며 자기집으로 데려 갔는데 현자 어머니는 새댁이 집을 나왔는데

 재워 주어서는 안될 것 같다며 친정으로 가란다.
 밤은 되었고 친정에 가니 엄마는 올줄 알았다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리고 며칠 나는 친구도 만나고 가고 싶은 곳도 다니고 하니 살 것 같았는데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사람 거기 왔어요?”
“안왔는데.와그라노  부부 싸움 했나?”
“아니요.자고 일어나 보니 없었는데......,
“친구집에 갔겠지. 오면 혼 내라. 한번 나가 버릇 하면 자꾸 나간다.‘’
 엄마는 천연덕 스럽게 내가 친정에 안왔다고 하고는 나보고 이제는 서울 가라고 한다.

 나는 다시는 안오겠다던 서울로 가고 있었다.
 서울역에서 전화를 하니 그는 반갑게 어디냐고 나오겠다더니
 금방 갈테니 혼자 들어 가란다.
 집에 도착하니 시어머니가 우리방에 계신다.
 남편에 대한 불만이 있으면 당신한테 얘기 하지 집을 나갔다며 옛날 같으면

 부모님을 모셔 오라고 하겠지만..용서해주니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라는데
 그가 들어 왔고 어머니는 가셨다.
 그는 자기가 잘못 했다며 총각때 매일 늦게 다녔는데 결혼 했다고 일찍

 들어오면 식구들에게 흉 잡일까봐 그랬는데 이제 고치겠다며 아무말도 묻지

 않고 꼭 안아 주었다.
 그렇게 내 신혼은 꿈도 희망도 하나씩 포기 하면서
 현실을 가슴에 담는 것으로 적응해 나갔다...


 앞날은 그래도 좋은 날만 있을거라고 착각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