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조시간이 되자, 수위가 높아져서 배들이 방파제를 넘을 듯 솟아올랐다. 10월 햇살은 물그림자를 흔들며 뱃머리에 찰랑댄다.
갓 진수해온 배 이물에선 서낭기를 매어 단 대나무가 가을 하늘을 찌른다.
시어머니는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으니 곰팡이 핀 벽만이라도 도배를 하자했다. 낮은 천정에 파리똥도 모른 체하고, 심하게 더러운 부분만 골라 길이를 맞추며 도배지를 재단했다. 똑같은 무늬건만 누렇게 바랜 벽지와 새 벽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다.
본래 나는 자를 대고 선을 그어도 비뚤어지는 사람이긴 하지만, 한 쪽을 기준해 붙이다 보면 반대쪽은 어긋나곤 하며 도통 반듯하게 붙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겨우 맞추어놓으면, 중간에 불룩하게 떠버리고 수건으로 그걸 밀어내면 다른 쪽에 또 그만큼 주름이 졌다.
풀칠을 하던 시어머니는 도배해서 먹고 살긴 글렀다며 나를 탓했지만, 나는 언제면 반듯한 집에 살아 볼 거냐며 반듯하지 못한 벽을 탓했다. 직각을 이루지 못한 방의 모서리들처럼 방 안의 물건들도 번듯한 것 하나 없이, 딱 내 사는 모양 그대로라 절로 한숨이 나왔다.
친정어머니가 꼭 한 밤중에 혼자 도배하시더니, 내 삶이 꼭 그 짝이네하며, 곰팡이 올라 후줄근해진 벽지처럼 힘이 빠졌다.
두어 평짜리 방에 문과 창을 빼고 천정까지 제외하면, 서너 줄 붙이면 그만인 것을, 조각조각 이어 붙이고 때워 내느라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친정어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어쩌다 외출하는 날이면, 늘 입어오던 몸뻬바지를 벗고, 나이론 꽃무늬 치마를 입어도 영 태가 벗지 않던 어머니, 아무리 씻어도 씻겨지지 않던 손톱 사이에 낀 흙이랑 구두 속에도 감추기 힘든 휘어진 발가락들과 싸구려 화운데이션으론 가릴 수 없던 그을린 얼굴을 보며, 난 다림질선이 반듯한 옷을 입고, 뾰족한 구두를 신고 살리라했다.
그러나, 선택은 습관이다. 습관적으로 사람은 친근한 걸 선택하게 된다.
허름함에 익숙한 눈에 허름함은 허물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이 낡고 반듯하지 못한 집에서 삐뚤빼뚤 도배하듯 살아가는 내 모습은, 오랜 선택의 퇴적물이거나, 습관의 지층일 것이다.
가만히 누워 바다를 본다. 돌상 받은 아들이랑 백일잡이 딸아이가 액자 속에서, 누워 있는 날 보며 새로 도배한 벽지보다 더 환하게 웃는다. 전방 20미터 앞에 있는 바다는 흔들리는 구들장처럼 내가 누워 있는 방과 이어져 있다. 나는 갯바위처럼 웅크려 있다.
담배를 사러 온 뱃사람은 내 게으른 자세를 탓하지 않고, 누워있으라며 시어머니의 낡은 진열장에 손을 넣어 담배를 골라 나간다. 방바닥에 꼬깃한 지폐 두장이 그가 흘리고 가는 비린내처럼 남는다. 그도 나도 깍듯한 예의보다는 흐트러진 편안함에 익숙해져 있다.
아무래도 난 아귀가 꼭맞는 반듯함보단 이런 어수룩한 편안함이 체질이 되어 버렸나보다.
기울어 가는 햇살 아래, 졸음이 온다.
나보다 더 편안히 누운 바다가 찰랑거리며, 나를 토닥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