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면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그날..
아직도 난 생생한 초보새댁같은데..남들 보기엔 아직도 철 안들었냐 닥달 듣기 일쑤고..
세상에서 결코 결혼할수 없다고 점쟁이한테 들은 얘기조차 3번이었건만
당당하게 떨치고 운명에 맞서 싸워 드디어 승리를 거머진 저의
결혼 이야기..
한번 들어보실래요?
그 이야기 속으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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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때는 바야흐로 밀레니엄을 약간 앞둔 1997년...
첫사랑에 실패후 남자 알기를 길거리의 캔깡통보다 못하게 봤던 그때에..
저는 그야말로 세상이 마치 내것인만냥 온갖 똥폼에 싸여있는
20대후반의 캐리어우먼이었지요.
혼자서도 위풍당당 폼나게 살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주말일과는 친구들과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여행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고
평일에는 악바리처럼 일에 매달리며 나의 미래를 꿈꾸고 있었답니다
그런 저를 보다 못한 저의 어머님은 급기야.. "딸래미 시집보내기 프로젝트"를
완성시켰고 어머님의 넓은 발로써 친구들을 포섭..대전시내 내노라 하는 뚜마담들에게
현상금까지 걸어가며 저를 옮아매기 시작하셨답니다
날이면 날마다 두둑히 쌓이면 남자들의 사진에..이력에..
주말마다 대전의 호텔마다 선이란 선자리는 다 마련하시는데..
저는 호텔이 잠자는덴줄만 알았지..선보는 장소인줄은 이때 처음 알았답니다.
찢어진 청바지에 면티하나 둘러매고 주말을 보내는 저에게 , 어머니는 꽉조이는 정장에
올빽의 머리...거기에 타이트한 스커트에 핸드백까지 몰아주시며
"이번에도 뛰쳐나오면 너..짐쌀준비 하그라~~~"
은근한 협박까지 저한테 하시더라구요
처음엔 정말 제 잘난 맛에 그 멋진 남자들한테 꿀리는것 하나 없이 척척 맞장구 춰주었고
애프터가 들어와도 무시하기가 일쑤였지요
그러나 1년 2년 시간이 가고 제 나이가 20대의 막바지로 치솟았을때는 거의 남들 늘 얘기하
는 똥값이 되어있던 것입니다.
그래서 거울속의 최면에 빠져. 이정도 외모에 누가 안넘어가? 얼굴 이뻐~ 맘 좋아~
돈 잘벌어...난 완벽해~ 와우~ 를 외치며 늘 선자리로 나갔죠
정말 젊을때의 남자들과 나이들어 만나는 남자들은 왜 그리 차이가 있던 건지..
예전 남자들의 경우 아무리 직장 좋고 인물 좋고 집안 좋아도..
"아저씨네..아저씨...아.. 저 배바지봐... 아 고리타분.."
이러기 일쑤 였는데..
나이가 들어 만나는 남자들은
"와...저 아저씬 재혼하러 나왔나? 우아..머리 좀 심고 오시던지...
우리 엄마가 날 드뎌 공양미 삼백석에 팔아넘길 요량이군..으흑~"
이러기 일쑤였죠
그래서 전 약간의 작전을 바꾸어 보았답니다
"이왕 하는건데..즐기면서 하자!!!!"
그리하여 선보는 노하우를 세웠지요
우선 점심때쯤 만나면 그 동안 내 돈으로 못먹어본 비싼 음식 먹는다..물론 남자가 돈은 내지..
먹으면서는 말도 잘 풀리잖남? 그리고 얼른 후식은 커피 마신다 물론 이건 내가 쏜다
값이 싸잖아..그리고 영화를 한편 본다 긴 영화면 더 좋다.. 말안해도 되니까..
이쯤되면 태양은 숨어버리고 으슥한 밤이 찾아온다
상대가 맘에 안들면 집안이 엄해서 빨리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물론 거짓말이다)_
상대방이 그래도 차한잔 더 하자고 하면 그럼 술을 먹자고 한다
(내 주량은 웬만한 남자들 못당한다 그리하여 업혀서 보낸 남자가 수도 없다)
이렇게 보낸 남자가 한다스 두다스..
그리하여 내가 선본 남자는 100명이 넘게 된 것이지요
원정선도 봤었네요...부산 대구 서울...
전 마담뚜들이 그렇게 무서운 줄 처음 알았었답니다
웬 서울에서 내려왔던 마담뚜랑 어떤 남자는 우리한테 차비및 일당까지 달라던데요
그리고 나중에 새벽 4신가 전화가 왔었는제 이 마담뚜가
"나 빼놓고 니네끼리 몰래 결혼하려는게 어딨냐..이 나쁜 것들아 내 소개비
150만원 나놔 ..이 도둑들아~"
그러는거 아니겠어요?
자다가 봉창~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이런 표현인가 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남자가 제가 좋다고 했었나 본데요
그 아줌마한테 전하지 않고 곧장 저희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그렇게 되었다는군요
암튼 전..마담뚜들 소개비가 그리 100만원 단위가 넘어가는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주말에 3~5번씩의 선...무슨 대학 소개팅도 아니고..
그렇게 일상이 되어버린 무의미한 자리에서 솔로탈출을 외치고 싶었지만
엄마의 무시무시한 눈초리 속에 그렇게 할수도 없었지요
그러다가 우연히 모교사랑 사이트에 접속하게 되었습니다
'작고 조그만한 시골의 우리학교 ,지금 친구들은 어떻게 변했으려나?'
그리고 작은 모임이 활성화 되면서 친구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고
서로의 존재를 궁금해 하다 오프라인 모임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가 짝사랑했던 대훈이는?
그 잘생겼던 용봉이는?
그 머리 좋다는 현구는?
그렇게 모인 동창회...
정말 17년만에 모인 동창들인데도 하나처럼 어제 봤던 친구들 같았던 거죠
물론 모습은 많이 변했지만 마음만은 그대로라고..할까요...^^
첫사랑이었던 대훈이는 그 큰키가 지금 그대로 되어서.. 모여라 꿈동산 같았고
그 잘생겼던 용봉이는 첫사랑 실패후 술독에 빠져서리 얼굴이 푸욱 삭았으며
그 머리 좋았던 현구는 카이스트 박사지만.. 남들 보기엔 교수님이라 봐도 무방하게
머리털이 자리를 감추었던 겁니다..
저요?
저 역시 그 학창시절의 순수한 소나기의 소녀같은 이미지는 날라가고
왈패에 깡패수준인 괄괄한 터프함으로 맞섰으니 남자친구 역시
피천득의 인연을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아니 만났으면 좋았을것을....'
그래도 우리의 동창회는 그 날의 이야기를 꽃피우며 알콩달콩 무르익어 갔지요
그 와중에 유독 조용히 술만 훔치는 남자애가 있더군요
저 고고한 학의 모습, 으메~ 저 롱다리 봐라~
얼굴이 무슨 선비같구만...
누구드라? 곰곰히 생각하다가
술잔을 들고 가서 그 애의 옆에 털썩 앉아버렸습니다
"야` ~ 너 나 보고싶었지?"
뜬금없이 이게 웬 망발입니까
하시겠지만요 이제..원래 제 작업 멘트입니다.
무조건 전화해서 "나 보고플까봐 먼저 전화한겨"
라고 말하면 상대는 껄껄 웃고 말지요
우선 웃는 분위기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로 이렇게 말했는데
갑자기 그애의 얼굴이 불타는 고구마가 되는 겁니다..
"헉.. 뭐,,.뭐다냐... 너..진짜 나 보고 팠구나"
"..응.... 원래 너.. 너 보려고 나왔어...."
가만히 인상을 뜯어보자니 얼씨구.. 옛날 그 얼굴이 나오는 것도 같구..
얌전히 공부만 하던 아이..늘 내 주위에서 날 바라봐 주던 아이
도현빈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야~ 너 키 무진장 컸다..이 안경 봐라..너 공부 잘하지? 이야.."
이말에 맞서 현빈이 역시
"너는..이 살들...다 어디서 공수해 온거냐... 예전엔 나풀거리는 치마만 입더니
지금은 찢어진 청바지에 나시티네... 등짝에서 고스톱 쳐도 되겠다"
이렇게 응수하는게 아니겠어요?
'이야..세월이 너를 이렇게 물들였구나,..현빈아,. 으아~가는 세월이 밉다'
생각하면서 우린 그 날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친구로써요
그러고 다음날부터 현빈이의 전화가 제 전화통에 불붙기 시작했지요
아..저장해 놓은 수많은 남정네들을 무시하고 현빈이랑만 전화하면
시간은 왜 이리 허벌나게 흐르는지..
그렇게 한달이 가고 한 계절이 흘렀답니다....
그리고 서로 야구를 좋아해서 야구장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1999년 한국시리즈 4차전!
한화대 두산이 경기를 벌이는 날이었죠
오늘 이기면 한화는 첫번째 승리를 거뭐지는 거였으니까 저랑 현빈이는 빨간티를
입고 야구장에서 목청껏 응원하기로 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되도 나타나지 않는 현빈이 덕에 전 무작정 야구장으로 들어갔죠
야구장이 정말 빨간 물결이더군요~
설상가상 그러다가 핸드폰도 잊어먹고..
에라~ 이왕 온거 열심히 응원이나 하고 가자~
하면서 목청껏 응원하고 있는데..
"한화~ 한화~~"하는 낯익은 목소리가 귀에 들리더라구요
그래서 응원석쪽으로 고개를 드니
글쎄 그...샌님인 현빈이가 넥타이를 머리에 질끈 동여 메고
깃발을 흔들며 응원을 하고 있더라구요
정말 웃기는 장면인데도 불구하고 제 맘속에는
'이야~ 멋지네...톰 쿠르즈가 따로 없구먼....'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응원석으로 갔지요
그 넓은 빨간 물결속에서 그렇게 우린 다시 만났고
서로 얼싸안고 한화를 응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엄청난 축포가 하늘을 수놓는 장면이 연출되면서
한화이글스가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1등을하는 날이 되었죠
저랑 현빈이는 둘이 얼싸안고 좋아라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그와 동시에 제가 말했습니다
"현빈~ 웬만하면 나한테 장가오지... 내가 찐하게 이뻐해 줄께.."
그러자 그의 얼굴에서 불그레 당근이 불룩 거리더니
"응.."
그렇게 우리의 사랑은 시작되었고 1999년 밀레니엄을 지나 2000년 새천년의 사랑으로
승화되었답니다
거기에다 서울에서 근무하던 울 현빈이가 대전쪽으로 발령신청을 내는 바람에
대전..거기에다..우리 집 바로 뒷집으로 이사를 와서 저는 꼼짝없이...
아니 우리 현빈이는 꼼짝없이 저한테 묶이게 되어버린거죠
그리고 평생 소원이 딸래미 시집보내는 것이었던 우리 어머님~
늘상 선봤던 남자들을 찼던 저에게
"왜 싫으냐...남잔데...직장 있는데..
(저의 어머님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신랑감은 오케이다라고 하셨던 분이셨답니다)
키가 작아? 키높이 구두 신으면 되지~ 이년아!
머 머리숱이 없어? 요즘 다 머리털 심는다 이년아!
얼굴이 너무 못생겼다구? 얼굴 뜯어먹고 사냐 이년아!
뭐 합죽이라구? 수술하면 되지 이년아!
나이가 많다구? 니년 나이는 적냐?
뚱뚱해? 살은 빼라고 있는거다 이년아!"
암튼 우리 현빈이로 인해 저의 그 암울했던 스무살 후반기는 광채가 나기 시작했으며
엄마의 구박에서 벗어날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거기다..키는 187 대학은 명문대... 막내집의 막내아들
얼굴 준수... 나이는 동갑...
어머님의 마음을 사로잡은 현빈이 덕에
우리집 저녁 밥상은 맨날 잔치집이 되었고
현빈이는 자기네 집보다 우리집에서 지내는 일이 더 많아지게 되었지요
엄마가 늘 따끈하게 해주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에
취한 현빈이를 엄마와 나는 하루 하루 다그치기 시작했고
그 덕에 현빈이네 형보다 먼저 서른 고지에 들어서기 전에
결혼을 할수 있었답니다..
결혼식날 세상에서 제일 많이 웃는 신부가 된 저..
지금도 현빈이랑 알콩 달콩 ? 아니 투닥토닥 잘 살고 있답니다
부부라기 보다는 편안한 소꿉친구마냥
살아가는 우리 부부...
내가 사랑하는 현빈이...
우리 부부의 결혼스토리였습니다
결혼한지 이제 3년이 되어갑니다
소꿉친구에서 남편으로 변해버린 나의 어린시절 첫사랑
영원히 함께 할 저의 짝궁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