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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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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야기] 빗속으로


BY 배정희 2004-09-29

 

(결혼 이야기)    빗속으로

 

 친구의 결혼식을 보고 나오는데 비가 내린다.

잠시 비를 피하자고 들어간 커피숖 이십여명이 떠들고 있었다. 차를 막 시켰는데 한 남자가 와서 정중히 인사를 하던이 서울의 H대학교와 부산의 D대학교 가 미팅을 하는데 복학생 세명의 파트너가 모자라니 참여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했다.  우리는 의논 끝에 재미 삼아 하기로 했고 껌을 받았다. 나는 일번 이었다. 누군가“일번 누구세요” 했고 나는 손을 들고 웃었다 . “바로 나가지요.” 그가 말했다.

 나는 말없이 버스 정류장으로 왔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던이 그도 탔다. 나는 부산진역에서 내린다고 했던이 자기네 숙소 정한 곳이 부산진역 앞이라며 따라 내렸고 그냥 갈거냐고,  차나 한잔 하자며 다방에 갔다. 얘기를 나누는데 말을 놓는다. 왜 말을 놓느냐니까 많아 받자 스물한살 쯤으로 보인다며 자기는 군대 갔다온 복학생으로 스물일곱이라고 한다. 나도 말을 놓으며 스물네살 이라고 했다.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숙소에 일찍 들어 가고 싶지 않으니 해운대 바다를 보여 달라고 했다.  해운대 가는 버스를 타니 자리가 따로 앉을 수 있게 두 좌석이 비어 있었다. 문현동 지나고 부터 그는 계속 질문을 했다 . “여기가 어디예요.”?“ 얼마나 남았어요”,? 나는 간판을 찾았고 동네를 가까스로 말해 주었다.  해운대에 내렸는데 비는 더 세게 내리고 우산은 내몸 하나 가릴 정도의 노란우산 하나 뿐 ,그속에 둘이 서니 반은 둘다 젖을 수 밖에,....그는 한쪽팔로 나를 감쌓고 나는 놀라 그를 밀쳤다.

“안 잡아 먹어요.”하며 어깨를 다시 감싸안았다. 나는 비오는데 너무 촌스럽게 군 것 같아 더 이상 말없이 걸었다.  그리고 보는 것 마다 질문을 했다. 나는 해운대 바다가 좋아서  왔다가 백사장에 앉았다 오곤 했는데 주위에 무엇이 있고 유래라던지 하는 것에 신경을 안 썼었다. 그런데 묻고 또 묻는데 부산 시민으로서 답변은 안 할수 없고  몇마디 말하고 조금 가면 설명들을 볼 수 있고 해서 내 말이 틀렸음을 확인 할수 있어 창피 했지만 그렇게 인어상도 보고 동백섬도 돌았다.

비는 그치지 않고 우리는 속옷 까지 흠뻑 젖어 떨고 있었다. 중국집에서 군만두 한접시를 시키고 따뜻한 차를 마시니 몸이 풀렸다. 그렇게 처음 만나 자연스럽게 몇 시간을  영화의 한 장면 처럼 돌고나니 서먹하지가 않았다.

 나는 아들 셋에 딸 하나인 집에서 맏딸로 태어나  이모와 어머니가 사춘기때 한 교육은 “ 남자는 항상 조심해야 하고, 식당에 가드라도 방에 들어 가면 안되고. 선물을 사주어도 함부로 받으면 안된다 ,준만큼 받으려는게 남자다” 는 식의 교육을 받았다. 

 나는 밥 사주겠다며 이층으로 가자고 한 오빠 보고 먼저 올라 가라고 하고는 다리야 나살려라 하고 도망 치고는 다시는 안만났다. 

 

 바나나를 어버이날 사주며 칼라 텔레비 개발중 인데 제일 먼저 나를 주겠다고 해서 안 만났다. 그런데 남포동에서 그 사람을 만났고 찻집에 갔다. 왜 안만나 주느냐고 묻는데 겁이 나서 아버지께 전화를 해서 오시라 했고 다시는 안만났다. 

의과대학생을 만났는데 자기 친구 여자 친구들은 하숙집에 찿아 오고 책상보도 갈아 주고 하는데 나는 하숙집이 어디냐고 묻지도 않는다고  해서 안만났다.

 아마도 그들은  내가 왜 만나 주지 않았는지 모를거다. 

 그러던 나인데 서울 부산을 수시로 오가는 그에게 “왜 자꾸 오느냐” 고 하면 나 때문에 온다는데 안나갈 수도 없고 짜증이 났다.  그는 “지금은 와야 할 때라”고 하며 왔다.  그러면서 내가 여성다운 면이 없단다.  서울 서 내려온 성의를 봐서 라도 배웅 할때 간식이라도 사서 줄 줄도 알아야 한다고 귀띰도 하며 은근히 나를 가르치고 있었다. 

 같이 미팅에 참석 했던 친구 둘은 서울로 초청 받았다고 오고 가는데 나는 가지 않았다.

그는 편지에 나를 좋아 한다고  했고 다시 찾은 바다가에서 대화를 나누어 보니 머리에서 깡통 소리가 안 난다면서 결혼 하고 싶다고 했다.  대기만성 이라며 졸업 하고 취직하고 가을에 ,___

나는 나이만 먹었지 소녀 같아서 거리를 걷다가 캉캉 춤을 추자고 했고 그는 내가 하는 대로 따라 하며 도라이 기질이 있다며 웃었다.

 회집에 가면 회를 싸서 먹여 주고,한발짝 정도의 개울을 건널때도 안고 건너고 ,아카시아 잎을 떼어내며 계단을 가위 바위 보도 하며 다녔다.  그러다 에덴공원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술을 마시는 장면을 보았다. 아버지는 모자를 벗어 아들 머리에 씌었다. 그리고 막걸리 한사발을 마시게 하고  아들의 어깨를 두드리기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석양에 비친 그 모습이 가슴에 뭔지 모를 전율을 느끼게 했다.

 그는 우리가 결혼해서 아들과 딸을 낳으면 아들의 고민을 상담해 주는 아빠가 될 것이니 나보고는 딸과 친구처럼 터놓고 지내며 고민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엄마가 되란다.

 숙연해지는 기분으로 에덴공원을 걸었다 '

 서울에 친구랑 올라 왔다 . 소양강댐 구경을 시켜 준다고 춘천에 갔다 .털털 거리는 버스로 가파른 길을 오를 때는 현기증이 났다. 댐에서 배를 타고 청평사를 가는데 자연 그대로인 돌다리 ,이름 모를 꽃들 조그만 개울들 ,나는 환호 했고,감탄 했다.

 그는 나보고 "한쪽 발이 구름 속에 있는 여자"  라며 웃었다

청평사를 내려 오면서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어“ 있잔아,나는 여기로 올 결심을  하기 까지 많은 생각을 했는데, 자기는 나쁜 사람이 아닐거 같아 믿고 왔는데 내 믿음이 맞지?” 하며 불안한 마음을 털어 놓았고 그는 믿으라고 했다.  그러나 방갈로에서 네명이 자는 데도 나는 밤새 잘 수가 없었다. 물소리, 개구리 울음소리,거기다 두 남자도 소근 거리는 듯한 환청에 벌떡 일어나 보면 자고 있었다 .

 새벽에 개울물에 세수하고 친구에게 겁도 없이 잘 잔다고 했던이 네명인데 뭐 겁이 나느냐고 한다.

부산행 기차를 타고 도착 할때 까지 잤다.

  그렇게 서로 오갔고 스물다섯 내 생일날 그는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으로 양복을 해입고 선물을 사서 왔다.

 나는 집으로 데려가 인사를 시켰다.

 아버지는 사위는 고생을 해본 사람을 얻고 싶다고 하셨고 그는 충분히 경험 했다고 했다

.동생들도 서울 깍쟁이 같지 않고 강원도 감자바우 같다며 좋아 했고 그는 나보다 동생들이 좋아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큰엄마는 내가 어느 정도 좋으냐고 물었고 그는 현재는 50%정도 인데 나머지는 자기가 마음에 들도록 만들겠다고 했다.

 우리는 허락 받고 사귀게 되었고 내가 서울 가면 내려 올때는 그가 서울서 부산까지 데려다 주고 바로 다시 올라 갔다.  

 그렇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고 처음 말했던 대로 졸업하고 가을 헤어지고 만나는 아쉬움을 갖지 않기 위해 함께 살기로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산다는 것은ㅡ 인내해야 하고 ,믿어야하고 ,기다려야 하고, 이해 해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을때 연애 할 때를 생각하며 견뎌내었다.

 그는 결혼후에도 생일과 결혼 기념일은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

  결혼은 나를 한단계 더 성숙하게 했고 내가 부모되어 부모님의 심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아들과 딸을 두었다.

 그들이 대학생이 되었고 아들은 여자 친구가 있는데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라고 했다.

 아직 (50세) 도 한쪽발이 구름 속에서 못 빠져 나온 줄 알면서도 그는 집에 애들이 있는 것 처럼 내가 좋아 하는 과자를 사 나른다. “결혼‘ 한가지를 얻고 한가지를 잃게도 되지만 해볼만 한거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