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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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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3


BY 인 연 2004-09-28

에피소드 3

육체노동을 대표하는 말, 노가다.
우리말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노가다처럼 세속적인 언어로 우리 일상 깊숙이
뿌리를 내린 말도 드문 것 같다.
노가다는 건축공사장에서 질통을 매거나 각종 건축자재들을 옮기는 일, 혹은
토목공사장에서 땅을 파거나 공사의 기초작업을 돕는 막일꾼, 바꾸어 말하면
가진 기술이 없는 공사판의 노동자를 총칭한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직장을 잃게 되어 당장 생계가 곤란한 사람이나 하는
일없이 빈둥빈둥 노는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노가다를 권하고 딱한 처지에
몰린 사람들 스스로도 최후에는 노가다를 선택한다.
이처럼 노가다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의 마지막 피난처이며 희망이다.
이렇게 나쁘지 않는 의미가 있는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노가다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노동의 질을 세분한다면 가장 낮은 단계의 육체노동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오래 전부터 노동에 대한 편협한 사고를 가진 우리민족성 때문일 수도 있다.

사실 우리 민족의 노가다는 눈물의 역사였다.
일제시대에는 전쟁준비에 혈안이 된 일본으로부터 강제 징집되어 멀리는
남태평양군도를 비롯하여 홋카이도까지 끌려가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노가다를 하였고 70년대는 많은 젊은이들이 독일 광산막장에서 느낀 죽음의
공포를 마르크화와 바꿨으며 80년대는 열사의 땅, 중동에서 모래 폭풍과
싸우며 오일달러를 벌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세계 곳곳에서 우리 민족의 노가다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이민을 결정하면서 나는 미국의 노가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미국의 노가다도 한국처럼 대부분 일을 육체의 힘에 의존할까?
명색이 선진국인데 많은 일을 기계가 대신할거야. 설마 한국 같지는 않겠지.
하루 노동 시간은 얼마나 될까?
맞아, 근로기준법을 철저히 준수하고 인권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가이니 8시간 이상의 일은 시키지 않을 거야.
그럼, 일당은 얼마나 될까? 화폐가치가 달라 한국보다는 훨씬 많이 줄 거야.
궁금증이 많은 만큼 두려움도 커졌지만 이민가면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쳐도
능히 헤쳐 나가리다 큰소리쳤는데 어느 누구에게도 그 비밀스런 고민을 털어
놓을 수가 없었다. 획 뱉어 버리면 정작 쓸어 담을 수 없는 것이 말이었다.
내가 이렇게 여러 날을 고민했던 이유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처음 접하는 일이란 노가다거나 이에 준하는 일뿐이라는 정보
때문이었다.
따라서 언어 소통도 안 되고 노동 문화도 몰라 더더욱 어리벙벙할 내가
미국에 가면 무슨 편한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용빼는 제주가 없는 한 어차피 나도 선배 이민자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걸을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앙금이 되었을 무렵 나는 바게트처럼
굳은 얼굴로 미국에 도착했다.

한 달의 시간을 유유자적(悠悠自適)하듯 보내자 아내는 물론 아이들의 눈치가
보였고 주위 교민들의 표정도 저 놈은 무엇을 할까? 궁금한 표정이 역력한데
그 표정은 내게 비수처럼 꽂혔다. 이놈아, 네가 뭐 특별한 놈인 줄 아느냐.
나도 왕년에 다 그런 생각했었다. 내가 여기까지 와서 왜 노가다를 하느냐고...
고상 그만 떨고, 아니 궁상 그만 떨고 무슨 일이던지 가리지 말고 해서
처자식 먹여 살려야지 맨날 글만 쓰고 있으면 밥이 되냐, 돈이 생기냐...

실로 절묘한 타임에 교회집사님이 노가다를 하자고 한다.
알고 보니 아내가 주선을 했던 모양이다. 이 여자가 가난한 작가의 마누라
되기는 애초에 틀린 줄은 파악했지만 미국에 오더니 악처로 변했나 보다.
어떤 선배처럼 일 년을 논 것도 아닌데 벌써 노가다를 내 보내.
열이 내렸다 올랐다 했다. 하지만 점잖은 체면이라 표정 관리하며 흔쾌히
수락을 하였다.
집사님은 90년대에 이민을 와 건축 일을 십 년을 넘게 하신 분인데 연세가
꽤 드셨는데도 꽤나 강단이 있어 보였다.
일은 오래 전에 이민을 와 아메리카 드림을 이룬 한 교민의 집을 손보는
일이었다.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한국에서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과 다를 것도 없다.
아침 7시 반에 현장으로 이동하는 자동차에서 커피 한잔으로 속을 달래고
8시부터 일을 시작했다.
천장과 벽에 석고보드를 붙이는 작업인데 어깨, 허리, 다리가 몹시 아프다.
이를 악물고 버텼다. 난생처음 접해본 노가다라서 그럴까. 힘이 많이 든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이 눈썹에 주렁주렁 매달려 이슬처럼 빛난다.
생전의 아버지와 같은 성격의 집사님, 나보고 석고보드를 제대로 붙잡지
못한다고 화를 버럭 내신다. 힘겹게 붙들고 있던 손이 큰소리에 주눅이
들어 그만 석고보드를 놓쳐 버렸다.
와장창! 손을 떠난 석고보드는 졸지에 사망했다. 자식 그러게 내 손에서
빠져나가면 죽음이라고 했잖아.
순간 집사님의 표정이 각설이의 밥통처럼 일그러졌다. 석고보드 값은 내게
줄 일당에서 빼겠다는 표정이었다. 알아서 하세요.
명 긴 놈은 별 짓을 해도 죽지 안더니만 놈은 분명 명이 짧은 놈일 게야.
스스로 위안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더 주눅이 들었다가는 남은 일도 못할
것 같았기에.
집사님께서 일 욕심이 많으셔서 그런지 11시간의 노동을 하는 동안 점심
먹는 시간 30분을 제외하고 단 십 분도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점심도 현장근처에는 한식당이 없어 빵으로 대신했고 저녁 7시가 되어서야
땀방울이 빛나는 노가다를 마칠 수가 있었다. 이렇게 하루를 더했다.

인간은 어리석게도 어려움을 겪은 후에야 자신을 되돌아보는 경향이 있다.
노가다를 마친 후 나도 그랬다.
세상살이가 어찌 평안함만 있겠는가. 고통이 있어야 성숙해지는 법인데.
노가다가 이렇게 힘든 일인 줄 알았으면 미국에 오기 전에 좀더 편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했어야 했다.
앞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하며 미국에 정착하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의
노가다와는 크게 다른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스 격언에 "시간은 모든 것을 씻어 버린다"는 말이있다.
사람들은 잘 잊어버리는 존재임을 일깨워 주는 격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랍이나 다락 등에 남들에게는 거추장스러운 물건으로
보이는 그 무언가를 소중하게 간직한다.
경제적인 가치로 따져 볼 때, 별것도 아닌 그런 것들을 왜 소중하게 간직할까?
이유는 그것들을 보고 만질 때 지나간 사람들과 일들을 회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들에겐 아무 것도 아닌 물건들이 자신에게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들을 회복시켜 주기 때문에, 기념물들은 간직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노가다 경험을 나의 이민생활에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

꿈이 없는 인생,
그 삶은 무덤보다 더 참혹하기에 우리는 가끔은 노가다에서 희망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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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 포트 리에서 인연...

덧: 일당 얼마 받았는지는 묻지 마세요. 며느리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