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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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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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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1


BY 인 연 2004-09-25

에피소드 1


일요일 아침. 평소처럼 늦게 일어난 딸아이가 걱정을 한 아름 안고 내게로 왔다.

"아빠. 어제 나 1부 예배 보기로 했잖아!"
"그런데?..."
"아빠가 좀 깨웠어야지!"
"야 이놈아. 네가 알아서 일어났어야지. 이제와서 왜 아빠 탓을 하고 난리야."

토요일 밤, 딸아이는 수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으니 아침 일찍 예배를
보겠다며 교회까지 바래다 달라고 내게 부탁을 하고 잠이 들었다.
그러나 일요일 아침, 딸아이는 9시가 넘었는데도 일어나지 않았고 난 슈퍼에
가지 않나 보다 생각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만 딸아이는 깜박 늦잠이 들었던 것이고 당황한 끝에 나름대로 대책을
강구해 내게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었다.
딸아이는 11시까지 슈퍼에 가야 하는데 이미 교회 가는 것은 틀렸으니 아내가
이 사실을 알아 꾸중을 듣게 되면 적당한 도움을 달라는 것이었다.
다음부터는 꼭 아침 예배를 본 후에 슈퍼에 가겠다는 다짐을 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딸아이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던 나는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
하였는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 아내에게 그만 들통이 나 버린 것이다.

며칠을 묵묵이 참던 아내가 무슨 일로 심사가 뒤틀렸는지 급기야 포문을 열었고
아침 식탁은 달궈진 뚝배기처럼 뜨거워졌다.

"예슬이 너. 그렇게 하려면 알바하지마."
"안돼. 이번 한 달은 나갈 거야. 약속했단 말이야!"
"너 엄마랑 약속했어 안 했어!"
"내가 뭘? 엄마한테 다 말 했잖아."
"니가 말은 무슨 말을 했어? 엄마가 그럼 거짓말하고 있다는 거야!"

용호상박(龍虎相搏)이다.
서로가 한치의 밀림도 없고 사태가 힘껏 당겨진 용수철처럼 위태롭다.
딸아이는 일요일 아침 예배를 보지 못한 것을 아내에게 사과를 했다는데
아내는 딸아이의 사과를 듣지 못했다는 것이고 딸아이는 친구집에서 공부도
열심한다는 것인데 아내는 밤 늦게 귀가하는 딸아이의 말을 신뢰를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서로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본말은 전도되어 언쟁의 핵심은 삼천포로 빠지고
급기야는 감정싸움으로 돌입하는게 순서인데...
아니나 다를까. 아내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고 딸아이 목소리는 더 더욱 크다.
딸아이 목소리가 커지면 나도 당해낼 수가 없는데 아내는 얼마나 견딜까 싶은데
아내의 목소리는 아직 싱싱하다.

"너 알바해서 맨날 옷이나 사고 친구들이랑 어울려 놀기만 하잖아!"
"내가 무슨 맨날 옷만 사 입었어!"
"알바 때문에 교회도 빠지고 너 공부도 안잖아!"
"엄마는 내가 무슨 공부를 안 해. 내가 알아서 다 한단 말이야!"
"너 그렇게 할 것 같으면 당장 알바하지마."

이쯤되면 그 좋은 알바의 의미는 상실되고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후 폭풍을
맞을게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일은 적당히 딴전을 피운다던가 슬그머니
일어나 다른 볼일 보는 것이 상책이다.
그런데 눈치가 없는지, 상황 파악이 안 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중학생인 아들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밥 먹는데만 열중이다.
자신에게 불똥이 언제 튈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녀석은 전혀 짐작도 못하고
있는 듯하다.
성격이 무던한 놈인지, 남에 일이겠거니 하고 강 건너의 불 보듯 하는지 녀석을
보면 나도 파악이 잘 안될 때가 많다.
이럴 때 보면 내가 녀석의 껍데기라는 것이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등교시간이 가까워지자 다행히 언쟁은 태풍의 눈처럼 조용해졌고 승자도
패자도 없는 무승부가 되어 버렸다.
사실 모녀의 싸움은 늘 이렇게 끝나는 게 대부분이다.
어느 집안이던지 마찬가지겠지만 모녀가 다투게 되는 것은 거의 딸의 문제이다.
딸아이가 성적은 안 오르는데 딴 짓을 해서 엄마를 속상하게 했거나 말만한
계집아가 집에 너무 늦게 귀가해서 걱정을 끼쳤다거나 하는 일이다.
더 많은 이유들을 손가락으로 꼽으려면 밤을 세고도 남을 참이지만 아침의
언쟁도 딸아이의 아르바이트가 불씨가 됐다.
대부분의 미국 고교생들은 주말이나 휴일이면 수시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스스로 용돈을 마련한다.
그래서 딸아이도 그간에 아르바이트를 가끔 하였는데 지난 주말부터는 집에서
가까운 대형슈퍼에 아르바이트를 나가게 된 것이다.
일은 고작해야 매장에 디스플레이된 상품들을 정리정돈 하거나 청소하고
잔심부름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아내는 딸아이에게 아르바이트를 허락하는
대신 공부를 소홀히 해서도 안되며 교회에서 맡고 있는 일을 충실히 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었고 딸아이는 내게 자문까지 구한 뒤에 행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만 딸아이가 아내가 내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작금의 소란스러운 아침은 우리 가정의 일만은 아니겠지만 이런 일이 벌어지고
나면 나는 늘 씁쓸하다.
미국사회는 누가 무슨 일은 하느냐 보다 누가 얼마를 버느냐에 민감하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하려는 학생들도 일의 질을 따지기 전에 시간당 얼마를
받을 수 있느냐가 더 관심거리다.
가끔 돈의 노예가 된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요즘 나는 아내와 딸아이가 당기는 팽팽한 용수철의 중심에 서 있는 기분이다.
언쟁의 여운이 남을 때마다 유수도식(遊手徒食)하는 나는 늘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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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 포트 리에서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