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대형 마트에 추석 시장을 보러 갔다.
메모지에 야채는 야채끼리 과일은 과일끼리 고기는 고기끼리 분류해서
적은것을 잊어버릴새라 주머니에 넣고 출발했다.
나이를 먹으니 빠트리고 안사오는것이 많아진 탓이다.
옛날에는 머리에 다 입력이 되던 것이 이제는 그것이 안된다.
법주는 막내 동서가 사온다고 했지...
전은 셋째가 부쳐온다고 했지...
산적은 둘째의 몫이지...
나물과 빈대떡과 토란국과 제육과 과일이 내차지다.
빈대떡은 어제 끝냈으니 그것은 메모지에서 제외되었다.
마트의 풍경은 명절을 느끼게 했다.
시끌벅적하다.
부부동반의 팀이 많았다.
언제부터 한국 남자가 이리도 가정적이 되었을까....
주로 나이든 남자들이 마누라 뒤를 쫄쫄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한다.
'곶감 사지 말고 감으로 사라구...'
'그건 왜 그렇게 많이 사나...'
'여보..이쪽 과일이 더 싸.'
인산인해다.
혼자서 휠체어를 조종하며 나온 여자가 눈에 띤다.
존경스럽다.
곱게 화장을 한 모습이 더 이뻐보인다.
직원이 밀어주려니까 거절하는 모습도 이쁘다.
많은 부부동반 카터사이를 혼자 휠체어를 운전하며 야채를 고르는 모습을
실례될까봐 몰래 훔쳐보았다.
자기의 역할을 빈틈없이 해내는 모습으로 부각되어온다.
저렇게 당당하게 살아야 하는거지...
혼자 그런 생각을 해본다.
밤을 큰놈으로 고르면서 남편이 아들 둘과 마주 앉아 밤을 치던 몇해전의
일을 그려본다.
좋은 그림이었는데...
도란 도란 이야기도 하며 세부자가 밤을 치는 모습은 명절의 가장 좋은
모습이었다.
언제부턴가 혼자 앉아 밤을 치면서 힘들다고 하던 그 사람...
마음이 힘든 것이라는것 나는 안다.
쓸쓸함이 힘든거다.
명절만 되면 큰아들이 그리워 괜히 심통이 나는 남편의 마음을 나도 안다.
저녁에 돌아온 남편과 먹는 저녁상에는 빈대떡과 알맞게 익은 깍두기와
나박김치가 놓여졌다.
'소주 없나...'
소주가 떨어졌다.
왠일로 사오라는 말을 안한다.
'깍두기 대장인 황서방이랑 조서방이 없으니 재미없겠어.'
큰시누이 남편인 조서방은 이제 몸을 못움직이니 처가집에 와서 너스레를
떠는 일이 없을거고 둘째 시누이 남편인 황서방은 얼마전부터 오지 않는다.
'빈대떡이 아주 일품이군.'
소주없이 맛있게도 먹는다.
'마지막 밥을 깍두기에 비벼 먹을까 나박김치에 말아 먹을까...'
남편이 묻는다.
'가르쳐 줄까 말까...'
내말에 웃는다.
명절을 앞두고 웃을 일이 없다.
웃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