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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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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야기" 연하랑 산다는 것은


BY 미식가 2004-09-21

나는 5살 연하랑 사는 능력있는 여자다.

동갑자리 남자도 여자가 정신연령이 더 높다는데 5살 연하는 아주 얼라이다.

이 얼라랑 사는 굽이굽이 싱싱한 삶의 모습.


데이트

결론은 변변한 데이트를 한번도 해보지를 못했다.
우선 경험많은 나의 노련한 연애기술(?)에 반해 나이어린 신랑은 장단을 맞추지를 못했다. 30이 넘어서까지 혼자서 방에만 처박혀 있었다면 누가 요조숙녀 취급을 할까?

솔직히 노는 것 좋아하고 우선 사람을 너무 좋아한 나는 잘 놀았다. 특히 자타가공인하는 미식가 집안 딸답게 먹는 것이라면 주머니돈을 다털어서 라도 먹어봐야 했다.

맛있다고 하면 충청도 백합식당삼겹살, 연변에 보신탕집, 동해바다 한치회등.. 백리길을 마다 않고 달려가서 먹고 왔다.
또한 내 기준으로는 잘먹는 사람이 노는 감각도 발달되서 항상 재미가 오골거렸다.

싱가폴에 와서도 먹자그룹은 또 다시 결성되어 인도네시아식 피시해드, 중국식 애저, 북경오리구이등으로 통장에 돈이 다 거덜이 나도 입이 만족하고 위장이 happy하면 삶이 happy 했다.

그런 내가 기껏 데이트라고 해봐야 호크센타나 풋콧 - 전부 싱가폴 서민을 위한 시장판에 먹자골목 같은 곳에서 국수가락이나 빨고 앉아서 들어봐야 별로 맛도 재미도 없는 사회초년생 "애들이야기"를 듣고 있을려니 죽을 맛이였다.


임신

처음 임신했다고 내가 알려주었을때 우리 신랑의 표정은 참 볼만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어이가 없어서 혼자서 씩 웃는데..
무진장 겁난 표정이였다. 얼마나 겁난 표정인지 내가 오히려 괜찮다고 위로를 했다.

한참 위로를 하고 난후 제정신이 들면서 열 받기 시작했다.
아니 이인간은 드라마도 안보나? 남의 남자들은 임신소식에 환호와 기쁨이 있다는데 아니 드라마에서는 당장 무엇을 먹고 싶냐는 호돌갑을 떨기도 하던데 이 철부지는 지가 더 무서움에 떨면서 산모인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남자들에게 들은 솔직한 이야기로는 사실 많은 남자들이 여자의 임신소식이
단지 기쁜것인 것만은 아니라는, 고리에 잡히는 느낌같다고나 할까 뭐 어쨌든 여자들이 드라마에서 보고 꿈꾸는 그런 단순명쾌한 기쁨만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그렇지 우리신랑은 그 모든 두려움을 꾸밈없이 다 내게 보여주므로서 나로 하여금 지은 죄없이(?)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맞고 산다.

입덧이 너무 심했다. 부모도 아는 사람도 없이 단 둘이서 있는데 배고파 죽어가며 -당연하지 않은가 삼시세끼중 한끼라도 그냥 넘어가면 싱가폴 법을 어기는 것보다 않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위장이 입덧때문에 음식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어쩔줄 모르는 내게 신랑이 해준거라고는 손바닥으로 머리를 쓸어 주는 것하고 애처럽게 쳐다보는 것 뿐이다. (이건 어느나라식 치료법인지)

아, 또 있다. 자기도 안먹는 것. 안먹고 내옆에 길게 누워서 같이 아팠다.
얼마나 속이 상한지 마구 두들겨 패줬다. 손바닥이 얼얼 하도록.

공교럽게도 조금 있다가 신랑 친구가 놀러를 왔는데 기운이 없어 늘어져서 말도 잘못하는 나를 보고는 갑자기 "참, 니네마누라가 한국여자지? 그래 한국여자들이 순종적이고 여자 답다던데." 말은 거기에서 끝났지만 눈초리는 무척이나 부러운 표정이였다.

속으로 찔끔해서 우리 신랑을 쳐다보니 몇일동안 밥다운 밥 한번 못 얻어먹고 이젠 얻어 터지기까지한 가장 불쌍한 모습의 남자가 한마디 했다. "Do you think so?"


출산

왠 남자가 그리 겁이 많은지, 애 놓기전날 밤에 예민한 신랑이 더 못잤다.
그래서 다음날 산고를 치르는 내옆에서 엎드려 퍼져 잤다. 퍼져서 애나오는 것도 모르고 잤다. 지금도 우리 첫째딸이 우리딸인지 남의 딸이 바꿔치기 된것인지 모른다.


부부싸움

우리의 부부싸움은 장도리와 못에 비유하면 된다.
장도리인 내가 꽝꽝 박을수록 못인 우리 신랑은 쑥쑥 벽으로 들어가 버린다.
하이 소프라노인 내목소리로 10번을 떠들어야 신랑의 알토소리가 한마디 나올까?
그러니 압도적으로 내목소리가 클수 밖에. 어떨땐 혼자 싸우는 것 같다.
남들은 손뼉이 안마주치니 소리가 안나서 문제가 적을 것 같다지만. 해본사람 만이 안다. 혼자 떠들때 얼마나 열 나는 지.

거기다 나는 매운것을 많이 먹는 다혈질이다. 불붙으면 다 불살를것 같이 설치는데 미숙한 신랑은 압도해서 불을 끌 힘도, 냉각시킬 재치도 없으니 그냥 몸으로 때운다.(불길속에 꾹꾹히 앉아 있는것)

지금이야 신랑도 이력이 나서 그렇지만 처음에 부부싸움할때 우리신랑의 얼굴에 비친표정은 "혹시 내가 미친여자와 결혼한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보일정도로 내감정의 기복에 놀라와 했었다.

결국, 우리의 부부싸움은 내가 시작해서 내가 본론 진입하고 내가 지치면 파장이다.
결론? 없다.
맥빠진다.
요즘은 더운데 기운만 빼고 결론도 안나오는 것 힘들어서 안할려고 노력한다.


화해

부부싸움은 그래 경력이 적어서 아니면 말발이 딸려서 그렇다구 치자.
화해도 잘 못한다.

하루는 저녁먹기전에 싸우다가 상차려지는 것을 보고 시위겸 방안으로 들어왔다. 한참을 앉아 있어도 따라들어오지도 밥먹으라는 기별도 없었다. 안그래도 소리를 많이 질러서 배가 고픈데. 빨리 파장하고 밥을 먹어야 될텐데 기척이 없다.

한참을 기다리다 문을 열고보니 맙소사 신랑이라는 인간이 아들, 딸 다거느리고 옹기종기 모여서 나만 빼고 밥을 먹고 있었다. 얼마나 열이 나는지 지금까지 싸운 이유는 다 잊어버렸다.

다시 불렀다. 애들앞에서 먹는 것 때문에 어쩌구 하는 어른의 체면을 지킬려고 방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밥먹다 황급히 불려들어온 신랑 턱에 밥풀이 붙어있었다.

왜 치사하게 혼자 밥 먹냐라고 따져 물었더니 내가 너무 열받아 있는데 밥먹으면 체할까봐 열 식히라고 그랬다나.
Oh! my god.

울어야 하냐 웃어야 하냐.
이렇게 사사건건 핀트가 안맞는다.

내가 여자이고 싶은 결정적인 순간에 이 남자는 남자가 아니라 아들이나 남동생 정도로 철부지 없는 모습으로 되어있고

내가 삶에 힘들어 기대고 싶을때 더 불쌍한 얼굴로 나의 모성애를 자극한다.

내신랑은 내게 나를 삶의 어려움에서 건져내는 백마탄 왕자님이 아니라 또 하나 짊이지고 가야할 삶의 보따리중에 하나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관점이고
아마 우리신랑의 입장에선 이상형인 가느다란 손가락에 긴머리 소녀를 꿈꿀때 어느날 팔둑굵은 아줌마가 옆에 붙여서 빚독촉하듯이 생활비를 요구한다.

자기 정신없는 틈을 타서 애도 둘이나 놓고, 자기 이름밑에 조롱조롱 달아놓고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강요한다.

자기는 이제 갓 엄마밑을 벗어나서 자유를 맛볼려고 하는데 엄마보다 더 무자비한 마누라 한테 걸려서 남은 인생을 저당잡혀 버렸다.

아마 우리신랑도 할말이 많을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