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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야기]뭐라고..?? 내가 올해 결혼을 한다고.......???


BY 리베 2004-09-19

 결혼한 부부라면...선만 보고 속전속결로 골인한 부부라도 그 에피소드로만 시집굵기의 책 한권은 충분히 나올 것이라고 본다. 그만큼 다들 결혼까지 이르는 과정이 복잡하고 나름의 고충은 다들 있었을 것이니까....

 

내가 지금의 남편을 만난 건....남자로 인해 눈물을 흘리는 여자들을 눈 아래로 내려보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르며 내 뜻대로 술술 풀려갈 줄만 알았던 24살의 봄이었다.

 

 그때까지도 남들은 이미 한번쯤은 치루었을 그 흔한 사랑의 홍역 한번 안치르고(못치르고) 약간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대학진학을 보류하고 회사를 다니다, 호주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언니의 뒤를 이어 중국으로의 유학준비를 하며 열심히 어학학원과 컴퓨터 학원과 집을 오가는 무미건조한 생활의 반복과, 언니가 병명으로 지어준 '남자 혐오증 또는 남자 공포증'이라는 불치의 증상까지 보였던 때였지만, 나름대로 나이가 나이인지라 따라다니는 남자 몇몇쯤은 있었던 시절인데....

 

 그 남자들로 하여금 학을 떼는 수법으로 다들 떼어놓고 '은미씨가 애인은 커녕 남자친구라도 사귀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는 --지금 생각하면 --기절초풍할 장담까지 내 앞에서 서슴지 않고 퍼부을 만큼 난....접근하는 그 남자들의 정나미를 똑 떨어지게 만들어 떼어놓고 말았다.

 

 어느 생물에게나 천적은 있는 법인데...

내 앞에도 그런 천적이 나타났으니...바로 지금의 내 남편이다.

 

 그렇다고 내가... 8등신에 미스코리아 나가라고 미용실 원장님이 강권하는 빼어난 미모도 아니고, 3개국어에 능통해서 외국 사람 붙잡고 솰랴솰랴  떠들어대며 탁월한 능력이 있어 어느 순간에 멋있게 보이는 스타일도 아니고, 여자 나이 제일 한창인 24살에 세상물정 모르고 콧대만 죽어라 높은 아가씨였으니, 아마 그 땐 남편도 내 첫인상이 '하늘에서 날 위해 내려준 선녀' 운운하며 첫눈에 반하는 현상을 경험하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내가 남편을 처음본 인상은, 남편이 나를 그럭저럭 평범하게 보고 있었던 것과는 반대로, 내 머리 속에선 딸랑딸랑 종소리가 울리고 남편 주위가 환~~해지며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안보이고 유독 그 사람만 보이는...잡지책에서나 나올법한 그런 현상을 경험하고 있었다.

 

 생전 처음 그 동안 내 눈길조차 가지 않던 '남자류(?)'인 것도 신기했고 그 남자는 여느 남자와는 다르게 나에게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것에 이미 내 오기가 발동하고 승부수는 던져졌다.

 

 알고보니 7년 사귀던 애인한테 차인지 만4개월을 경과하여, 여자라는 종족한테 신물이 나 있었고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돼 다른 것에 관심을 두기란 그 처지에 좀 버거운 일이기도 하였나 보다.

 

그 사람 사정이야 그렇다치고 난...내 인생에서 다신 오지 않을 첫사랑을 경험하고 있었으니 그대로 멈추고 앉아 있을 내가 아니었다.

 

??

 

하지만...뭘 어쩌라구...?? 어떡해야 하냐구....??

 

 평소 '남녀평등' '호주제 폐지'라는 피켓만 안들었을 뿐, 남성우월주의에 빠진 사람들 보면 흥분해서 어쩌지 못하는 평등주의이던 내가....그 사람 앞에선 고양이 앞에 쥐처럼...' 날 잡아잡수~~~' 하는 표정으로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고 평소 꼼꼼하고 남 꺼까지 잘챙기는 완벽주의적인...어찌보면 좀...피곤하고 깐깐한 성격이던 내가...왜!!! 그 사람 앞에선 허둥지둥 이것저것 흘리고 빠지고 떨어뜨리고 잊어버리고 덜렁거리는 그런 성격이 되어야 하는지....

 

 입안의 침이 바짝바짝 마르고 하루종일 몽유병 환자처럼... 온 세상이 그 사람으로 이루어진 것인양....난...24살의 숙명적인 사랑을 그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나에겐 종교가 되어 버린 사랑이라, 난 유학을 가기 전까지 근무를 하고 있던 회사의 월급날만 되면 십일조하듯 그 사람을 불러내어 헌금(?)을 했고 그 사람의 몸짓이나 표정 하나하나에 울고 웃는 날이 1년여 정도 계속되던 날...

 

그 사람...지금의 남편이...연락이 안되는 날이 보름정도 지속되었다.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아니..숨을 쉴 수도 없었다.

 시체처럼 하루종일 늘어져 있는 내 모습을 본 절친한 친구가 긴 한숨을 쉬며 그 사람을 어렵사리 불러내어 꼬치꼬치 따졌더니...하는 말이...(나중에 친구에게 전해들은 말이다)

 

' 너랑 앉아 있으면 여자랑 있다는 생각이 안든대..바다를 바라보며 파도치는 이유가 만유인력때문이라고 과학적 근거까지 들먹이며 설교를 해대고, 맨날 전화로 하는 얘기가 정치나 경제같은 시사문제뿐이고, 거기다 손만 대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무슨 더러운 거 묻은 것처럼 인상을 쓰고, 1년을 만나면서 여태 손한번 잡아볼 수 없는 너가...이젠 여자로 안보인대...'

 

 내 마음의 1/10...아직 1/100도 보이지 않았는데...난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그 사람은 끝이라니...

 

내가 힘들어하더라...라는 말을 전해들은 그 사람 반응은 의외였다.

 

'걔가?? 나랑 연락이 안된다고 힘들어한다고?? 걘 자기 할 일 다 하면서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아서 할 일이 정말 없을 때에 겨우 한번씩 만나면서...나랑 연락이 안되니까 힘들어 한다고??'

 

친구 말로는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며 코웃음을 쳤댄다. 

 

음...내 마음을 좀 솔직하게 보여주면 돌아오겠구나...사랑하고 있다는 걸 표현하면 되겠구나...

 그때부터 급해진 내 마음은 이미 유학이고 나발이고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결혼후 전해들은 남편의 속내는...난 유학을 떠나버리고 말면 그 뿐이고 남은 자신은 어차피 또 차이는 것일테니 애초부터 관심을 두지 말자...고 생각했다 한다.

 

그 후로 내 노력과 의지와 불굴의 정신으로 남편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고 이젠 이별같은 건 안하겠다..싶었는데...어느 날 남편은 느닷없이 이별을 통고했다.

 

'우리 지금 뭐하는거야? 애들 장난도 아니고...우리가 지금 사귀고나 있는거야??'

 

이게 우리의 이별 두번째 이유였다.

 

 사랑을 하면서도...주체할 수 없이 사랑을 하면서도...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지식(?)이 없었던 나는 첫번째 이별을 겪으며 오히려 표현따로 행동따로의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것도 '참...좋은 거 있지...'가 나의 최대의 표현이었고, 내가 술을 일절 못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 사람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까봐 시간을 철저하게 지키고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나고 여전히 학원과 집을 오가며 좀 나와달라 사정사정하는 그 사람의 부탁도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으니...질릴 만도 했다.

 

 이렇게 3년을... 사귀는 애인도 아니고 알고 지내는 오빠 동생도 아닌...그저 뜨뜨미지근한 관계를 끌다끌다...남편은 '이건 아니다..이러다 또 헤어지면 끝이잖아..지금 그냥 헤어지자'며 마지막 통고를 해왔다.

 

 난 또 내 나름대로 '이렇게 만나고 헤어지길 반복하는 사람이면 사랑할 이유가 없다. 그래 헤어지자'는 결심으로 그동안 그 사람과 만나고 사랑했던 내 감정의 기록들을 담은 일기장을 마지막 선물이라고 쥐어주며 일어났다.

 

 남편은 그 때 뭘 느꼈는지...바로 돌려주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만나달라'며 붙잡았고...

 그렇게 기나긴 출발은 아직 시작도 못하며 미적거리는 우리 관계를 계속 끌어오고 있을 무렵...

 

 이미 첫사랑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제 정신이 아닌 둘째딸의 상태를 간파하고 있던 엄마는 어디서 점을 보고 오셨는지...'얘는 이 사람과 결혼해야지...평생 남자가 이 남자 하나다...딸이 더 좋아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으니 그냥 결혼시켜라..'는 점괘를 들고 난처하지만 밀어붙이자는 결단으로 내 결혼을 나도 모르게 진행시키고 있었다.

 

 어느 날 회사로 전화가 걸려와 '정한이 전화번호 좀 대라'며 채근하는 엄마에게 아무 생각없이 불러주고 1시간여가 흘렀나...?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너랑 나랑 올해 결혼한대!!! 우하하....우리가 올해 결혼한대!!!'

 

'뭐라고?? 내가..결혼한다고........???'

 

 나중에알고 보니 엄마는 남편에게 전화를 해 '어머님께 말씀드려 올해 안에 결혼할 수 있는지 여쭤보고 나한테 전화좀 달라'며 끊었고 그 전화를 받은 남편은 시어머님께 전화로 대충 설명한 뒤 가능여부를 물었는데...시어머님도 그 자리에서 두번 망설이지 않고 'OK'를 하셨다는 것이다.

 

그 해 동지가 지나기 전에 결혼을 해야 좋다는데...그렇게 얘기가 시작된 때가 8월이었다.

 

 그 동안의 숱한 이별을 겪으며 했던 내 가슴앓이와...남편이 그 당시에 겪었던 옛 여자로 인해 아물지도 않은 상처와...남편도 나로 인해 혼란스러웠던 만남에 종지부를 찍는 것치고는 너무 순식간에...우리 결혼은 나도 모르게 결정되어 버렸다.

 

 지나고 보면.....결혼까지 할 수 있는 인연은...하늘이 따로 정해주는 것 같다.

 

 지금까지 결혼 7년차로...남편에 대한 불만도 하늘을 찌르지만...어찌보면...그 점을 또 많이 사랑했었고 아무리 남들이 자기 남편 자랑에 여념이 없어도...가만히 떠올려보면 내겐 남편만큼 든든한 울타리도 없다.

 어느새 7년...

 

** 그 사랑했던 시절을 이렇게나마 떠올리게 해준 아컴에 감사드린다.